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애의 시골살이] ④ 봄꽃이야기
[김경애의 시골살이] ④ 봄꽃이야기
  • 김경애 편집위원
  • 승인 2018.04.17 08:43
  • 수정 2018-04-19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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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애의 시골살이]

“지상에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뜨거운 술에 붉은 독약 타서 마시고/ 천 길 절벽 위로 뛰어내리는 사랑/ 가장 눈부신 꽃은/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다”  -「동백」 문정희 시인

 

금남화. 몽우리 하트 모양이다. ⓒ김경애 편집위원
금남화. 몽우리 하트 모양이다. ⓒ김경애 편집위원

봄이 되면 매화와 벚꽃을 시작으로 꽃들이 겨우내 움츠리고 지내던 우리들을 불러낸다. 전국이 꽃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나도 봄비 내리기 전에 서둘러서 만개한 벚꽃을 보기 위해 합천의 벚꽃 100리길을 다녀왔다. 이 벚꽃이 우리나라가 원산지라고 하니, 벚꽃 놀이가 일본이 남기고 간 문화가 아닐까 해서 찜찜했던 마음이 사라져 벚꽃이 활짝 피고 지는 모습이 더 예뻤다.

우리 앞마당에는 능수벚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가지를 늘어뜨리면서 옅은 분홍색 꽃이 가득 필 때는 정말 아름다웠다. 그런데 하루는 친구들과 오랜 만에 남산에 올랐더니 어마어마하게 큰 능수벚나무가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 집 마당의 능수벚나무가 왠지 너무 잘 자란다 싶었는데, 조만간 이렇게 자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수벚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바로 옆에 있는 라일락이 햇빛을 충분히 못 받아 꽃을 잘 피우지 못하고 있어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시집보내기로 했다. 작년 11월 햇볕이 잘 들고 남산의 나무처럼 자라도 지장 없는 곳에 옮겨 심었다. 올봄에 나무가 잘 살아서 꽃을 잘 피우는지 보러 갔다. 꽃은 작년만큼 많이 피지 않았지만 살아 있어 안심이다. 내년이 되면 우리 마당에서처럼 꽃을 가득 피우고 또 꽃이 떨어져 하얗게 땅을 뒤덮을 것이다.

봄이 되어도 새싹을 틔우지 않고 꽃을 피우지 않는 나무들 때문에 근심이 가득하다. 작년 가을 금목서는 처음으로 노란 작은 꽃을 가지마다 매달고 달콤한 향기를 선사했다. 제주도 곳곳에 피어 있던 금목서가 부럽지 않게 되었다 싶었는데, 죽어가고 있는 것 같다. 작년에 핀 꽃은 죽기 전에 있는 힘을 다해 피운 것인가? 새싹이 돋기를 기다리며 애처로워 매일 들여다본다. 또 작년 늦가을에 전지를 심하게 한 살구나무와 모과나무도 몸살 중인 것 같다. 살구나무는 작은 가지에서 꽃을 몇 송이 피었을 뿐이고 모과나무는 무수히 많은 잔가지만 올리고 있다. 괜히 전지했나 싶다. 올해는 달콤한 살구를 못 먹을 것 같다. 모과는 못생긴 외모의 대명사이지만 세상천지에서 썩어가면서 향기를 내는 유일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상큼한 향기로 나를 행복하게 했던 모과, 올해는 모과 없는 겨울을 지내야 할 것 같다.

 

뒤늦게 핀 자목련. 뒤로 서부해당화와 조팝나무가 보인다. ⓒ김경애 편집위원
뒤늦게 핀 자목련. 뒤로 서부해당화와 조팝나무가 보인다. ⓒ김경애 편집위원

슬픔 간직한 꽃, 동백

이른 봄에는 단연 동백꽃이다. 내가 다녔던 부산의 여자고등학교 상징이 동백꽃이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마침 노래 ‘동백아가씨’가 크게 유행했다. 당시 이미자가 불렀던 이 노래는 어디를 가나 피할 길 없이 온 길거리에 울려 퍼졌다. 이 노래는 동백의 붉은 빛을 사랑을 기다리다 지친 아가씨의 가슴으로 묘사했는데, 당시 우리 국어 선생님은 아름다운 동백을 멍든 자국으로 묘사했다고 하면서 화를 마구 내시던 생각이 난다. 동백을 보고 문정희 시인은 일찍이 “지상에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뜨거운 술에 붉은 독약 타서 마시고/ 천 길 절벽 위로 뛰어내리는 사랑/ 가장 눈부신 꽃은/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다”라고 노래했다. 이 또한 절절한 슬픈 사랑이야기이다.

꽃은 시들면 대부분 잎이 누렇거나 희게 탈색되면서 하나씩 떨어지지만 문정희 시인이 “천 길 절벽 위로 뛰어내리는 사랑”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동백꽃은 때가 되면 붉은 빛깔 그대로 송이채로 뚝 떨어진다. 우리 마당에는 올해는 지난겨울 추위로 추위를 피한 동백꽃 몇 송이가 겨우 피었는데 벌써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마루에 앉아 가만히 동백꽃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동백꽃이 툭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본다. 이 떨어지는 동백꽃과 땅 위에 붉은 꽃잎이 흐드러지게 흩어져 있는 것을 보면 이유 모를 슬픔으로 가슴이 에인다. 노래 ‘동백아가씨’와 문정희 시인의 「동백」이 다 가슴 아픈 사랑이었던 것이 이제야 이해가 될 듯도 하다. 최근 동백이 제주 4.3 당시 희생된 사람들이 차가운 땅으로 소리 없이 스러져갔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전야제에 LED 전등을 이용해서 대형 동백꽃을 만들었다고 한다. 내가 떨어지는 동백꽃을 보며 에이는 슬픔을 느끼는 것은 나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할미꽃 ⓒ김경애 편집위원
할미꽃 ⓒ김경애 편집위원

 

할미꽃은 피고 나면 어느새 잎이 가느다란 흰 가락이 됐다가 백발처럼 퍼진다. ⓒ김경애 편집위원
할미꽃은 피고 나면 어느새 잎이 가느다란 흰 가락이 됐다가 백발처럼 퍼진다. ⓒ김경애 편집위원

고개 떨구며 꼬부라진 할미꽃

봄에 피는 꽃 중에 노래로만 알고 본적이 별로 없는 꽃이 할미꽃이다. 어릴 적에 고무줄뛰기 하며 놀면서 불렀던 노래다. “뒷동산의 할미꽃 꼬부라진 할미꽃… 호호백발 할미꽃”. 할미꽃은 햇빛이 잘 들고 물이 잘 빠지는 땅에서 자라는데, 번식력이 강하지 않아 흔하지 않고 무덤가에서 자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할미꽃은 다만 노래로 알 뿐이었다. 그런데 우리 집 마당에 몇 포기가 있어 해마다 꽃을 피운다. 할미꽃을 자세히 보니 누가 이 노래를 지었는지 몰라도 ‘딱’이었다. 꽃대를 올리자마자 꽃은 고개를 떨구며 “꼬부라진”다. 여자들이 허리를 굽혀 일을 많이 해야 하고 칼슘 등 영양이 부족해서 나이가 들면 허리가 직각으로 꺾이는 모습을 비유하여 지은 이름이리라. 시골에서는 아직도 장날에 가면 허리가 꺾인 할미꽃과 같은 할머니들을 종종 만날 수 있지만 서울에서는 그런 할머니를 거의 본 적이 없다.

할미꽃은 피고 나면 어느새 잎이 가느다란 흰 가락이 되었다가 백발처럼 퍼진다. 그런데 서울은 물론 시골 할머니들도 이제 모두 머리카락을 새까맣게 물들여 하얗게 센 머리를 한 할머니는 더 이상 보기 힘들다. 하얀 머리는 나이듦의 표상이다. 산업사회 이후로 나이 든 사람은 존경은커녕 기피와 차별의 대상으로 전락했고,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려고 너나 할 것 없이 머리를 검정색으로 물들였다. 특히 시골 할머니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새까맣게 물들여 빠글빠글 볶는 파마로 헤어스타일을 통일하고 있다. 더 이상 할미꽃과 같은 쭉 뻗은 흰 머리카락은 찾아볼 수가 없다. 앞으로 할미꽃이란 이름은 전설로만 남을 날이 머지않았다.

우리 마당에서는 튤립이 이제 키를 올리면서 몽우리가 맺혔다 피기 시작하고 있다. 정원 사진으로만 보던 아름다운 튤립을 가까이에서 실물로 본 것은 양평의 강혜자 선생님 집 앞마당이었다. 보라색과 분홍색 두 색깔이 이룬 조화는 꽃 색깔 배합에서 최고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몇 년 전 봄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에 갔을 때 튤립은 이미 피었다 지고 있었지만 여러 색깔의 튤립이 다른 꽃들과 어우러져 있었고 꽃잎을 벌리며 시들어가는 튤립을 가까이 보는 첫 경험을 했다.

 

황매화 ⓒ김경애 편집위원
황매화 ⓒ김경애 편집위원

2년만 활짝 피는 튤립

이렇게 예쁜 튤립을 나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구근이 비싸서 부러워만 했다. 그런데 서울의 한 대형 슈퍼마켓이 10월이 되면 구근을 싸게 판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친구 정강자에게 부탁했더니 구근을 선물해줬다. 11월에 대문에 제일 가까운 곳에 잔디를 파내고 거름을 주고 심었다. 식물 가꾸기 책에는 날씨가 추울수록 그다음 해에 예쁜 꽃을 피운다고 했지만, 걱정이 되어 부직포를 덮어주었다. 봄이 되자 튤립이 보라색, 분홍색은 물론 노란색 등 각종 색깔이 섞여 피었다. 대문을 활짝 열어놓으니 튤립을 처음 보는 동네 이웃들은 물론 우체부 아저씨와 택배 배달원들까지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꽃이 지고 난 후에는 구근을 파서 서늘한 곳에 보관했다. 이듬해에도 꽃이 아름답게 피었는데, 3년째가 되는 작년에는 꽃이 부실하기 짝이 없었고 꽃대를 올리지 않는 것도 있었다. 네덜란드가 튤립 구근을 계속 팔기 위해 2년만 꽃이 피도록 ‘어찌어찌’ 했다는 말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튤립 구근에 ‘무슨 짓’을 한 것인가? 튤립은 터키가 원산지인데 어느 틈에 네덜란드가 국가의 대표 상표로 내세우면서 장사를 톡톡하게 하면서 2년만 꽃이 제대로 피도록 ‘무슨 짓’을 한 것이 얄밉다. 우리 마당의 단연 인기 꽃인 튤립을 포기할 수 없어 대구의 꽃집에서 새로 구근을 사서 심었지만 언제까지나 구근을 사서 심어야 할지 고민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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