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에게 태아보험

가입 권유하는 사회 씁쓸

아픈 어린이의 문제,

국가가 함께 해결해야

 

임신출산용품 박람회에 참가한 아기와 엄마들. ⓒ뉴시스·여성신문
임신출산용품 박람회에 참가한 아기와 엄마들. ⓒ뉴시스·여성신문

저는 사회복지사이자, 이번 달 말 출산을 앞둔 30대 중반 임신부입니다. 임신을 하니 주위에서 아이 보험을 들라고 많이들 권유합니다. 저는 아직 보험을 들지 않았고 앞으로도 들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이의 생명은 국가가 함께 해야 한다는 제 경험에서 나온 소신입니다.

사회 초년시절 사회복지사로서 맡은 첫 업무는 ‘고위험 사례관리’였습니다. 빈곤, 중독, 폭력, 장애 등에 노출돼 있는 가정의 사례 50가지를 전담해 개입하고 함께했습니다. 그때 몇 가정에서 아이가 중병에 걸렸고, 가정 내 생계는 급격히 어려워졌습니다. 긴 병과 생활고에 부부 사이엔 금이 갔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한 가정이 온전히 아이의 생명을 책임지는 구조는 옳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라고 깨닫게 됐습니다. 그 가정의 사연은 결국 TV모금 프로그램과 연계해 방영됐고 어느 정도 모금액이 채워져 급한 불은 끌 수 있었습니다.

허나, 담당자로서 아이의 생명을 이렇게 때때마다 모금에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과 생계가 힘들어도 불안감에 사보험을 가입해야 하는 현실에 분노했습니다. 어린이의 병원비로 인해 가정이 붕괴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어린이병원비 국가보장연대’에 참여해 활동하게 됐습니다. 연대는 ‘비급여’를 포함해 아픈 아이의 병원비로 가정에서 연간 100만원 이상 쓰지 않도록, 100만원 이상 소요될 땐 국가에서 보장해달라는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문재인 케어’ 이후에도 희소병, 중병에 걸린 아이를 위한 치료비는 여전히 ‘비급여’에 해당해 많은 가정이 여전히 수천만원의 재정적 부담을 지고 있습니다. 한 해 보험료 4조원의 10%인 4000억원이면 이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결혼 후 ‘어린이 병원비’ 부담 문제를 실감했습니다. 임신 확진을 받고 진료실을 나서는 길에 로비 한 켠의 태아보험 가입 데스크를 마주했습니다. 설계사는 보험 상품을 설명했고,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제시하며 가입을 권유했습니다. 저는 정중히 거절하며 뒤돌아섰지만, 집에 오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한 보험사 통계에 따르면 2016년도 출생아 수의 50%가 어린이 보험에 가입하고 그 중 태아보험 가입은 62%라 하는데 ‘내가 너무 안일한 걸까?’ ‘혹시나 내 아이에게도?’ ‘나보다 일찍 출산한 친구들도 다 태아보험에 가입했는데, 고령산모인 내가 무슨 복지운동을 해?’란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부모님을 비롯해 친구들도 ‘아이 병원비로 드는 돈이 많다’ ‘보험은 어릴수록 드는 게 좋다’ ‘한 달에 최소 한두 번은 병원행이다. 애 낳거나 키우다가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른다’며 보험가입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한 며칠을 남편과 고민했지만 결국 가입하지 않았고, 출산 예정일을 일주일 앞둔 지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나 한 사람의 미약한 운동으로 보일 수 있으나, 아픈 어린이의 문제를 ‘한 가정 내에서의 해결’문제가 아닌 ‘국가가 함께 해결’할 문제로 봐야한다는 소신으로 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저출산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 상당한 이 시대. 어린이 병원비만큼은 국가가 보장하는 세상, 맘 편히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그 세상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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