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시·여주군 주관 ‘2001 딸들의 캠프’

얼마전 신문에서 세계 7개국 외상들이 회담 참가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기사도를 발휘한답시고 일본 외상을 상석으로 모시기 위해 저마다 손을 내밀고 있는 모습을 우리 나라 사람들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우리 못지 않게, 아니 우리보다 여성차별이 더 심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이 세계에 자국 대표로 내세우는 외상자리에 여성을 기용했다는 것은 최근 국제적인 조류에서 여성파워가 얼마나 큰 국제적 실리를 가져올 것인지를 가늠케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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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점에서 이천시·여주군 주관, 김포여성민우회의 가족과 성상담소 진행으로 지난 8월 1일부터 3일까지 지산 리조트에서 가진 ‘2001 딸들의 캠프’는 중학생인 청소녀들에게 교과서 밖에 있는 세상에 대해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으로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내 몸의 주인은 나’란 주제로 열린 캠프의 첫날, 아이들은 집밖에서 제 또래들과 모여 자유롭게 노는 데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체계적으로 꽉 짜여진 일정을 다소 버거워했다. 그러나 다음날 모듬 활동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는 정말 진지했다.

성에 관한 질문도 단순한 호기심을 뛰어넘어 구체적인 자기 인생과 연결되어 있었고 모듬별로 차이가 있긴 했지만 발표하는 자세 또한 녹녹치 않았다. 내가 21세기와 청소년기에 관해 강의할 때 그 아이들의 초롱한 눈빛은 오히려 나를 긴장시켰다. 입시와 그로 인한 경쟁의식에 갇혀 있으리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에 죄책감마저 들었다.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용기도 나고 나도 한번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적극적이 되었어요. 그런데 해 보니까 친구들이 잘한다고 해서 저도 기분이 좋았어요.”

인생극장에서 눈에 띄게 적극적으로 변한 한 여학생의 이런 말은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어떤 기회를 제공하느냐가 여성교육의 효과를 결정하는 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자라나는 여성들의 에너지를 확실히 절감할 수 있었던 것은 둘째날 밤이었다. 수료식 전날 흔히 마련되는 캠프파이어와 레크레이션 시간을 우리는‘문화공연’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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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들이 요즘 열광한다는 ‘싸이’라는 가수의 노래가 여성 비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우리 준비팀은 ‘여성 주체적인 대안적 문화’를 성장기부터 제공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아 비교적 큰돈을 투자하기로 하고 공연을 준비했다. 예상은 적중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다.

현란한 조명과 귀청이 터질 듯한 강렬한 음향과 함께 여성 삼인조 랩퍼들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터진 환호성과 격렬한 몸짓은 두 시간 이상 계속되었다. 티비에서 보는 오빠부대의 맹목적인 열광과는 다른 것이었다.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과 여성의식을 랩으로 읊어내고 거침없이 몸으로 표현하는 ‘미래의 여성’들을 보며 과거 우리 여성세대들의 ‘한’이 완전히 녹아 내리는 후련함을 경험했다.

성장기에 무엇을 먹이느냐가 체격을 결정하듯이 성장기에 어떤 문화와 교육을 제공하느냐가 우리 여성의 미래, 나아가 우리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확신을 얻은 캠프였다.

인생극장에서 자신의 재주를 유감없이 보여준 ‘연변 선생님’과 ‘비디오방 미란이’를 비롯한 소녀스타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여학생 교육에 대한 우리의 사명감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오한 숙회 김포여성민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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