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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숙/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

먼저 대통령으로 당선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러나 나

라안팎의 사정이 매우 어려운 때 무거운 짐을 맡으신 것은 오히려

위로를 드리고 싶습니다. 당선 직후 일주일간 이 나라가 모라토리움

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극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모

습은 국민들에게 한가닥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만큼 국민들은 지금

믿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부디 국

민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시기를 빕니다.

저희 여성계는 대통령 당선자께서 누구보다 잘 알려진 페미니스트

요 여성문제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분인 것을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여성계는 지금 양성평등사회 구현을 위한 오랜 숙원을 새 대통령께

서 풀어주실 것이라는 기대로 차 있습니다. 여성계가 기대하고 있는

정책은 고위정책결정과정에 여성의 참여비율을 높히고, 여성의 고용

기회를 확대하며, 모성보호비용의 사회적 분담을 위시한 사회보험제

도의 개선은 물론 여성발전기본법의 개정, 양성평등교육의 확대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았던 경제

위기로 여성계 역시 ‘고통분담을 통한 국난극복’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의 나라사정을 감

안하면서 이 지면을 여성관련 정부부서의 개편과 여성인력활용이라

는 차원에 국한시켜 여성계의 바램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여성관련 정책을 종합적으로 주도하고 여성정책에 대한 기

획, 조정, 집행기능을 갖는 여성부의 신설, 내지는 대통령직속의 여

성특별위원회를 설치해야 합니다. 남녀평등사회구현을 위한 노력이

성공한 나라들을 보면 대부분 여성관련정부기구가 자율적 의사결정

및 집행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이거나, 여성관련정부기구가 대통

령 또는 총리실 직속으로 설치되어 최고정책결정권자에 대한 직접적

인 채널을 가지고 있는 경우입니다. 여성계는 오랫동안 여성담당부

서가 집행력 있는 정부부처로 자리잡기를 원했습니다. 정무장관(제2)

실은 업무의 조정기능만 있을 뿐 집행력이 없기 때문에 여성관련정

책에 대한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었습니다.

이제 공약대로 새 정부조직개편에서 여성부가 탄생되기를 기대합니

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IMF체제하에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국가

정책과 충돌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 정무

장관(제2)실의 여성부로의 개편이 기구확대가 목적이 아니라 조직의

효율성과 능률성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큰 무리가 없을 줄 압

니다. 만약 경제사정으로 여성부 신설이 당장 어렵다면 잠정적으로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대안을 모색해 볼 수도 있

을 것입니다. 그리고 국회에 설치된 여성특별위원회를 상임위원회로

전환하여 여성정책이 행정부뿐만 아니라 의회차원에서도 입안되고

집행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여성할당제의 적극도입을 통한 여성인력의 활용과 참여의

신장입니다. 대통령 당선자께서는 여성할당제를 실시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주요정책결정직 및 각급선거에서 여성의 참여확대를

약속하셨습니다. 먼저 국무위원 4인이상을 여성으로 임명하고 주요

정책결정직에 여성비율을 20-30% 할당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좋

은 인재를 잘 골라 당면한 경제 난국을 풀어가는 국가경영에 여성들

도 적극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선거직의 경우 비례대표 배분에서의 30%할당을 포함하여 지역구에

서도 이 취지를 살리신다는 공약을 하신 것으로 압니다. 아다시?

금년은 지방선거가 실시되는 해입니다. 특히 지방의회에서는 부정부

패가 적은 여성들의 알뜰 살림솜씨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매우 좋은

방안이라고 확신합니다. 광역의회의 현행 10퍼센트 비례대표제를 여

성에게 전부 할당하거나, 아니면 비례대표를 20퍼센트 정도로 확대

하여 그 절반을 여성에게 할당하는 방안을 모색해 주시기 바랍니다.

각급 지방의회는 보다 많은 여성들의 손에 맡겨 차제에 정치판으로

전락해 가는 지방자치를 주민복지와 참여에 기초하는 명실상부한 자

치제로 전환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시, 군, 구에 여성정책

담당관실등 여성관련 담당부서를 설치하고 보강하신다면 지방자치단

체 차원에서도 양성평등정책을 차분히 뿌리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봅

니다.

국제화시대에 부응한 여성인력의 세계화전략도 매우 중요합니다. 외

교, 통상 등 국제관련업무를 다룰 수 있는 여성전문인력을 양성하고,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재정적으로 적극 지원하는 과제도 필요할 것입

니다. 그리고 정부나 민간차원의 각급 국제회의에 지금까지 배제되

어 온 여성대표의 참여비율을 30%이상 할당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

다. 아울러 통일관련분像?정책수립과정에 여성참여비율을 일정비

율 이상으로 하겠다는 약속도 하셨습니다. 국민들은 김대중 대통령

재임기간에 남북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남북화해와 협력의 시대가

활짝 열리는 전기가 만들어지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남북한 민족

간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진정한 사회통합을 이루어가는 과업은 여성

들이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21세기의 문턱에서 하루아침에 20년전으로 후퇴한 경

제를 다시 끌어 올려야 할 엄청난 과제를 떠 맡았습니다. 나라를 다

시 세우는 일에는 여야도, 동서도, 그리고 남녀도 모두 발벗고 나서

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 당선자께서는 인구의 절반에 해당되는 여성

인력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채 사장되어 온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아십니다. 나라경제가 이 지경에 이른것도 혹시나 남성들에 의한 독

주에 기인하지나 않았는지요. 지금 이 땅의 여성들은 가난을 머리에

이고 나라 살림을 일으켜 온 장본인들입니다. 모진 고난과 시련을

감내해 온 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다시 오늘의 난국을

헤쳐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길을 활짝 열어 주시고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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