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활동’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자유와 달콤함은 세대, 지역, 혼인상태, 장르, 생애주기별로 각기 다른 여성예술가들끼리의 다층적 결을 드러내기보다는 신비화하고, 어루만지기보다는 봉합한다. 이번 시리즈는 여성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간의 관계를 예술가 본인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들어보는 자리다.

 

정직성, 201750, 캔버스에 아크릴릭과 유화, 89.4×130.3cm, 2017
정직성, 201750, 캔버스에 아크릴릭과 유화, 89.4×130.3cm, 2017

[여성예술가의 삶과 예술] ①정직성 작가

여성예술가끼리의 ‘대화’ 제안

 

지금 ‘기계’라는 제목의 개인전(5월11~6월10일, 갤러리 JAC)을 열고 있는 정직성(42) 작가는 “여성예술가들이 작업을 지탱해가는 노하우를 서로 공유하는 문화가 전무하다시피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현재 네 살인 셋째를 키우며 작업활동을 병행 중인 그는 “다른 선배 여성작가분들은 어떻게 육아와 작업을 병행하셨는지, 시간 관리는 어떻게 했는지, 아이는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 어린이집에 맡길 마음이 드셨는지 등 궁금한 게 많았지만, 웬만큼 친한 관계가 되기 전에는 알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교육통계에 따르면, 미술대학 입학자수는 4만2370명(2017년 기준)으로 이중 여학생이 73%를 차지한다. 이 여학생들의 상당수가 향후 양육과 예술활동을 병행할 것임은 자명하지만, 정직성 작가는 이에 대한 책이나 자료를 찾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현재 정 작가가 작업에 몰두하는 시간은 대략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인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나의 작업활동은 어린이집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보육시스템은 양육과 작업의 병행에 결정적이다. 그는 국공립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낼 때 직장맘임을 증명해야 하는 일이 힘들었다고 한다. 화가는 변호사, 의사 등의 직종과 달리, 면허증이나 증명서가 없기 때문이다. 당시 입주해있던 미술창작 레지던시 담당자에게 부탁해, 임의로 증명서를 만들어 제출했고, 다행히 레지던시의 운영주체가 시립미술관이었기에 통과됐지만 ‘예술가’와 ‘직장맘’ 사이의 거리감을 체감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국공립 레지던시 입주에 성공하는 작가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예술가로서 직장맘의 자격을 얻는 것은 일반 여성작가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현재 정 작가는 화가(미술업)로 사업자 등록을 낸 자영업자로서 증명을 하고 있다. 또한 세 아이의 엄마이기에 다둥이 우선 어린이집 이용이 가능하다.

 

“어린이집과 같은, 육아를 담당해주는 국가복지 시스템이 작가들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고 있다. 첫째와 둘째 아이를 키울 때에는 이런 시스템이 지금처럼 잘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내 또래의 작가들이 출산 후, 육아를 도와줄 집안의 어른이 없으면 작업을 접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고 그는 전한다. ‘왜 위대한 여성예술가가 없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실마리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육아 외에, 예술작업을 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몰이해도 고된 지점이다. “레지던시에 입주하는 등 공적, 사적 기관들이 나의 작업을 응원해 준다는 걸 가족들에게 어필하며 작업활동을 연명할 수 있었다. 작업을 계속 한다는 것 만으로 종종 이기적인 사람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출산 후 작업을 병행하면 ‘아기에게 올인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한다’는 시선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쉽게 자신의 얘기를 주변에 털어놓기 어려웠던 적도 있는 것 같다. 오해받기 싫으니까.”

현재 정 작가는 지금까지 ‘안개 속을 헤쳐오 듯’ 살아온 것 같다고 한다. 그는 이제 숨을 들이쉬고, 여성작가로서 살아가는 것이 두려운 후배 여성작가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많은 여성작가들이 조금씩이나마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여성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직성 작가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올해 갤러리 JAC(장안평 자동차산업 종합정보센터)에서 20번째 개인전을 개최 중이다. 연립주택 시리즈로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뒤 작업을 이어오며 최근에는 자동차 부품을 화폭에 옮기고 있다. 지난해에 리안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질 정도로 미술계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작가 홈페이지 honesty.egloos.com

 

필자 정필주는 독립 큐레이터로 예술사회학적 관점에서 예술가 복지, 여성미술, 디지털 미술에 관한 연구를 한다. 국제 예술교류 기획자이자 평론가로서 국내외 예술가들과 협업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시 문화예술 불공정피해 상담센터 코디네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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