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여성들은 씀씀이가 헤퍼.’ 우리 나라 여성들이 흔히 듣는 비난이다. 그것도 여성 모두에게 무차별적으로 행해지는 언어 폭력에 가깝다. 한 번이라도 외국에 다녀 온 사람들이 ‘나가 보니까’라는 말이라도 덧붙일라치면, 이런 힐난은 마치 과학적인 근거라도 갖추고 있는 거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어느 정도가 낭비벽이 심한 것일까? 자신 있게 얘기할 수가 없다. 만일 소득에 견주어 얘기하는 것이라면, 이런 비난은 전혀 근거가 없다. 우리는 여전히 저축률이 높은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해서, 박봉을 쪼개 생활을 꾸려나가면서 자녀 과외까지 시키는 걸 봐도 그렇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나라 여성들이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편이 아니라는 주장에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마구 써 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쓰고 있지도 않다는 얘기다. 이게 무슨 모순에 찬 얘기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합리적인 소비란 과연 무엇인가?

아침 방송을 끝내고서, 나는 1500원짜리 샌드위치 한 개로 주린 배를 채울 때가 많다. 그런데 배가 너무 고프다 싶은 날은 한 개를 더 사먹게 된다. 그리고 나서는 이내 후회하고 만다. 두 번째는 맛이 훨씬 덜 할뿐만 아니라 점심 밥맛까지 잃을 때가 많아서다.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어떤 상품(혹은 서비스)이든 처음 하나를 소비할 때에 비해, 그 다음은 만족감이 덜하다고 느낀다고 본다. 이른바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다.

이런 법칙 하에서 가진 돈을 가장 합리적으로 쓰는 방법은 이렇다. 같은 돈으로 추가할 수 있는 만족도가 서로 같아질 때까지 돈을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1500원으로 샌드위치 한 개를 더 사먹는 것보다 샤프 연필을 사는 것이 더 만족스럽다면, 샌드위치 대신 연필을 사야 한다. 그런 식으로 1500원으로 추가할 수 있는 만족도가 가장 큰 상품부터 사는 것이다.

이런 방법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는, 어떤 상품을 살 때도 화폐 단위를 심리적으로 동일하게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샌드위치를 살 때건, 샤프 연필을 구입할 때건, 더 나아가서는 바바리 코트를 소비할 때건 1500원은 같은 1500원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합리적인 소비다.

이쯤 되면 내 주장에 공감하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 소비의 대상이나 장소에 따라 심리적 화폐 단위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네 재래식 시장에서 콩나물을 살 때는 1, 200원이라도 깎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데 백화점에서 옷을 살 때는 얘기가 다르다. 실제로 백화점에서의 20만원은 재래식 시장에서 2000원 정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 나라 여성들은 백화점 의류 소비에 관해서만큼은 어느 누구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관대하다. 최근 롯데백화점이 2, 30대의 의류 소비가 가장 크게 늘고 있다는 조사를 발표한 것이나, 2, 30 대 의류 카드가 카드 업계에서 가장 사고 규모가 큰 분야라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가만 있자. 남자는 어떤가? 평상시에는 점심 값 5000원도 누가 먼저 내주지 않을까 하고 구두끈부터 매는 것이 남자들이다. 이들이 룸살롱에 가면 50만원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어대는 것을 보면, 남자가 여자보다 결코 나은 것 같지는 않다.

김방희/ 경제칼럼니스트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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