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의 중요한 성과로 꼽히는 호주제 폐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 내외부에 ‘여기로’(여성의 기록을 기억하는 길)를 만들고 오는 31일까지 ‘호주제 폐지, 기록과 기억’을 주제로 조성 기념 전시를 연다. 여기로는 역사 속 여성의 기록을 기억하고 여성이 함께 만드는 공유공간이다. 조성 기념 첫 전시 주제는 호주제 폐지는 여성운동사에서 유례가 드물정도로 보수와 진보를 아울러 여성계 전체가 연대해 이룬 결실이라는 의미가 깊다. 전시에 사용된 자료는 한국가정법률상담소,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한국여성단체연합가 제공·기증 했다. 서울여성플라자 1층 갤러리 봄에서는 사진을, 2층 성평등도서관 여기에서는 도서, 단체 간행물, 행정소송문서 등 기록자료를 볼 수 있다.
2005년 3월 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복도는 여성들의 우렁찬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이날 성차별의 상징이었던 ‘호주제’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민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찬성 161표, 반대 58표, 기권 16표. 여성계 50년 숙원이 이뤄진 순간이다. 호주제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의 출생, 혼인, 사망 등 신분 변동을 기록하는 신분등록제로 일제 강점기 때 도입됐다. 수십년 간 대표적인 성차별 제도로 인식돼왔으며 재혼 가족, 한부모 가족, 입양 가족 같은 다양한 가족의 존재를 막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호주제 폐지는 1950년대부터 계속된 여성운동의 결정판이다. 50여년에 걸친 투쟁 끝에 2008년부터 민법 안에서 호주제 관련 규정이 삭제됐다. 남성이 우선 호주가 될 수 있어 어린 아들, 손자가 어머니, 할머니의 호주가 되고 가장으로서 집안을 이끌어 가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사라졌다. 호적 대신 개인별 신분등록제도도인 1인 1적제가 도입됐고, 대물림을 위해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도 벗어났다.
강경희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대표는 “여성단체들이 제공하고 기증한 자료로 마련된 ‘호주제 폐지, 기록과 기억’ 전시는 여성운동의 50여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니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