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3일 열린 강원도 주최 ‘평창포럼 for 여성평화 2018’ 주제 발표문을 발췌한 것입니다.

 

지난 2015년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며 비무장지대(DMZ)를 도보로 종단한 위민크로스DMZ(Women Cross DMZ) 대표단이 시민환영단과 함께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경의선 철책을 따라 걷고 있다. 이들은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위해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2015년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며 비무장지대(DMZ)를 도보로 종단한 위민크로스DMZ(Women Cross DMZ) 대표단이 시민환영단과 함께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경의선 철책을 따라 걷고 있다. 이들은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위해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겨울, 우리는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겨울 스포츠의 진정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아직도 ‘영미야~’라는 다급하고도, 사랑스런 외침이 귀에 쟁쟁하다. 남북선수들이 펼친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드라마는 평창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올림픽 기간의 남,북 간 외교 행보는 한반도 평화에 ‘기회의 창’을 열고 작은 평화씨앗을 심었다. 이어진 4월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정상회담 소식은 한반도는 물론 세계를 놀라게 했다. 평창올림픽의 평화기운이 평화를 극적으로 진전시키고 있는 형국. 그러나 우리는 비핵평화와 통일에 이르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가를 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정상회담들의 결과도 낙관하기 어렵고 과정도 조심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비핵화를 향한 여정은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평화역량을 끝없이 시험하는 고된 시험대가 될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어느 때 보다도 비상하게 평화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에 서있다.

여성의 담대한 도전들

여성들은 한반도의 평화가 위협받고 남북관계가 부침을 거듭할 때마다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6.25 전쟁 직후에는 무너진 가정과 취약 여성들의 삶을 복구하며 전후 황폐해진 국가 재건에 힘을 보탰다. 이 후 한국의 근대화와 민주화 시기 그리고 ‘유엔 세계여성의 해(1975)’를 거치며 여성의식, 사회의식, 역사의식을 갖추게 된 여성들은 1990년대 들어 본격적인 평화운동에 나선다. 여성들은 한국의 역사와 분단 상황, 사회현상 그리고 그 안에서의 여성들의 삶을 그들의 경험과 관점으로 재해석하며 다양한 대응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피해자 여성’이란 고정된 관념을 과감히 깨고 ‘변화의 주체(Agent of Change)’로 일어나 폭력적 현실을 변경하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그 중, 가장 파격적이고 담대한 도전은 ①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 ②남-북-일 3자 여성교류 운동, ③북한여성들과 어린이 식량 지원 활동, ④남북여성교류 운동 등이었다.

새로운 도전을 향해

그러면 2018년 평창평화올림픽 이후, 여성들은 어떤 도전을 감행할 수 있을까?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평창과 강원도는 재정의 되었다(redefined). 올림픽을 준비하고 개최하면서 강원시민들은 단합과 자발성을 발휘하며 세계시민(global citizen)으로 거듭났다. KTX 경강선 개통으로 강원도는 장차 원산,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유럽으로 연결되는 대륙진출의 한 축을 갖게 되었다. 유엔의 ‘올림픽 휴전 결의’와 평창올림픽에서 벌어진 남북 단일팀(여자아이스하키) 경기, 그리고 이어진 남북대화 행보는 올림픽의 평화정신을 온전히 구현, 한반도에 드리웠던 전운을 일시에 걷어냄으로써 ‘평화발신기지 강원도’라는 올림픽유산을 남겼다, 이 올림픽 평화유산을 어떻게 나누고 발전시킬지 하는 문제가 바로 강원 시민들과 여성들이 풀어가야 할 평창올림픽 이후 과제다.

평창올림픽의 평화유산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방,외교,통일 문제는 남성의 일’이라는 낡은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국방,외교,통일 영역의 구경꾼 또는 무관심층으로 소외되고 배제돼 왔다. ‘여성은 가정 내 존재, 남성은 사회경영주체’라는 고정관념이 사회를 지배해왔기 때문. 그러나 국방,외교,통일 정책이 실패할 경우, 여성들은 부지불식간에 공녀, 환향녀, 위안부, 등, 가장 참혹한 피해자가 되었다. 아직도 이산가족의 고통을 속수무책으로 견디며 살고 있다. 남북관계경색으로 장사가 안 되면 여성은 더 힘든 노동에 나서야 한다. 어느 정책이든 그것이 여성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한, 여성은 이해당사자로서 자신들의 의견과 목소리, 가치(성인지적 관점)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사회 모든 영역에 여성이 고루 참여하는 것은 평등한 시민의 당연한 권리이며 책임이다. 여성과 청년은 오랫동안 사회 주변부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기성의 질서와는 다른 질서를 꿈꾼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주변부 여성과 청년들이 겪는 비평화적 삶의 경험은 다른 평화세계를 상상하는데 유익한 길잡이며 자원이 될 수 있다. 인식을 바꾸면 여성과 청년은 평화유산을 발전시키는데 가장 유력한 집단이며 강력한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변화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평화역량, 통일역량을 개발하고 축적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평화와 통일’이라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힘, 또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교육과 대화 및 토론의 장을 확대하는 일이 중요하다. 특히 한국은 ‘남남갈등’이라는 중병을 앓고 있어 평화적 갈등해소 역량을 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상대 의견을 경청하면서 대화, 또는 협의(consultation)→ 타협(compromise)→ 합의(consensus)→ 협력(cooperation)의 선진 문화 행위규범을 도입, 일상적으로 연습하고, 실험하고, 축적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동시에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합의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제도를 만드는 노력도 필요하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토론을 거쳐 통일문제에 대한 기본적 행위규범인 ‘통일국민협약’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원칙을 세워보자는 것. 여성들은 일찍부터 ‘통일여성협약’ 논의를 제안한 바 있다. 여성의 관점, 가치, 요구에 기초한 통일협약을 만들어 보자는 것. 예를 들면 “①모든 정부는 7.4남북공동성명에서부터 2007남북정상선언에 이르기까지, 모든 남북 간 합의를 계승, 발전시킨다. ②모든 통일정책 결정과정에 여성의 평등하고 완전한 참여를 보장한다. ③모든 갈등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하고 그 결과는 존중하고 협력한다. ④모든 협상테이블에 여성참여를 반드시 보장한다. 등. 이번 포럼을 계기로 여성들이 ‘통일여성협약’ 논의를 이어간다면 지역여성들의 요구가 반영된 보다 풍부한 협약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여성들과 청년들이 북측 지자체와 남북교류의 물꼬를 틀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자체별 남북교류는 여성교류, 민간교류를 주류화, 전면화 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또한 국제연대와 공공외교활동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통일문제는 남북문제인 동시에 국제문제라는 점에서 주변국과 시민들에게 지속적으로 통일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통일이 그 나라에도 이익이 된다는 것을 설득하며 지지와 협력을 구하는 공공외교 노력이 중요하다. 이번 포럼을 평창국제여성평화포럼으로 확대해 나간다면 통일을 위한 국제 인적네트워크와 신뢰기반을 마련하고 세계와 평창의 평화유산을 나누고 발전시키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현숙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여성부의장 ⓒ여성신문
이현숙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여성부의장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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