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극장] 어린이·청소년 페미니스트를 위한 동화
[기울어진 극장] 어린이·청소년 페미니스트를 위한 동화
  •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
  • 승인 2018.05.23 09:26
  • 수정 2018-05-25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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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의 고민을 나눌 이야기 상대를 어디에서 찾을까. 만약 주위에서 비슷한 공감대를 가진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가까운 선생님, 양육자, 이웃들이 페미니스트여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고 행동으로 평등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현실은 어린이와 청소년들로부터 진지하고 절박한 여성주의적 각성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대부분 개인으로 고립된 형편이다. 많은 영 페미니스트들이 온라인으로 모여드는 이유다. 

책은 여기서 하나의 중요한 대안이 된다. 책 속의 페미니스트 주인공들은 갸우뚱한 문제들을 풀어주고 속 시원한 함성을 대신해주고 보다 구체적인 생활의 변화로 독자를 안내한다. 세대를 뛰어넘어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을 찾아봤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맞서는 『수상한 아이가 전학 왔다!』

『수상한 아이가 전학 왔다!』(제니 롭슨, 뜨인돌어린이)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읽을 수 있는 동화다. 전학 온 날부터 얼굴 전체를 가리는 방한모를 쓰고 나타난 의문의 전학생 이야기다. 아이들은 얼굴을 알 수 없는 이 전학생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몹시 궁금해한다. 유명한 스타일까, 큰 병을 앓았을까, 보라색 코와 초록색 입을 가진 우주인일까 헤아려보면서도 전학생과 아이들은 나날이 친해진다. 전학생은 축구 경기에서 최고의 공격수였고 학교 폭력에서 친구들을 구해주는 용감한 친구였다. 그리고 마지막 날, 전학생의 정체가 드러난다. 제니 롭슨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맞서는 작품을 써 온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작가다. 이 흥미진진한 동화도 그 연장선에 있다. 

새로운 영웅 이야기, 『조막만 한 조막이』

『조막만 한 조막이』(이현, 휴먼어린이)는 옛이야기 속의 조막이를 야무지게 되살린 동화다. 이 작품 속에는 부패하고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정치적 비유가 가득하지만 구술적 전통을 매력적으로 재현해 술술 잘 읽힌다. 여성주의자의 목소리가 구석구석 구수하게 깃들어 있다. 그리고 조막이는, 책을 덮고 두고두고 생각해도 대단하다 싶은 조막이는, 옛 판본을 뒤집는 새로운 영웅이다.

열두 살 여성 히어로, 『헌터 걸』

『헌터 걸』(김혜정, 사계절)은 독일 민담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출발한다. 어른들의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납치했던 ‘피리 부는 사나이’ 일당이 아직까지 암약하고 있고 우리 곁에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일당과 맞서 싸우는 헌터 걸들이 대대로 활약하고 있는데 2018년부터는 열두 살 이강지가 이 일을 맡았다. 초등학교 양궁반에서 활을 잡은 이강지는 헌터 걸 훈련을 받고 더욱 강해지고, 외모꾸미기 코르셋 속으로 어린이의 관심을 몰아넣고 위험에 빠뜨리는 유튜버와 정면 대결한다. 아무도 어린 여성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세계를 향해 강지는 화살을 겨눈다.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려면 『얼음 붕대 스타킹』

『얼음 붕대 스타킹』(김하은, 바람의아이들)은 열일곱 살 선혜가 겪은 성폭행 미수 사건을 다룬다.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 피해자의 트라우마, 피해자를 오히려 위기로 몰아넣는 둔감하고 폭력적인 학교 제도, 가족의 몰이해 속에 고립된 주인공의 고통이 침착하게 그려진다. 그 날 이후로 스타킹을 벗지 못하는 주인공의 마음속 얼음붕대를 풀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오늘 이 순간에도 생생한 우리 모두의 고민이 담겨 있다.

모든 어른들이 읽어야 할 『어린이를 위한 페미니즘』 『학교에 페미니즘을』

스웨덴에서 발간된 책을 옮긴 『어린이를 위한 페미니즘』(사싸 뷔레그렌, 풀빛)과 『학교에 페미니즘을』(초등성평등연구회, 마티)은 양육자와 교사들에게 권한다. ‘나도 한때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지금의 영 페미니스트들과 대화하기 위한 어떤 준비라고도 할 수 없다. 『어린이를 위한 페미니즘』에는 간략하게 간추린 페미니즘의 역사와 더불어 열두 살 페미니스트들과 대화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들이 잘 정리돼있다. 『학교에 페미니즘을』은 교사들의 글이지만 교육현장을 둘러싼 모든 어른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무엇부터 해결해나가야 하는지 매우 솔직하고 정확한 진단이 담겨 있다. 

응원단이 많아야 선수가 잘 뛴다. 좋은 선수는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성평등의 운동장에는 불펜의 연습생도, 구원투수도, 홈런타자도 필요하며 책은 그들을 키우는 자연스럽고 재미있고 효과적인 베이스캠프다. 참고로 위에 언급한 동화의 주인공은 모두 여성이다. 국경과 시대를 뛰어넘어서,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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