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단체들이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진행한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장미꽃을 들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인권단체들이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진행한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장미꽃을 들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7일 여성가족부 등 5개 관계부처 합동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근절 보완대책’ 발표

3월부터 공공부문 성폭력 100일간 특별신고 접수

성범죄 근절대책 컨트롤타워 범정부 협의체 연다

앞으로 성폭력 범죄로 300만원 이상 벌금형을 받은 공무원은 즉시 퇴출되며, 구제 절차를 밟을 수 없다. 공공부문 내 성폭력을 신고할 온라인 특별신고센터도 열린다. 성범죄 근절 대책 컨트롤타워 격인 범정부 협의체도 마련된다.

27일 여성가족부·기획재정부·교육부·행정안전부·인사혁신처 등 관계부처가 함께 공개한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근절 보완대책’의 주된 내용이다. 지난해 11월 공공부문 성희롱 방지대책이 나왔지만, ‘미투(#MeToo) 운동’이 계속되면서 공직사회 성폭력을 근절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추가 대책을 발표했다. 

우선 정부는 국가공무원법을 개정해, 공무원이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 300만원 이상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즉시 당연퇴직토록 할 계획이다. 현행법은 공무원이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경우만 당연퇴직 사유로 인정하는데, 이를 ‘모든 성폭력 범죄’로 개정하기로 했다. 당연퇴직을 당하면 파면·해임과 달리 소청심사 등 이의신청이나 행정소송 등 구제 절차를 신청할 수 없다. 

성희롱 등을 저질러 형사처벌이 아닌 징계를 받은 공무원도 실·국장 등 관리자 직위에 오르지 못하게 보직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성희롱 행위에 대한 징계양정 기준은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성폭력, 미성년자 또는 장애인 대상 성폭력을 제외한 성폭력 범죄행위’ 수준으로 강화해, 고의가 있거나 중과실인 경우 정직 이상의 중징계만 내리는 방안도 추진한다.

인사혁신처는 공무원의 성범죄를 엄단하기 위해 매년 테마별 인사 감사를 한다. 불이익 신고, 고충심사 내용에 따른 수시 인사 감사도 연중 진행하기로 했다.

교육기관 내 성범죄 대응체계도 강화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초중고교와 대학에서 발생한 성희롱·성폭력 사안을 은폐하거나 부적절하게 처리한 사실이 특별점검을 통해 발견될 경우 관계자를 엄중 조치하기로 했다. 성폭력 사건이 명확하게 드러난 경우, 교원소청심사원회 심사 시 징계 수준 일정 수준 아래로 낮추지 못하도록 엄격한 심사기준을 적용할 예정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기존 해바라기센터를 통해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2015 피해자지원안내서 캡처
성폭력 피해자들은 기존 해바라기센터를 통해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2015 피해자지원안내서 캡처

정부는 공공부문 내 성범죄 피해자가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사건을 신고할 수 있도 3월부터 100일간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특별신고센터’를 운영한다. 신고센터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 홈페이지에 비공개 게시판 형태로 개설된다. 별도의 전화 회선(개설 예정)을 이용하거나 직접 방문·우편 접수도 할 수 있다. 여가부가 사건 내용을 검토해 관련 기관에 조치를 요청하고, 가해자와 피해자 격리 등 피해자 지원에도 나선다. 2013년 6월 친고죄 폐지 이후 발생한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가 원할 경우 수사기관에 신고·고발 조치한다.

교육기관 내 성범죄는 교육부가 운영하는 온라인 신고센터를 통해 신고할 수 있다. 모든 국·공·사립대의 학내 성폭력 신고센터 운영 실태도 조사한다. 개선이 필요한 대학에는 컨설팅 등을 지원한다. 학내 성범죄를 은폐·축소했다간 교육부와 여가부의 특별점검 대상이 된다. 

또 피해자가 직급과 무관히 중앙고충심사위원회에 심사를 청구할 수 있도록 국가공무원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현행법은 6급 이하 공무원의 경우 각 기관에 있는 보통고충심사위원회에 사건을 접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성범죄 관련 고충심사위원회엔 민간위원을 전체 위원의 1/3 이상 두고, 남성과 여성이 반드시 포함되도록 한다.

그간 공공부문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와, 내부 사건 조치가 적절했는지 등도 조사한다. 정부는 3월부터 2019년까지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등 4946개 기관을 상대로 온·오프라인 특별점검에 나선다. 조사는 온라인으로 진행해 참가자의 익명성을 보장할 계획이다. 또 여가부 위촉 민간전문가 등이 현장에 나가 예방교육 운영 실태, 사건 조치 결가, 재발방지대책 수립 여부 등을 점검한다. 

정부는 외부 전문가가 개입해 성범죄 축소·은폐를 막고 조사·상담을 지원하는 ‘성희롱 고충처리 옴부즈만’ 제도 시행도 권고키로 했다. 변호사·노무사 등 관련 전문가들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처리 솔루션 위원단’을 구성해 필요한 기관에 파견할 계획이다.

인사혁신처는 공무원의 성범죄 관련 부당한 인사행정을 제보할 수 있도록 인사신문고를 활용해 ‘인사불이익 종합신고센터’를 구축한다. 피해자·신고자 보호 등 적극적 구제조치를 기관장의 의무로 규정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사건을 은폐하거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 관리자에게 책임을 물을 근거를 마련하고, ▲기관명 대외공표 ▲임용권자 통보·징계 ▲시정 및 조치계획 제출 의무화 등도 검토한다.

최근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대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정부는 정현백 여가부 장관이 위원장인 범정부협의체를 구성·운영한다. 28일 관계부처 국장급 회의를 시작으로 그간의 대책이 현장에서 잘 작동되는지 점검하고, 정기 회의를 열어 추진 과제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보완·추가 과제를 발굴할 예정이다.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범정부 성희롱․성폭력대책 추진점검단’ 설치도 검토한다.

정부는 최근 문화예술계 내 인사들의 성폭력 폭로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문화예술계 내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도 빠른 시일 내에 수립할 계획이다. 민간 부문에서 발생한 성범죄 근절 대책도 준비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6일 미투 운동에 대해 “범정부 차원의 수단을 총동원해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젠더 폭력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가 미투 운동에 불이 붙은 지 한 달이 지나서야 대책을 내놨다는 비판도 있다. 정현백 여가부 장관은 “추상적 대책에 지나지 않기 위해선 부처 간 협력이 가장 중요했고, 현안 조정 회의 등 협의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국가가 성희롱·성폭력 문제를 좌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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