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박은정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불평등·불공정·부정부패

뿌리 뽑을 주무부처 수장

5년 내 세계 20위권 청렴 국가

‘갑질’은 생활적폐

구조 바꾸는 교육 필요

 

 

박은정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은 ‘5개년 반부패 종합계획’에 대해 “부패없는 공정사회를 만든다는 정부의 중장기 반부패 로드맵이자, 국민의 염원이며 정부의 의지”라며 “민관이 공동 설계했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박은정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은 ‘5개년 반부패 종합계획’에 대해 “부패없는 공정사회를 만든다는 정부의 중장기 반부패 로드맵이자, 국민의 염원이며 정부의 의지”라며 “민관이 공동 설계했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촛불민심’으로 탄생한 정부가 국정과제 최우선 과제로 ‘반부패’를 꼽고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그 중심에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 박은정 위원장이 있다. 권익위를 이끄는 박 위원장은 인권·시민사회에 적극 참여해온 법철학자다. 정부는 최근 ‘5개년 반부패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국제투명성기구가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한국의 순위를 지난해 180개국 중 세계 51위에서 올해 40위권, 2019∼2020년 30위권, 2021∼2022년 20위권으로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목표 달성을 위해 뛰어야 하는 박 위원장의 어깨가 무겁다. 지난해 6월 28일 취임한 그는 300일간 숨가쁘게 달려왔다.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 ‘5개년 반부패 종합계획’ 등 굵직한 사안이 즐비했다. 권익위는 반부패 정책 총괄을 비롯해, 고충민원 해결, 행정심판제도까지 3가지 기능을 가진 기관으로 업무 영역이 상당히 넓다. 그러다 보니 본청이 있는 세종시와 서울을 일주일에도 서너 번씩 오고 가는 박 위원장 얼굴은 취임 초보다 야위어있었다.

박 위원장을 마주한 날은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역사적 날이었다. “통일을 상상해보면 국민권익위의 역할도 커질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박 위원장은 “만약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의 고충도 국민권익위가 처리해야 하니 여러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지난해 5월 촛불정신으로 탄생한 정부의 첫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취임한 뒤 300여일이 지났습니다. ‘부정청탁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개정, ‘5개년 반부패 종합계획’ 발표 등 굵직한 사안이 많았는데 소회가 궁금합니다.

“새 정부가 부정부패 척결에 대한 열망으로 탄생한 만큼 부패 방지 척결이 주 임무인 국민권익위의 위원장을 맡아 어깨가 무거웠어요. 그동안 반부패 정책에 대한 성과를 위해 새로운 시스템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300일을 긴장해서 보냈습니다. 반부패 정책 협의회, 민관 협의회 등 경제직능, 언론 시민사회 학계를 비롯해 공공부문까지 전체를 아울러 운영하는 틀 속에서 반부패 개혁시스템을 새로 만드는 일에 집중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취임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사안은 무엇인가요.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입니다. 한쪽에선 법을 지지하고, 다른 한쪽에선 그 법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죠. 정치권에서도 화훼, 농축산 업종 등 피해를 보는 업종을 위해 법을 보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요. 청렴의지는 결코 약화되지 않으면서도 조정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을 찾는 데 쉽지 않았어요. 청탁금지법으로 화훼 농가, 농축산 업계의 내부 부진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정책 구조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안인데다 한편으론 국민들께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 다른 부처와 법을 조정하는 일까지 함꼐 이뤄져야 하는 일이니까요. 결과적으로 무사히 시행령 개정을 해냈고 그 결과 일부 농축산물에 한한 예외 조항도 만들었고, 경조사비에 대해선 청렴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엄격하게 한 부분은 성과인 것이죠. 제가 생각하기엔 한 법률로서 우리사회 제도적인 충격을 주고 국민의식에 영향을 준 법은 참 드물다고 생각해요. 부정청탁금지법은 부정청탁 행위자 처벌보다 공직자들이 공정한 직무 환경에서 공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다는 의미가 더 큽니다. 공직자에게만 해당되는 이 법에 대한 높은 관심은 그만큼 과도한 접대문화와 청탁관행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부분을 공직자 스스로 돌아보는 집단적인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부정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으로 농축수산물과 농축수산 가공품에 한해 선물 상한액을 현행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오르고, 경조사비는 현금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낮아졌다.

 

5개년 반부패 종합계획 4대 전략 ⓒ국민권익위원회
5개년 반부패 종합계획 4대 전략 ⓒ국민권익위원회

-5개년 반부패 종합계획에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종합계획은 각 정부의 기관별 추진과제를 바탕으로 온·오프라인으로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민관협의회 논의를 거쳐 확정했습니다. 계획이라는 말에서 나타나듯 이번 종합계획은 부패없는 공정사회를 만든다는 정부의 중장기 반부패 로드맵이자, 국민의 염원, 정부의 의지입니다. 민관이 공동 설계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국민과 함께 하는 청렴한 대한민국이라는 큰 비전 아래 함께하는 청렴, 깨끗한 공직사회, 투명한 경영환경, 실천하는 청렴 등 4대 전략을 세우고 50개 과제를 제시했습니다. 그동안 부패 개념은 법률상으로 공직 중심으로 협소하게 본 경향이 있어요. 실제로는 부패의 80%가 민간 영역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기업의 준법 경영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뒀습니다. 처벌이나 규제 위주가 아닌 기업이 자율적으로 정화하면서,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으로 설계했습니다. 내부신고자, 공익신고자에 대한 지원도 강화했고요. 우리 사회에선 공익신고자를 ‘배신자’라고 낙인을 찍는 경우가 많은데, 이분들은 공익 침해 행위에 대해 용기를 갖고 신고한 정의의 실현자인 것이죠. 그분들을 충분히 예우하고 그 힘을 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예컨대 공익신고자의 날을 지정하거나 명예의 전당, 공익신고기금을 마련하는 일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권익위가 하는 일이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해 국정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바가 크고 국민의 생활에 직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권익위 조직 재편과 명칭 변경도 계획하고 계시다고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권익위는 진지한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패 척결이라는 사명을 가진 권익위가 충실했더라면 국정농단 사태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죠. 취임하자마자 자체 조직 진단을 시작했어요. 조직 진단과 국민여론 수렴을 통해 권익위의 기능 중 부패방지 분야를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권익위 명칭에서도 부패방지 기능이 잘 드러나지 않아 명칭과 조직을 개편하기로 했습니다.”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은 수많은 청원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고충처리·행정심판 기능을 가진 권익위에 해야할 요청도 많아 보입니다.

“저희도 국민청원 게시판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20만명이 서명해야 청와대가 답변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인데 아직 권익위가 답변해야 하는 청원은 없었어요. 국민청원 게시판에 부패방지, 고충처리, 제도개선 등과 관련있는 청원은 키워드 검색 결과 1300여건이었습니다. 20만명에 미치지 않더라도 경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한 사람의 민원이라도 점검을 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합니다. 권익위가 운영하는 ‘국민콜 110’을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해 국민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권익위는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보니 권고와 조정을 잘 수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할텐데요. 이를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요.

“권익위가 출범한 뒤 제도개선 과제로 제시한 것이 8000여건입니다. 강제력은 없지만 권고 수용률은 88.7% 정도로 낮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수용률을 높이기 위해 컨설팅을 받고 국무회의 보고도 하고 있습니다. 법률 개선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권익위가 직접 입법 제안을 하기도 하고요. 강제력이 없다는 부분이 권익위 활동의 단점일 수 있지만 좋은 의미로서 특색일 수 있습니다. 강제력을 행사해 스트롱 파워(강력한 힘)를 갖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다 소프트한 유연한 힘도 필요하거든요. ‘조정’은 흔히 강제력이 없다고 생각해요. 재판 판결만큼의 집행력이 없다고 보기 쉽지만, 사실은 잘만 하면 조정은 양쪽이 다 ‘윈윈’ 할 수 있어요. 소송은 아무리 잘해도 한쪽은 지는 것이거든요. 조정이라는 유연한 힘이 공공기관을 통해 발휘되면 만족도는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빠르게 변하면서 법만으로는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5월 1일부터 행정심판에도 조정 기능이 도입됩니다.”

-‘불공정’은 지금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큰 키워드입니다. 무한경쟁 시대에서 특히 20대 청년층은 불공정에 크게 분노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사회가 공정한 사회인지에 대한 상념도 다를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은 필요에 따라 배분하는 것이, 또 다른 사람은 능력에 따라 배분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러나 사람들이 원하지 하지 않는 것, 즉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어요. 누구나 고통은 피하고 싶고, 차별과 멸시, 소외를 싫어하지 않나요.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공정한 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 노력한 만큼 보장받는 사회, 갑질이 없는 사회를 요구합니다. 인간관계에서 누구나 겪고 싶지 않은 것들을 사회가 합리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면 그런 사회는 신뢰라는 자본이 있는 사회, 그 자체로서 신뢰받는 사회가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최근 문제가 되는 소위 갑질 문제도 결국 불공정과 맞물려 있습니다.

“갑질은 결국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권한을 남용하는 것이죠.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것이 법 정신이라면 갑질은 ‘사람 위에 사람 있다’는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정한 질서를 확보하지 못할 때 그러한 프레임이 전반적으로 퍼지게 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갑질은 ‘생활 적폐’라고 할 수 있어요. 갑질은 처벌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신뢰사회의 기반이 되는 구조가 퍼지고 청렴 문화가 확산돼야 합니다. 진부할 수 있지만 교육에서 이뤄져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제 앞에 놓인 것을 묵묵히 하는 것이죠. 권익위는 정부의 한 부처이지만 여느 부처와는 다른 성격이 있어요. 행정통제 기능은 불량 행정을 행정 안에서 애프터서비스 하는 개념 아니겠습니까. 권익위 역할에서 본다면 공직사회 부패를 예방하고 적발하는 역할을 하고요. 공직사회 안에서 권익위는 ‘NGO’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권익위 직원들을 ‘호민관’이라고 생각해요. 국민들에게 다가가 국민의 눈높이에서 고충을 덜어주는 임무를 맡은 사람이니까요. 저는 남을 돕는 일이 공직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권익위는 남을 돕는 것만으로도 뿌듯한데 권익위 직원은 남을 돕는 일을 하면서 생업도 영위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힘이 모자라지만 직원들의 호민관의 자세로 일할 맛 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 다하겠습니다.”

 

박은정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경북 안동 출신으로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법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이화여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4년 서울대 법대로 옮겼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고,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 등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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