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고용부에 산재 제도 개선 권고

열악한 노동환경 탓에 간호사들

집단유산·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

여성노동자 건강권 사각지대 보완되나

 

임신 중 업무상 유해인자에 노출돼 미숙아나 선천성 질환아를 낳으면 산재보험을 적용할 수 있도록 입법이 추진된다. 산재 판정에 있어 여성노동자의 건강권이 제대로 보장받고 있는 상황에서 산재보험 제도 개선으로 이를 보완할 수 있을지 관심이 높다.  

여성가족부는 산업안전 정책에 대해 특정성별영향분석평가를 실시하고, 관련 부처에 입법을 통한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고 3일 밝혔다.

특정성별영향분석평가는 여가부가 각 부처 주요 정책과 법령을 양성평등 관점에서 검토해 특정 성에 불리한 사항 등에 대해 개선을 권고하는 제도다.

현행법상 임신한 노동자의 유산·사산과 업무가 인과관계가 확인되면 산재보험이 적용되지만, 미숙아나 선천성 질환아를 출산하면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다. 여가부는 이를 헌법상 모성보호의 의무(제36조제2항)와 여성 근로자 보호의무(제32조제4항)에 반한 것으로 분석하고, 산재보험 제도 소관부처인 고용노동부에 조속한 입법 조치를 권고했다.

실제로 지난 2009~2010년 제주의료원에서 간호사 15명이 임신을 했다가 5명이 유산하고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임신 기간 중 생식 독성 물질을 분쇄하는 일을 해야 했다. 간호사들이 분쇄한 약품 중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기준으로 생명이 위독한 경우가 아니면 임산부의 복용이 금지되는 D등급 의약품이 37종, 임산부와 가임기 여성의 복용이 완전히 금지되는 X등급 의약품 17종이 포함돼 있었다.

서울대와 산업안전연구원의 두 차례 역학조사 결과, 간호사들의 유산과 선천성 질환아 출산은 업무 환경과 관련 있음이 입증됐으나 이들의 피해는 산재로 인정받지 못했다. 근로복지공단이 간호사들의 선천성 장애아 출산을 산재로 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간호사들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8년째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번 특정성별영향분석평가 결과, 산업 분야에 여성 진출이 늘어나고 새로운 화학물질 등 위험요인이 증가함에도 산업 현장에서 여성노동자의 모성보호를 위한 법‧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취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에 대해 규정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비롯한 산업안전보건법령에서 임산부 노동자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은 거의 전무하며, 임신노동자를 비롯한 노동자에게 유해한 화화물질은 노출기준이 설정된 것 외에는 산업안전보건법령상 규제를 받지않는 경우가 다수라는 설명이다.

여가부는 이같은 분석내용을 토대로 업무상 질병의 구체적 인정기준에 유‧사산을 명시하고, 태아의 건강 손상에 대해서도 산재보험을 적용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입법 방안을 마련하도록 노동부에 권고했다. 노동부는 개선 권고의 취지에 공감해 임신 중 태아의 건강손상에 대한 산재 보상방안에 대해 올해 중 연구용역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입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여가부는 임신 노동자의 산업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사업주와 임신 노동자에게 취급 물질의 유해성과 위험성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구체적인 안전‧보건상의 가이드라인을 마련‧배포할 것을 권고했다. 가이드라인에는 작업환경의 관리, 올바른 보호구 착용, 의사와의 면담 등 의학적인 조치 등이 포함된다.

이건정 여성가족부 여성정책국장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지만, 여성들이 노동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에 그동안 우리사회가 귀 기울이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여성가족부는 그동안 아무도 살피지 못했던 영역의 빈틈을 메운다는 자세로 앞으로도 정부 각 부처의 정책을 성평등 관점에서 꼼꼼히 살펴보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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