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현대 자무나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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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최빈국 방글라데시 자무나 강변에는 한국인 학생 4명이 다

니는 ‘작은 학교’가 있다. 8세부터 10세에 이르는 4명의 학생들이

이 작은 학교의 전교생이다. 신동석-선웅 형제와 박지운-지영 남매

가 영국인인 캐롤 선생님과 함께 영어 수업을 받는다.

학교 교사도 스몰 사이즈. 아파트 현관문 처럼 생긴 목재 ‘교

문’에는 ‘메리 크리스마스’의 소박한 장식 아래 ‘서로를 사랑

하라’는 글귀가 교훈을 대신해서 쓰여져 있다. 교문을 들어서면

교실로 쓰이는 작은 방 두개가 있다. 한 방에는 귀엽게 생긴 책상

4개가 놓여져 있다. 마치 버림받았던 백설공주를 사랑으로 반겨주었

던 작은이들의 집에 들어선 느낌이다.

벽면 게시판에는 아이들이 그려놓은 그림이 붙여져 있고 한켠 선반

에는 캐롤 선생님이 정성스럽게 모아놓은 아이들의 작품들도 잘 간

수돼 있다.

전교생이 4명이니 차별이나 소외 무관심 같은 일은 불가능하다. 4

명이란 숫자는 교사의 사랑을 충분히 나눠갖는 데에 이상적이다.

캐롤 선생님은 독일에서 아이들을 가르쳐본 경험을 되살려 영어,

수학, 과학, 음악, 미술 등의 다양한 커리큘럼을 짠다. 영국이나 방

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서 좋은 교재를 구입하는 것도 캐롤 선생

님이 직접 해야 하는 일이다.

캐롤 선생님은 “아이들이 배우고 소화하는 과정을 일일이 지도

할 수 있다”고 ‘작은학교’의 장점을 말한다. 영어가 서툰 아이들

이지만 교사와 학생이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

에 의사소통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학교 주변에는 모래밭과 잔디밭, 운동장이 있을 뿐이다. 불량 비디

오나 전자오락실, 노래방,교통사고, 유괴 등의 유해환경을 걱정할

염려가 없는 터라 아이들은 깜깜해질 때까지 자연속에서 신나게 뛰

어노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이 아이들은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서 이곳에 오게 됐다. 이 아이

들의 아버지들은 모두 현대건설 방글라데시 자무나 다목적 교량 공

사 현장(소장 김영배 전무)에서 일한다. 94년 5월 현대건설은 방글라

데시 정부로부터 2억5천만불에 이 공사를 수주하여 94년 10월부터

착공에 들어갔다. .

방글라데시는 전국토가 삼각주 지역이라 국토가 전반적으로 강 보

다 낮은데 반해 수리관개 시설은 전혀 안돼 있어서 해마다 빈번한

홍수 때문에 국토의 80%가 침수되는 ‘세계 최악의 환경’이다. 거

기에 5-6월의 계절풍의 강한 비바람을 동반하며 숲과 나무는 찾아

보기 힘든 황량한 땅. 사막에서 부는 모래바람 같은 황사현상이 3

월경에 시작해 7월까지 이어지고 그 뒤 9월까지는 홍수, 12월까지는

태풍이 몰아친다.

자무나 강은 방글라데시를 동서로 양분하는 거대한 강으로 강폭이

11Km에 이르며 홍수때면 강의 본류가 바뀌기 때문에 70년대부터

교량건설 타당성 조사가 실시되었으나 실제 공사는 불가능 하다는

판단이 내려져 왔다.

현대건설은 교량 하부구조를 이루기 위해 지하 80미터까지 파일을

박아내려야 했고, 공사에 필요한 돌을 480Km 떨어진 곳으로부터 수

송해오는 등의 난제를 해결해내면서 6월 공기내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4Km에 이르는 반달모양의 교량은 왕복 4차선 도로에 철도,

고압송전선, 개스라인, 각종 전화선을 동서로 연결시키는 유일한 육

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 교량의 완공으로 방글라데시는 GNP 15%의 증진효과를 보게

된다. 방글라데시 최대의 숙원사업이 이뤄지는 것이다.

현대건설에서는 이 공사현장에 파견된 직원들을 “자존심과 명예

로 무장된 전사들”이라 부르고 있다. 항만·교량의 최고 실전 사령

관으로 불리는 김영배 소장은 자무나 교량의 성공적 완수를 “30여

년 간 축적된 해외건설의 경험과 한국인 특유의 정신력으로 각종 어

려움을 극복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공사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숙소에는 현재 4가족이 패밀리 하우스에

서 살고 있다. 세계 최빈국이라는 악조건 때문에 이곳 직원들은 가

족과 함께 오기를 꺼린다. 4가족은 모두 아이들이 어린 30대 부모들

로 ‘편하게 사는 이산가족’ 보다는 ‘고통분담의 동거가족’을

선택한 경우들이다. 가족 모두의 방글라데시 행을 결정하기 까지

많은 고민을 했고 주변으로부터 많은 걱정과 반대를 들어야 했던 것

도 공통적이다.

가족들은 아침, 점심, 저녁 때 아빠를 만날 수 있고, 아빠와 함께

살 수 있다는 것 한가지 때문에 풍요한 조국의 편안함을 훌훌 털어

버렸다. 그러나 막상 와보니 아이들 교육이 큰 문제였다고 어머니들

은 입을 모은다.

한국에 있었다면 큰 아이가 4학년에 진학했을 신동석-선웅 형

제의 어머니 김선미씨는 “저학년이니 내가 가르치면 되지 하고 교

과서를 싸들고 왔는데 엄마가 가르친다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고

전한다. 또 아이들이 규칙적인 등하교를 하는 게 좋다는 생각도 절

실해졌다.

올해 3월이면 귀국해 2학년이 되야 하는 박지운군의 어머니 김태나

씨는 1학교 교과서를 틈틈이 가르쳤다. 학교에서는 영어로만 공부

하기 때문에 하교 후나 방학 때에 한국의 교과과정을 익히는 것은

모조리 어머니들의 몫이다. 지운군의 어머니는 “귀국 후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까 걱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곳 아이들은

학력면에서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 아이들을 능가하고 있었다. 신

동석군의 어머니 김선미씨는 “한국에서는 오락기에 빠질까봐 신경

을 많이 써야 했는데 이곳에 와서는 선웅이가 오락기 대신 책을 보

는 재미를 알게 돼 어른들이 보는 책도 잘 본다” 면서 “책을 즐기

게 됐다는 점에서 이곳에 온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작년에 3

세된 딸과 함께 남편을 따라 이곳에 온 권기현씨는 한국에서 미술

교사를 지냈던 경험을 살려 이곳 아이들의 미술 선생님으로 봉사

중이다. 일주일에 두번 씩 권씨는 아이들과 함께 만들기, 종이접기,

그리기 등 다양한 미술 교육을 진행한다.

한국 어머니들의 교육열은 세계의 오지 방글라데시에서도 색다른

교육실험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엄마의 교육에 한계를 느낀 어머니

들은 사방으로 교사를 물색하기 시작했고 남편의 직장을 따라서 이

곳에 온 전직교사 영국인 캐롤을 만나면서 지난해 6월부터 ‘현대

자무나 스쿨’이 시작되었다.

4가족이 함께 지내는 패밀리 하우스에서는 ‘우리 아이, 남의 아

이’가 구별되지 않는다.

한정된 지역에서 살면서 한국에 돌아가서 잘 적응해야 한다는 공통

과제가 분명하기 때문에 4가족은 순수한 공동체의 정서 속에서 아

이들을 함께 기른다. 이 가족들의 공동체적 정서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학교를 뒷받침해주는 버팀목인 셈이다.

방글라데시 자무나 강변에서 현대건설은 두가지 면에서 무에서 유

를 창조하는 한국인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남자들은 세계 최고

로 난이도가 높은 교량을 건설하고 여자들은 열린교육을 실험하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학교를 만들었다.

'방글라데시=김효선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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