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차별 공개하고 벌금 물리는 나라들...한국은?
임금 차별 공개하고 벌금 물리는 나라들...한국은?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8.03.13 13:58
  • 수정 2018-03-21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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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세계여성의날에  남녀 임금 차이는 단연 주목받는 이슈였다. 2000년부터 성별임금격차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한국의 여성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겠다. 한국뿐 아니라 성별임금격차 축소는 전 지구적인 관심사다. 문재인 정부는 성별임금공시제 시행 등을 고려하고 있으나 아직 본격적인 시도는 못 하고 있다. 남녀 평등임금을 법으로 강제한 아이슬란드, 남녀 임금격차 공개를 의무화한 영국의 사례를 살펴본다.

 

아이슬란드, 올해부터 동일임금인증제법 발효

기업이 남녀 임금평등 증명하고 정부가 관리

세계적으로 유례없어

‘성평등 선진국’ 아이슬란드에선 최근 역사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작년 4월 제정돼 지난 1월 발효된 ‘남녀 동일노동 동일임금 인증제 의무화법’이다. 올해부터 직원 수가 25인 이상인 공공·민간 기업은 청소부에서 임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직급 내에서 여성과 남성에 대한 임금 지급 내역 등을 정부에 제출해 동일임금을 지급했다는 인증을 받아야 한다. 여성과 남성이 같은 일을 하는데도 다른 임금을 받았다면, 노동자에겐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해당 기업은 벌금을 내야 한다.

2008년 제정된 아이슬란드의 ‘남녀평등지위권익법’은 이미 노동 분야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 대우·임금 차별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 이를 직접 증명하고 정부가 관리하도록 하는 법안이 나온 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일이다. 

아이슬란드 기업들의 반발은 크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슬란드의 항공·호텔 브랜드 ‘아이슬란드에어 그룹’에서 항공 마케팅 부문 매니저로 일하는 카트린 군나르스도티르 씨는 “법안이 제대로 정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대부분은 빨리 적응하려는 추세다. 내가 일하는 회사를 포함해 많은 기업들은 이번 법안을 ‘우리 기업이 동일임금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홍보하고 인재를 유치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기존 급여 체계를 점검하고, 혹시 더 개선할 점은 없는지 직원들의 의견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슬란드는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성 격차 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에서 2009년부터 2017년까지 9년 연속 종합 순위 1위를 차지했다. 2017년 집계 결과, 아이슬란드는 ‘여성의 경제 참여 및 기회 분야’ 부문 ‘동일노동 동일임금’ 지표에서 5위를 기록해(2016년 11위) 성별임금격차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소해 나가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군나르스도티르 씨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여성들이 성차별에 맞서 법제도를 개혁해 온 성과라는 얘기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아이슬란드 여성은 남성 임금의 60%만을 받았다. 당시 여성의원은 9명에 불과했다. 1975년 ‘여성총파업’ 때 90%의 여성들이 이런 현실을 바꾸자며 파업에 참여했고, 가사노동과 육아에서도 손을 뗐다. 1980년엔 세계 최초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여성 대통령이 집권했다. 남성 후보 3명을 물리치고 당선된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 대통령은 1980년부터 1996년까지 4선 연임하는 동안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큰 몫을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1983년엔 여성 정당인 ‘여성연맹’이 창당해 1987년 6명의 의석을 확보하기도 했다. 

군나르스도티르 씨는 “이제 아이슬란드에서는 적어도 여성이라서 헐값에 노동해도 괜찮다는 말에 공개적으로 동의하는 사람은 없다. 아이슬란드 여성들의 오랜 투쟁 덕에 가능한 일”이라며 “그럼에도 여전히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같은 일을 하는 남성보다 14~18%P 더 적게 받고 있다.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이번 조치는 마침표가 아니라 또 하나의 신호탄이라고 생각한다. 완벽하게 성평등한 노동을 실현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국, 매년 대기업 임금·보너스 성별격차 공개 의무화

만연한 임금 성차별 폭로 계기

기업 참여 속도 더디고 페널티 없어

임금 성차별은 지금 영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기업의 성별임금격차 보고 의무화(Gender Pay Gap Reporting)’ 법안의 영향으로 매일같이 관련 이슈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법에 따라 영국 내 직원 수 250명 이상 기업은 오는 4월 4일까지 그간 여성과 남성에 지급한 임금·보너스의 격차가 얼마인지 정부에 신고해야 한다. 차이가 있다면, 그 구체적 이유도 공개해야 한다. 약 9000개 기업이 신고 의무를 진다. 정규직뿐만 아니라 견습생, 개인 근로계약에 의해 고용된 모든 노동자의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벌써부터 딜로이트 회계법인(43.2%), 바클리스 은행(48%), 이지젯(51.7%), 피어슨 출판그룹(60%) 등 유명 기업들이 여성에겐 남성의 반토막에 불과한 임금을 준 사실이 드러나 영국 사회가 충격에 잠겼다. BBC처럼 영향력 있는 기관에서조차 가장 높은 연봉을 받은 여성이 남성 1위 연봉의 약 20%만을 받아온 사실이 알려져 세계가 술렁였다. 

영국 기업들은 이번 법안에 반발하는 모양새다. 3월 셋째주 기준 제출일 마감이 3주 남았는데도, 대상 기업의 과반수가 아직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정도로 참여 속도도 더디다. 영국 런던의 글로벌 컨설팅업체 KPMG에서 공인회계사로 11년간 근무해온 한국 여성 황다운 씨는 “기업들 입장에선 정보를 모아 공개하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고, 결과 공개로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길 수 있어 분석을 신중을 기하고 있다”면서도 대기업의 성별임금격차가 투명하게 공개된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럽연합 등의 영향으로 노동시장의 성평등은 지난 10여 년간 영국 사회의 주된 관심사였다. 정부에서 (성별임금격차 공개 의무 법을) 밀고 주선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긍정적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변화를 체감하기엔 이르다. 황 씨는 “대기업이라도 주식상장이 되지 않은 개인 기업이나 중소기업에 다니는 여성들은 많은 구조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황 씨의 사례는 ‘특별’하다.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며 일하며 MBA 과정까지 밟았다. 회사에서 주4일 근무·출산휴가·긴급 보육지원·전문 코치와 멘토링 등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덕에 둘째를 낳고 출산 휴가 중에도 승진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황 씨는 “영국은 인건비가 비싸서 많은 워킹맘들이 보육비 부담에 시달린다. 회사의 전격적 지원이 없으면 일이나 승진을 포기하기도 한다. 특히 중소기업에 다니는 여성 직장인은 영국에서도 저처럼 일하는 삶을 꿈꿀 수 없는 상황이니 아쉬울 뿐이다. 기업의 성별임금격차 공개가 이런 복잡한 구조적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고위직의 남성 편향도 큰 걸림돌이다. 영국 내 10만 파운드(한화 약 1억4800만원) 이상 버는 고액 연봉자 중 남성이 여성의 4배에 달한다는 통계도 최근 나왔다. 황 씨는 “직장인들은 이 법에 큰 기대를 걸진 않는다. 공개된 통계를 보면 동일한 일을 하는 노동자 간 연봉엔 대개 차이가 없으나, 연봉이 높아질수록 여성의 수가 줄어 남성의 평균 연봉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여성이 남성처럼 고위직에 계속 승진할 수 있느냐다”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기업이 임금 격차 해소에 자발적으로 나서도록 만드는 것이다. ‘임금격차 보고 의무화’ 법의 맹점이 여기 있다. 이 법은 기업에 임금격차를 공개할 의무만을 명시한다. 아이슬란드나 독일처럼, 성별을 이유로 동료보다 적은 임금을 받은 노동자가 기업에 보상을 요구할 권리까지 명시하진 않는다. 영국 정부가 직접 임금 차별을 저지른 기업에 페널티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영국 노동당은 지난 8일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임금격차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격차를 없애야 한다”며 △성별임금격차가 심각한 기업엔 법적 제재 조처 △기업이 임금 관련 데이터를 다룰 때 준수할 수칙 제정 △임금 정보 보고 과정에서 노조나 직장 협의체가 개입해 적절성 판단 등을 제안했다.

한국,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시간당 3524원 덜 받아

외국 사례 시사하는 바 커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클 뿐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차이도 매우 크다. 최근 조사 결과 한국 여성의 임금은 남성 동료보다 37%P 적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간당 3524원을 덜 받고 있었다. (관련기사▶ 여성의 임금 ‘37만원’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http://www.womennews.co.kr/news/130253)

물론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만으론 여성과 남성 간 임금격차를 완전히 해소할 수 없으나, 이 제도가 성별임금격차를 줄일 가장 중요한 제도적 기반이라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다. 타국의 사례를 한국에 바로 접목하기란 힘들지만, 정부가 나서서 임금 평등을 기업과 국가의 책임으로 돌리고, 여러 적극적 조치를 취한 사례들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정규직에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김준 국회입법조사처 사회문화조사실 환경노동팀장은 지난해 5월 발행한 ‘이슈와논점’을 통해 “(한국은) 비정규직과 관련해서는 불합리한 차별금지 및 차별시정 절차가 있지만 실효성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비정규직 중 여성 비중이 높기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확립하는 것은 성별임금격차를 축소하는 의미 있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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