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성과 마찰·성폭력 문제 여전

여성농민들과의 연대 남겨진 과제

올해 처음, 전일로 농활을 갔다. 가기 전에 내가 과연 농활에 가야 하는지 많이 고민했다. 농촌의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분위기도 갑갑할 것 같았고, 농사일이란 것이 주로 물리적 힘을 요하기 때문에 내가 ‘2류 노동력’ 취급을 당할까봐 걱정되었다. 더구나 우리 과 농활대 중 선발대로 가는 여학우가 나 하나밖에 없다는 악재(?)까지 겹쳐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우선 농촌여성들과 가까워지고 그들의 현실을 알고 싶었다. 여성농민반 활동을 강화해서 여성농민들도 남성농민들 못지 않게 중요한 존재이고 연대의 대상임을 알리고 싶었다. 농활시기 성폭력과 성별분업 문제도 비록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누군가 나서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내가 농활을 가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다.

그리고 10박 11일 이후, 나는 절반은 들뜨고 절반은 씁쓸한 마음으로 서울에 돌아오게 되었다.

일단 농활대원들이 농활시기 발생하는 성폭력과 성별분업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며, 공동체 차원의 노력을 통해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 우리 과만 해도 ▲특정성을 대상화하거나 비하하는 언행을 금지한다 ▲가사노동은 돌아가며 분담한다 ▲생리하는 여학우의 편의를 우선 고려한다 등등의 내용이 담긴 반성폭력 내규가 만들어졌고, 농활대원들 모두가 내규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술자리에서 마을 주민과 농활대원 사이에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것이 왜 성폭력이며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지가 논의되었고, 농활 주체들을 비롯해 모두가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었다(그리고 미흡하게나마 가해자의 사과를 받는데도 성공했다!). 다른 과, 다른 단대의 농활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 농활의 모습과 비교해 본다면 정말 큰 발전이다.

여농반(여성농민반) 활동이 잘 된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마을 아주머니들, 할머니들과 꽤 친해졌고 그녀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농촌여성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더 나아가서는 우리 어머니 세대의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미숙하기는 했지만 여성농민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남성농민들과 농활대가 같이 술자리를 갖는 동안 집에 남거나 술자리에서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농촌여성들이 학생들과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든 것도 뿌듯했다.

그러나 농활에서는 농민들이 갖고 있는 가부장성과 부딪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역시 성폭력이었다. 특히 여학우라는 이유만으로 따로 불려나가거나 술시중을 강요당하는 일이 우리 과를 포함해 여러 마을에서 일어났다. 심지어 어떤 지역에서는 성폭력 사건의 처리 문제를 둘러싸고 농활대와 농민회가 대립하는 일까지 일어났다고 한다.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이 일어났다는 것은 농활대의 여성의식이 높아졌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농활시기 성폭력 사건을 올바르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계속 마음에 걸린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을 주민들이 여학생들을 지나치게 특별히 취급하거나 과잉 보호하려는 것을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 것인지, 농활 기간 내내 그 점을 고민했다.

한편 농촌여성들의 생활을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앞으로의 여농반 활동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할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과가 들어간 마을의 경우, 특히 다수의 젊은 아주머니들이 직장 생활(농사만으로는 가족을 부양하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아주머니들이 시내에 나가 일을 하신다고 했다)과 가사노동을 병행하느라 고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들은 자신의 처지가 특별히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예전 농활대처럼 농촌여성들을 계몽(?)하여 가부장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하도록 한다는 식의 방식을 택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여농반 활동을 단지 아주머니들과 친해지고 즐겁게 노는 식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여성주의적 정체성을 고취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게 남겨진 또 하나의 숙제이다.

김한 정연/서울대 3년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