이진성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낙태죄 헌법소원 공개변론에 참석해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진성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낙태죄 헌법소원 공개변론에 참석해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헌재 ‘낙태죄’ 위헌 여부 공개변론

인공임신중절을 한 여성과 의사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상 ‘낙태죄’ 위헌 여부를 두고 헌법재판소가 24일 공개변론을 열었다.

청구인 측은 “‘낙태죄’ 처벌은 여성의 자기운명결정권, 임부의 건강권, 신체의 완전성에 관한 권리, 모성을 보호받을 권리,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며 “임신 초기의 임신중절까지 일률적으로 처벌하고, 모자보건법을 통해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임신중절 범위도 지나치게 좁은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법무부는 “태아의 생명 보호는 매우 중요한 공익이고, 임신중절 급증을 막으려면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임신 초기 임신중절 전면 허용은 부당하고,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임신중절 허용도 사실상 대부분의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것이므로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낙태죄 처벌은 부당하다”는 주장을 결국 일부 인정하고 공을 국회로 돌렸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며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비웨이브(BWAVE) 회원들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위헌 결정 촉구 탄원서 및 서명지 제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며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비웨이브(BWAVE) 회원들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위헌 결정 촉구 탄원서 및 서명지 제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청구인 측 “일상적 성관계로도 원치않은 임신 가능

임신했으니 낳아라? 여성에 희생·불평등 강요

무책임? 당사자 여성·아이 인생 고민한 결과

남성 두고 여성만 처벌하는 낙태죄, 기본권 침해

우리 법체계, 태아를 온전한 인간과 동등한

헌법적 기본권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아”

청구인 측 김광재 변호사는 지난해 2월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낙태죄 폐지’ 국민청원에 23만명 이상이 참여한 것을 언급하며 “그만큼 절박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임신중절을 쉽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심각한 갈등을 겪어도 감행하는 이유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며 임신중절하지 않으면 태아와 임부가 더 불행해질 거라고 믿기 때문”이라며 “우리 사회와 국회는 임신중절이 여성이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는 주장을, 낙태죄가 임부의 건강·생명을 침해하는 일을 외면해왔다. 헌재가 해결책을 찾아달라”고 말했다. 

청구인 측 차혜령 변호사는 “콘돔을 써도 13.9%가 피임에 실패하는 등 일상적 성관계로도 원치 않는 임신을 할 수 있다”며 “원치 않는 임신을 해도 상대 남성은 두고 여성만 처벌하는 것은 ‘여성은 임신하면 당연히 어머니가 돼야 한다’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반영한 것이다. 또 원치 않는 임신·출산은 여성의 교육·경제·공적 생활에 심각한 불평등을 초래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또 OECD 회원국의 상황과 UN이 거듭 한국 정부에 권고한 내용 등을 들어 “태아가 갖는 잠재적 생명보다 여성의 권리를 폭넓게 인정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말했다.

주심인 조용호 재판관은 청구인 측에게 ‘태아의 생명권’에 초점을 맞춘 질문을 했다. “자유엔 책임이 따르듯 성관계로 임신했다면 책임져야 하지 않나” “임신중절 합법화로 집단 양심이 무뎌지고 생명 경시가 심해질 수 있지 않나”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위해 장래 독립적 자기결정권을 지닐 태아의 생명을 박탈해도 되는가” “임신중절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으나 처벌 받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 여성은 이미 임신중절의 자유를 누리고 있지 않나” “임신중절이 합법화되면 여성은 낳고 싶어도 남성이 임신중절을 강요하는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 등이었다.

이에 청구인 측 대리인들은 “여성의 임신중절 결정은 무책임한 결정이 아니며, ‘임신중절 비범죄화’는 여성의 기본권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조처” “우리 법체계상 태아는 온전한 인간과 같은 생명권의 주체로 보기 어렵다”는 요지로 답했다.

“(‘여성이 성관계해 임신했으면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여성의 자유의사를 인정하지 않는 19세기 구습이고 현대 의료기술과도 맞지 않다”(류민희 변호사)

“임신 경험 없는 여성의 90% 이상이 성관계 때마다 임신을 걱정한다. 일, 학업, 꿈을 포기하고 임신·출산한 여성들의 인생에 대해 누가 고민하는지 묻고 싶다”(최현정 변호사)

“우리 법체계는 이미 태아를 온전한 인간과 동등한 헌법적 기본권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난임 치료를 위한 선택적 유산을 합법화하면서 임신중절은 처벌하고 있다. ”(박수진 변호사)

“임신중절 범죄화 자체가 여성들에겐 이미 큰 낙인이다. 임신중절 경험과 관련 사회적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보니 위험한 시술을 받을 가능성도 높아진다”(류 변호사)

“임신 주수에 따라 여러 조처를 할 수 있다. 여성의 삶을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방향의 규제는 하지 말아야 한다”(김수정 변호사)

청구인 측 참고인인 고경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사는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며 경험한 낙태죄의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임신중절로 처벌받거나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해 책임지지도 않는 남성들이 임신중절 결정권을 행사하고 여성을 협박하거나 고발하는 현실이다. 산부인과 전공의 수련과정과 전문의 연수과정엔 임신중절 시술 가이드라인이나 임상 매뉴얼이 없다. 임신중절이 불법이라 공론화도 교육도 못 한다.”  그는 “법무부 측 대리인이 ‘태아는 말이 없다’고 했지만 그 동안 여성들도 말이 없었다. 낙태한 ‘범죄자’로 낙인찍혀 소외돼 침묵해왔다”고 말했다.

또 난임 부부들이 시험관 수정 시술을 받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인공유산과, 정부가 이 비용을 50%까지 지원하는 점을 들며 “임신중절 범죄화는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부 “태아 생명권 보호하고

낙태 급증 막으려면 형사처벌 불가피”

‘남성은 처벌 제외, 성차별 아니냐’ 지적엔

“군대 성차별 논란과 비슷…신체조건 다르니 법 적용도 달라”

그러나 “낙태죄 부당” 일부 인정하고

“입법 개선 필요” 국회로 공 돌려

 

반면 법무부 측 서규영 변호사는 “태아의 생명 보호는 중요한 공익이고, 임신중절 급증을 막으려면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때문에 태아의 생명권이 쉽게 부정돼선 안 된다. 헌재의 ‘낙태죄 합헌’ 결정이 6년 만에 바뀌어야 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고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모자보건법이 인정하는 사유 외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임신중절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입법적으로 재검토해 볼 여지는 있다”며 공을 국회로 돌렸다.

조 재판관은 법무부 측 변호사들에게 “임신중절 여성의 38%는 피임 실패로 원치 않은 임신을 했다는데, ‘임신하면 출산하라’는 식의 낙태죄 조항은 가혹하지 않나” “임신 경험자의 40%가 낙태 시술을 받았다고 할 만큼 임신중절은 일반적인 경험인데, 국가가 이토록 많은 여성을 형사 처벌하는 게 합당한가” “남성은 두고 여성만 처벌하는 현 낙태죄 조항은 가혹한 성차별적 효과를 가져오지 않는가” 등을 물었다.

서 변호사는 일부 지적에공감한다면서도 “그런 이유로 낙태죄가 위헌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낙태죄가 아무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같이 성관계한 남성은 처벌하지 않는 낙태죄는 성차별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병역의 의무를 얘기할 때 남성들이 비슷한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신체 조건이 다르니 법도 다르게 적용되는 것이다.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법무부 측 대리인들은 “정부는 남성이 양육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며, 청와대가 국민청원 답변에서 약속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는 어떻게 추진 중인가” 등의 질문에 답변하지 못했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은 “낙태죄 위헌 논의가 시작된 지 10여 년째 사회적 합의가 그다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정부가 이처럼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는) 시도를 하지 않아서라고 본다”라며 비판했다. 이에 법무부 측 대리인은 “국회에서 더 적극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법무부 측 참고인 정현미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현 모자보건법상 낙태 허용 사유는 지나치게 좁으니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추가하거나 임신 12주 이내 낙태 허용 등 허용한계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낙태의 원칙적 금지는 거의 모든 입법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므로 위헌으로 볼 수 없다”면서도, “국제적으로도 낙태는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낙태 규제가 더 많은 출산이나 더 많은 낙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과거 사회가 억압적 형벌로 낙태와 싸우려 했다면 오늘날은 교육·피임·상담 등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막는 게 최선이라고 본다. 출산이냐 낙태냐 문제는 개인과 가족의 구체적이고 치열한 갈등상황에 놓인 것이고, 제 3자나 국가가 강요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청구인 측 김수정 변호사는 마무리 발언에서 “법무부는 의견서에서 여성을 ‘성행위를 즐길 뿐 책임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떤가”라며 “여성은 임신했다는 이유로 해고되기도 하고, 미혼모나 미성년자가 임신하면 비난과 사회적 차별을 감내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낙태한 여성은 불법시술하다 목숨을 잃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질병에 시달린다”며 “같이 성관계한 남성은 무엇을 감당하나. 여성 출산의 경우 남성이 양육은 동등하게 하는가. 미혼모의 4.7%만 양육비를 지급받고 남성은 낙태죄로 처벌받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 헌재소장은 “다른 건 대답 못 하겠는데, 여성이 출산하고 남성이 동등하게 양육을 했느냐는 질문에는 마음이 상당히 찔린다”고 말했다.

이날 변론기일은 오후 2시에 시작돼 3시간 정도 진행됐다. 이 헌재소장은 “선고기일은 저희가 따로 정해서 알려드리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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