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제헌의회 여성후보

손봉숙/ 유엔 국제선거관리위원,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이사장

동티모르에서는 오는 8월 30일 제헌의회의원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 만장일치로 동티모르 유엔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손봉숙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이사장이 동티모르 선거와 관련한 소식을 현지에서 보내왔다. <편집자 주>

동티모르 유엔임시정부는 기회있을 때마다 여성진출을 강조해 왔다. 그리고 실제로 임시정부 직원으로 이미 동티모르 출신 직원중의 절반을 여성으로 충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제헌의회선거에서 여성 30% 할당을 끈질기게 주장했지만 동티모르국민의회가 이를 수용하지 않아 통과는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 입후보한 총후보자의 27%가 여성이다. 물론 당선 가능성이 낮은 정당명부에 여성을 대거 배정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여성후보를 첫 선거에서 27%나 배출한 것은 우리보다 한참 앞서간다는 느낌이다. 우리는 국회 전국구 의석의 30% 할당을 받아내는 데 50년이 걸리지 않았는가.

이곳 유엔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는 후보자에 대한 연설 및 정치광고의 기회를 균등하게 배정하면서 여성에게는 남성후보보다 1.5배의 시간을 할애해 주었다. 그 동안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했을 뿐더러 교육받을 기회도 제대로 누리지 못했기 때문에 당분간 이들에 대한 특별배려는 정당하다는 논리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7일과 9일 이틀에 걸쳐 유엔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공동주최로 여성후보자에 대한 선거토론회를 개최했었다. 정당후보와 무소속후보 15명이 참석해 먼저 각자 2분간 출마동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토론에 들어가 가정폭력에 대한 자신의 입장, 교육과 건강, 가족계획, 그리고 경제 등 여성의 삶과 직결된 분야를 집중적으로 토론하도록 이끌었다. 대체로 여성후보자들의 출마동기는 나라가 첫 출범하는 시점에 제헌의회에 남성과 동등하게 참여함으로써 헌법상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도록 할 것이며, 가족법 등 여성과 관련된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기여하겠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그중 몇명은 아주 뛰어나 보였다. 이들은 대체로 40대 이상은 포르투갈에서, 그리고 20∼30대 젊은 여성들은 인도네시아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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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입후보자들의 선거연설 모습(좌)과 청중들 모습(우).

동티모르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자기 소유인 소나 말처럼 함부로 대하고 때리는 것이 다반사다. 후보 중에는 여성이 경제권이 없기 때문에 가정폭력의 희생자가 된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다. 또 동티모르의 일부다처제를 더 이상 허용할 수 없다는 것과 가정폭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범죄요 국가의 문제라고 당당히 주장하는 후보도 있었다. 물론 그 중에는 가정폭력은 집안사라고 주장하는 후보도 있었다.

어떤 후보는 가정폭력은 여성에게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리고 형이 동생에게 가하는 등 남성들에게도 해당하는 폭력인데 여성후보에게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여성의 정치참여를 축소하는 행위라며 남성들에게도 이런 주제를 줘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동티모르 여성들은 400년의 포르투갈 식민 치하에서 포르투갈 남성들에게, 그리고 24년간 인도네시아 점령하에서는 인도네시아 군인들에게 무참히 성폭력을 당하고 인권이 유린되는 고난의 시대를 살아왔다. 따라서 독립된 내 나라에서 여성들이 더 이상 매맞지 않고 살 권리를 되찾는 것은 아주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였다.

그리고 동티모르 역시 교육시설이나 환경이 열악한 것은 물론 여자 어린이는 밭으로, 남자 어린이는 학교로 보내 옛날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90% 가톨릭교인, 한집에 자녀 10여명

교육문제에 대한 후보들의 입장은 남녀에게 동등한 교육의 기회가 허용돼야 하며 교육비는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과 개인이 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리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첫걸음은 교육에서부터 온다는 데는 모든 후보가 공감했다.

동티모르 주민의 90%이상은 가톨릭교인이다. 그런 만큼 가족계획이 안되고 있다. 한 집에 아이들이 10∼12명 되는 집도 있다. 물론 동티모르 전 인구가 80여만명밖에 안되기 때문에 국가인력이라는 차원에서는 자녀를 많이 낳아도 여전히 인구가 적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제대로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려면 역시 가족계획이 없어선 안된다는 주장이었다. 진보적인 후보들은 자녀를 몇명 낳을 것인가 하는 결정은 여성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지만 대다수의 후보들은 가족계획은 가정사이기 때문에 간여할 일이 아니다, 혹은 가톨릭교인으로서 교리대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역사상 자신들이 후보로 출마하는 첫 선거이지만 여성후보들은 당당히 자신들의 입장을 피력했다.

그중에는 마이크를 넘겨받고도 말을 못하는 후보도 있었지만 떨려서 못한다고 말해서 모두들 웃으면서 격려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강당에서 진행된 이번 여성후보토론회에 청중으로 젊은 남성들도 상당수 참석한 것이 이채로웠다.

앞으로 동티모르 여성들이 지난 날의 고난과 질곡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민주적인 국가건설과정에 남성과 동등하게 참여해 열악한 이 나라 여성들의 지위를 법적으로는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도 향상시킬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우리가 먼저 익힌 작은 지식이라도 함께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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