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생각한다] 진짜 죄는 낙태‘죄’다
[이렇게 생각한다] 진짜 죄는 낙태‘죄’다
  • 박슬기 산부인과 전문의·‘언니들의 병원놀이’ 기획자
  • 승인 2018.02.20 14:22
  • 수정 2018-02-2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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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7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주남부시장 청년몰 마을회관에서 열린 ‘페미 의학 콘서트’ 현장. ⓒ언니들의 병원놀이
지난 1월 27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주남부시장 청년몰 마을회관에서 열린 ‘페미 의학 콘서트’ 현장. ⓒ언니들의 병원놀이

“너희들 누구야? 이런 거 누구 허락 받고 하는 거야?”

50대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다. ‘낙태’ 토크콘서트 시작 30분 전, 다짜고짜 이어진 시비는 주먹을 들이대며 고성을 지르는 위협으로 이어졌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경찰이 출동해서야 상황은 겨우 일단락됐다.

나는 산부인과 전문의다.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잘 알고, 자신의 삶을 진짜 ‘선택’할 수 있게 하자. 다 나와서 얘기해 보자, 페미니즘에 의학적 팩트(fact·사실)로 힘을 싣자. ‘페미 의학 수다’를 모토로 한 ‘언니들의 병원놀이’는 이렇게 여성의 삶을 사는 의사로서의 내 고민과 이에 공감하는 활동가들로부터 시작됐다. 독성 생리대 파동 당시 ‘생리 콘서트’를 시작으로 한 ‘병원놀이’의 토크콘서트는 이번이 세 번째. 하지만 이번처럼 폭력적인 위협은 처음이었다. 낙태를 공개적으로 말한다는 것만으로도 공공연히 가해지는 위협. 이를 악물고 생각했다. 이 위협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여기서 이것을 말해야만 하는 명백한 이유다, 라고.

행사장 바깥 창문에는, ‘낙태’라는 핫핑크색 두 글자가 선명한 포스터, 그리고 낙태 경험 여성들의 실제 인터뷰(한국여성민우회 ‘당신이 생각하는 낙태는 없다‘)들을 발췌한 글들을 전시해 놓았다. 지나던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한참동안 글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복 차림의 관광객 가득한 전주 명소 복판에서의 낙태 콘서트. 언뜻 이질적인 이 풍경을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 받는 여성들이 있음을, 위협과 침묵으로 결코 삭제할 수 없는 삶이 있음을, 외치고 싶었다.

 

바보야, 낙태‘죄’가 진짜 죄야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조용히 객석을 채웠고, 행사가 시작됐다. 1부는 기획팀 중 나와 모카가 패널로서 낙태‘죄’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형법’상의 낙태죄와 국가가 필요에 따라 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로 삼는 데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또한 낙태가 ‘죄’로 불림으로 인해 여성을 짓누르는 죄책감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럼에도 이러한 죄의식을 의도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잘못된 성교육과 조작된 근거에 대해 ‘팩트 체크’로 확인했다. ‘낙태죄 폐지 반대’ 영상에는 낙태를 성윤리적 차원으로 바라보는 관점에 드러난 ‘성적으로 문란하고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여성’이라는 낙인이 선명했다. 최근 거센 비판을 받은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의 문제적 장면을 통해, 남성 측에서 낙태 경험을 빌미 삼아 여성을 고발하겠다며 협박하는 숱한 사례들을 되짚기도 했다. ‘부녀’만 처벌받지만 남성의 동의가 필요한 이상한 법. 낙태에 대한 여성의 ‘독박 책임’은 비단 법적인 문제뿐 만이 아니라, 여성이 자신의 삶에서 치열하게 고민을 거듭하고 마지막으로 낙태라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 모든 상황을 삭제해 버린, 더욱이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하는 혐오적 인식의 결과인 것이다.

갑자기 참가자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자신을 중학생 딸의 아버지라고 소개한 그 남성은, 우리가 편파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참가자들이 ‘중립적 시각’을 유지하도록 돕기 위해 자신이 나섰다고 했다. ‘책임질 줄 아는 좋은 남자’들이 세상에는 훨씬 많은데도 우리가 ‘나쁜 남자’의 이야기만 한다는 것이다. 순간 온갖 말들이 머릿속에 휘몰아치는 듯 했지만, 다만 ‘어둠 속의 발자국 소리’에 대한 오랜 비유로만 답했다. 밤길을 걷는 여성에게 뒤따르는 발자국 소리는 곧 죽음에 대한 공포이지만, 정작 어떤 의도도 없이 길을 가던 남성에게는 그 공포가 자신을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불쾌함일 수 있다. 하지만 불쾌함을 죽음의 공포와 비견할 수 있을까. 그 공포감에 대한 공감과 이해 없이 ‘나는 아닌데’, 하는 불쾌함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중립적 시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채 말 못한 가슴 속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왜, 여성의 삶에 대한 모든 이야기에 그들은 줄곧 ‘남자’의 이야기로 답하는 걸까. 여기 고통 받는 여성이 있다고, 여성의 삶이 있다고 아무리 외쳐도 왜, 그것을 단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은 아니라는 말에만 핏대를 세우는 걸까. 그런데 과연 ‘자신은 아닌’가. 그 부정이야말로 이 모든 고통을 묵인하고 방조해 온 진범은 아니었는가. 여성의 존재를 나와 같은 인간의 범주로부터 도려내어 버린, ‘내가 아닌’ 존재로 대상화했기에 가능한 목소리는 아니었는가.

 

낙태 의학 콘서트 포스터 ⓒ언니들의 병원놀이
낙태 의학 콘서트 포스터 ⓒ언니들의 병원놀이

성윤리 아닌 성교육의 문제

한편 “내가 그때 상대에게 콘돔을 끼라고 말하지 못한 것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모든 교육의 총 결과였다”는 낙태 경험 여성 인터뷰 기사는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우리 사회에서는 피임조차 여성의 책임으로 인식되는 반면 정작 이에 대한 여성의 결정권은 몹시 미미함을 지적한 말이며, 성적 존재로서의 여성이 떠안은 많은 편견들이 응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 다른 국가들의 낙태 관련 정책과 그 결과를 비교함으로써, 낙태금지법이 출생률 증가에 실효가 없을 뿐 아니라 모성과 영유아 건강에 치명적 결과를 초래해 왔으며, 오히려 낙태가 합법화된 국가들에서 피임법을 비롯한 실질적인 성교육 및 여성에 대한 충분한 지원을 통해 낙태율이 현저하게 감소하였음을 확인했다. 성윤리나 사회적 낙인이 아니라 ‘진짜 성교육’이 여성과 태아의 생명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의사로서, 나는 낙태가 ‘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보다 극명한 문제는 바로 건강에의 위협임을 말하고 싶었다. 매년 세계적으로 불법적인 낙태 시술로 인해 8만명 이상의 산모가 사망하고 있으며, 낙태죄 폐지 요구의 상징이 된 ‘검은 시위’는 이렇듯 불법 낙태로 인해 죽어간 여성들의 존재를 기억하라는 외침이다. 낙태가 불법인 우리나라에서도 모성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음은 당연하다. 음성화된 시술로 인해 낙태 비용은 급등한 반면, 부작용이나 합병증에 대해 어떠한 보호도 받을 수 없고, 중국 등 해외원정 시술을 받다가 사망한 경우마저 있었던 것이다. 익명의 인터넷 상에서는 유산시키려고 남자친구에게 배를 맞았다, 몸에 얼마나 무리를 가하면 자연유산이 될 수 있느냐, 하는 청소년들의 상담 사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낙태는 살인’이라는 선명한 주장 뒤에, 이처럼 목숨을 건 끔찍한 선택으로 내몰리는 여성들의 존재는 그림자처럼 가리워져 있는 것이 아닐까.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는 아동학대, 영아유기, 해외입양 등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임신 초기 염색체 이상을 감별하는 기형아 검사는 낙태 예외 조항에 해당되지 않음에도 국가 의료보험 지원을 받는 항목이다. 낙태와 관련한 ‘생명권’을 논할 때 정작 이러한 사실들은 거론되지 않음을 나는 말하고 싶었다. 과연 우리가 ‘생명’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사회인가. 과연 모든 ‘생명’이 행복하고 안정되게 태어나고 자라날 수 있는 사회인가. 실체 없는 생명권을 외칠 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 대해 진지한 물음이 필요한 때라는 인식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또한 왜 저출산 시대인가, ‘왜 아이를 낳을 수 없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 단순히 여성의 몸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는 모두에게 고통만이 거듭될 뿐임에 함께 공감했다. 육아 비용, 노키즈존, 맘충 등의 모성 혐오, 독박 육아, 경력 단절, 여성 차별적인 임금과 일자리, 사회적 편견 등. 낙태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양육에 대한 비용 및 사회적 지원과 성평등 노동정책, 부모 공동육아가 가능한 시스템 등을 위해 노력을 거듭한 유럽 국가들에서 출산율이 서서히 반등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낙태는 숫자가 아니라 여성의 삶이다

열띤 콘서트가 한참인 동안에도, 행사장 바깥에는 찬찬히 전시물들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참가자들과 마주보고 빙 둘러앉아 2부가 진행됐다. 낙태경험 여성들의 사례가 적힌 글이 담긴 바구니를 돌려가며 한 장씩 뽑아, 소리 내어 읽으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미프진 도입을 바라는 목소리, 피임 정보에 접근할 권리와 비현실적 성교육에 대한 원망과 분노. 피임약만 사도 ‘왜 아가씨가 이런 걸 사느냐’는 질문을 받는 현실. 결혼하면 성에 관련해 자유로운 주체가 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기혼여성의 낙태 사례들을 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는 안타까움. 낙태는 ‘낙인’이며, 개인이 아니라 사회전반적 문제라는 인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공감. 양육비가 정말 많이 든다는 한탄. 이게 나 자신의 문제고, 여성의 문제이며, 여성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 상당수의 낙태가 성감별로 인해 시행되었으며, 이러한 낙태 자체가 성차별의 귀결임을 간과할 수 없다는 지적. 앞서 편파적이라며 이의를 제기했던 중년 남성에게, 죄인을 찾고 추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죄가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이라는 참가자들의 반박도 이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찾을 곳이라고는 익명의 인터넷 공간뿐인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을 누군가가 바로 나 자신일 수도, 내 가족이거나 친구일 수도 있음에 모두가 한껏 끄덕였다. 사례 속의 여성이 너무 외롭고 쓸쓸하다는 게 느껴졌다는 한 참가자의 말에, 그만 울컥, 눌러왔던 감정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는 말을 새삼 굳세게 가슴에 새겨 본다. 우리가 이렇듯 서로를 더 만나고, 서로의 목소리에 힘이 되고, 서로의 존재를 찾아내어 굳게 손잡아 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그래서 이 사회가 그 어떤 숫자나 통계로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아픔과 비명에 귀를 기울이는 사회로 나아가길. 낙태죄를 넘어, 모든 생명이 귀하디 귀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향해 가길. 그 첫걸음이 여성에게 모든 책임과 상처를 오롯이 짐지우는 낙태‘죄’의 폐지부터 시작되길 간절히 바란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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