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정국 속 다시 ‘김명순’의 이름을 부른다] ① 첫 ‘미투’ 고발자, 김명순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미투 정국 속 다시 ‘김명순’의 이름을 부른다] ① 첫 ‘미투’ 고발자, 김명순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 김경애 전 동덕여대 교수·여성학
  • 승인 2018.03.13 13:35
  • 수정 2018-03-2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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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최초의 여성 작가, 김명순을 미투(Metoo·나도 말한다) 정국 속에서 다시 만난다. 김명순의 삶과 문학세계는 여성신문 2016년 1월 14일자(1373호)에 보도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글을 쓴 김경애 전 동덕여대 교수는 미투 고발자인 김명순의 삶을 통해 ‘사나운’ 한국사회가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편집자

 

 

 

여성들이 어렵게 ‘미투’(Metoo·나도 말한다)라고 나서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성폭력 피해 생존자에게 “왜 이제야 말하냐”고 되묻는다고 한다. 그 답으로 근대 최초의 여성작가 김명순(1896-1951?)을 호명하려고 한다. 우리가 또다시 성폭력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지 않고 그리고 성폭력을 그들의 탓으로 돌리지 않기 위해 김명순을 기억하고자 한다.

우리는 근대 남성작가 김동인과 김기진은 국어 교과서를 통해서 알아도, 작가 김명순은 교과서에서는 커니와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김명순은 1917년 동인지 『청춘』의 공모에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당선되어, 21세의 나이에 등단한 근대 최초의 여성작가다. 1920년대와 30년대에 걸쳐 여성작가로서는 최초로 작품집 『생명의 과실』과 작품집 『애인의 선물』 등 두 권을 발간했고, 소설 20편, 시 79편, 수필 15편, 평론 3편, 희곡 3편, 번역시와 번역소설 3편 등의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김명순은 일어에 능통한 것은 물론, 프랑스로 유학 갈 꿈으로 프랑스어를 열심히 공부하여 보들레르의 시 「악의 꽃」 등을 최초로 번역 소개했고, 독일어로는 가사를 자작할 정도의 수준에 올랐다. 김명순은 영어권, 프랑스, 독일, 러시아, 그리스, 중국, 니카라과, 인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가들의 소설과 시 등의 문학 작품과 신화를 탐독했고, 철학과 사회사상과 미술에 관한 지식을 섭렵하면서 다방면의 지식을 축적했다. 이러한 광범위한 지식 편력은 그녀의 작품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그녀는 서양음악에 정통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김명순이 왜 문학사에서 제대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가?

‘나쁜 피’가 성폭행 이유라는 피해자 유발론

김명순은 평양의 부호와 기생 출신 첩 사이에서 1896년 태어났다. 일찍이 조선에서 기독교의 유입의 관문이었던 ‘조선의 예루살렘’ 평양에서 김명순은 기독교 계통의 학교와 교회를 다니면서, 기독교가 첩인 어머니를 ‘악마’로 규정하고 있고, 본가에서 기생첩의 딸이라고 자신을 비난하는 것을 들으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에 일찍 눈뜬다. 그리하여 ‘악마’인 어머니와 거리를 두기 위해 집을 떠났고, 기생첩의 딸에서 온전하게 ‘정숙한’ 여성이 되고자 찾은 길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서울로 유학하여 진명여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에서 더 멀리 일본으로 다시 유학했다.

그런데 여학교의 졸업을 앞둔 시점에 일본군 소위 이응준과의 데이트 과정에서 그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김명순은 이응준을 평양에서 삼촌으로부터 소개받았고, 삼촌으로부터 친하게 지내라는 권고를 받은 첫 데이트 상대였다. 성폭행을 당한 이후 김명순은 그 충격으로 기숙사를 빠져나왔고 도쿄의 강에 투신, 자살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당시 조선에 신문기사를 통해서 알려지게 되었다. 미투로 소환된 일부 가해자들과 마찬가지로, 가해자 이응준도 성폭행을 부인했고, 어떠한 진상조사나 처벌이 없었으며 사회적 비판 또한 미약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의 성욕과 강간은 남성다움의 발현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는 그 이후 김명순이 진명여학교에서 같이 공부한 친구와 결혼했다.

그러나 평양 부호의 기생출신 소실의 딸로, 데이트강간 당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김명순은 부정적인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신여성 중에서 그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비난과 조롱에 시달렸다. 특히 남성 동료 문인들로부터 끊임없는 2차 성폭력에 시달려야했다. 김명순이 “혼인날 신랑이 세넷씩 달겨 들가봐, 독신생활을 하게된 독신주의자”, “피임법 알려는 독신주의자”라고 성적으로 방종한 여성이라고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작가 김기진이 「김명순에 대한 공개장」이라는 글을 잡지 『신여성』에 실었는데, 김명순을 타락한 여자이며 “육욕(肉慾)에 거츠른… 퇴폐하고 황량한 피부”를 가진 “퇴폐의 미”와 “황량의 미”를 가졌는데 “처녀 때 강제로 남성에게 정벌(征伐)”을 받았다고 썼다. 전영택은 김명순을 출생의 배경으로 인해 “변태적으로 살아가고 방종, 반항의 생활”을 했다고 비난했다. 가부장적 인식에 사로잡혀 있던 당시 남성지식인들은 김명순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무지와 몰염치한 전횡”을 서슴치 않았고 그녀의 작품에 대한 온당한 평가를 하기 보다는 남성과의 관계에 대한 가십거리를 만들고 조롱했다.

특히 김명순이 데이트 강간을 당한 것은 어머니로부터 비롯된 “불결한 부정(不淨)한 혈액”으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피해자 김명순의 어머니가 기생 출신으로 평양의 부호의 소실이었기 때문에 김명순이 “나쁜 피”를 물려받아 태생적으로 부도덕해서 성폭력을 당했다는 주장이다. #Me Too를 말하는 성폭력 피해 여성이 ‘옷을 야하게 입었다’거나 꽃뱀으로 본래 부도덕한 여성이라고 뒤집어씌우면서 성폭력을 여성이 원인 제공자라고 주장하는 논리와 같은 것이었다.

 

김명순의 첫 번째 창작집, 『생명의 과실』 표지
김명순의 첫 번째 창작집, 『생명의 과실』 표지

‘오해’ 벗기 위해 ‘미투’ 외쳤지만…

김명순은 실제로도 2차 성희롱의 대상이 되었다. 기자로 일했던 『매일신보』에서는 남성 동료들은 김명순이 입사하던 날 신문사 편집국에 “커다란 센세이션이 일어났는데, 뭇 남성 기자들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명순의 아래 위를 더듬으면서 서로 수군거리노라 야단이 났었”으며 김명순을 두고 등 뒤에서 “남편 많은 처녀”라는 소문이 있다고 수군거리면서, 용기 있으면 한번 “건네 볼텐가?”라고 하면서 성희롱한다.

미투의 여성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성범죄였다고 인정해달라는 절규하고 있다. 김명순도 “글로써 끊임없이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어 “자신에게 들씌워진 ‘오해’를 벗기기에 주력”하며 자신의 결백을 호소한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탄실이와 주영이」이다. 탄실은 김명순의 아명으로, 자신의 이름을 소설 제목으로 내걸었는데, 나카니시 이노스케(中西伊之助)의 소설 「汝等の 背後より」(너희의 배후에서)의 주인공으로 성적으로 방탕한 여성 권주영이 김명순을 모델로 삼은 것이라고 남성들이 소문을 퍼트리자 자신은 성적으로 방종한 주영이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한다. 이 자전적 소설 「탄실이와 주영이」에서 오빠의 입을 통해

 

내 누이- 10년전 칭찬풋엇치나듯는 쥐같튼 적은 남자와 약혼하려다 그 남자에게 절개를 억지로 앗기우고.. 그것이 세상에 알리워졌을  어리고 철없는 내 누이의 책임이 되어서... 동정을 분명한 짐승같은 것에 팔힘으로 앗기웟다하면 시방도 바로듯지안코 내누이만을 부량셩을 가진녀자로아니

 

라며 한탄한다. 이 자전적 소설은 탄실이 한 남자에게 강간당하는 장면 직전에 연재가 중단되었다.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기에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명순은 “미개한인사들이 남의육체미를 험잡으려하기를 자기집도마에 사다노흔 고기 한점같이 녁인답니다”라면서 남성들이 자신을 도마 위의 고기 한 점처럼 난도질하고 있다고 했다.

김명순은 이러한 피해자에 대한 비난은 자신 만이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일이 “과거 몇천만의 할머니들이 그것 땜에 원한을 품고 죽었을 것이고 과거의 몇억조의 어머니들이 그것 때문에 희생되었을 것일까”라고 묻는다. 김명순은 자신의 고통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조선 여성들의 고통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그러면서 소설 「도라다볼 」를 통해서 “모든 여성들이 다 남자의 작품이며 남성들이 여성을 우리에 집어넣고 세상일을 모르게만 길러놓은 동물들이 아닌가”라고 반문하고, “여성을 이같이 만들 놓고 욕하고 비웃는 이들이 또 다 남자들이 아니었느냐”라고 하며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욕심만흔 더러운것들에게 몸을더럽히고 그죵자들나으면 남의집처녀들을 더럽히고 버리고 가두고 욕”하는 것이 사나이가 아니냐면서 “옛날에는 좃타고하고 지금에는 실타고 다른 녀자를 속여서라도 데레오는 것이 사나히들이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남성이 여성들을 성적으로 억압하는 존재라고 비판한다. 그리하여 “온 세상을 이끌어서 온녀자들을 몰아서 남자들과 관계를 끊게하고 싶었다. 모두가 되지못할 일인고로 그(여자주인공)는 울고 또 울고 밤이 새이도록 우름을 긋치지아니하고 울었다”라고 하며 여성을 남성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싶지만 자기 홀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슬프다고 여자주인공을 통해 고백하고 있다.

“세상에는졍말 용셔도 업는 것이다”

김명순은 여성들로 부터도 외면당했다. 소설 「칠면조」에 Y여사가 화장을 하는 여성에게 “분도만히도바른다”, “부러운줄을 몰라”라고 자신을 비난하는데, 이는 김명순에 대한 당대 여성들의 태도를 말해준다. 실제로 당대 진보적인 신여성들은 남성의 시선으로 김명순을 단죄하고 거리두었다. 진명여학교 동창인 나혜석이나 친구 김일엽으로 부터도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 “다시 방랑의길우해설몸아, 그럿타-라-이도회안에서는 네이업다 집이업다 동모가업다”… “오- 탄실아, 28년간의 네 생활이 쓰라리고, 지루하고 억울하였다고 생각지 않니? 외롭고 서른 탄실아!… 오오 그러나 떠나는 탄실아, 떠나보내는 조선아”, “너희들은 다시한번 붓들고 이야기해볼필요가업느냐?”라면서 말동무가 되어 볼 사람이 없는지, 품어줄 인정이 없는지, 약한 몸이 떠난다는데 눈물이 없는지 되묻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창부의그것만못한탓이냐, 이무졍한것아”라고 하면서 조선 사회가 자신의 어려움을 헤아려 주지 않고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소외시키고 있음을 슬퍼한다. 현대의 여성문학평론가들도 김명순이 스스로를 순결한 처녀, 착한 아이이며 조선의 선구자로 정체성을 명명하는 것은 “서사적 자아를 허구화시키는” 것으로, “의도는 강박적 자기보호와 존재 증명을 위한 것”으로, 실제의 경험적 자아와 일치하지 않으며 실제적 자아는 “탕녀”와 “서자출신의 나쁜 피”를 가진 “헛된 공명심에 사로잡힌 기만적 방종의 존재”라고 비판한다.

김명순은 강간당하고 2차 성폭력에 시달리는 자신의 슬픔과 외로움을 있는 힘을 다해 소설로, 시로, 희곡으로 호소해보지만 김명순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깊이 들어가면 그것을 빼낼 수는 없으며 “세상에는졍말 용셔도 업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고 미워하며, 용서라도 받고 싶어 하지만 오히려 용서하지 않는 것에 대해 한탄한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강간 피해자로 알아주고 끌어주지 않고 오히려 “몇천길 깊은 해감에 헤매이는 사람을 해감 속에 넣어 숨키려고”하며 또다시 매도해, “십년동안 걸어온 길이 지독하고 무서워”라고 토로하여, 자신에 대한 사회의 오해와 매도로 인해 고통을 심하게 받아야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홀로 외로움에 떨어야했다. 시 「시로쓴 반생기」에서는 “명태같이 말는나는/외로운 인생이엇다”라고 고백하며, 수필 「네자신의우헤」에서는 “한사람의게밧은 한능욕과, 멸시로된-네모든수치의 저수지가, 어느날하로 잇칠날이잇섯스랴. 하물며 그로인해서 모-든세상에게 돌니워진오늘날 이처디에서랴, 외로움절벽우헤호올로선 이처디에서랴…. 모-든 흰옷입은사람들에게 돌니우고”라고 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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