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재난 약자’ 보여준 제천 참사
여성은 ‘재난 약자’ 보여준 제천 참사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7.12.26 20:38
  • 수정 2017-12-30 2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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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3시33분께 충북 제천시 하소동의 복합건축물인 노블휘트니스앤스파에서 화재로 29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부상을 입었다. 진화된 건물이 처참했던 현장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21일 오후 3시33분께 충북 제천시 하소동의 복합건축물인 노블휘트니스앤스파에서 화재로 29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부상을 입었다. 진화된 건물이 처참했던 현장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사망자 80%가 여성

남성 사우나 피해 없어 대조

안전 불감증·관리자의 부적절 대응이 참사 키워

한국 사회의 안전 불감증이 또 다른 비극을 낳았다. 충북 제천 노블휘트니스앤스파 화재 참사를 달리 설명할 길은 없다. 묵과할 수 없는 문제가 또 있다. 여전히 여성들은 ‘재난 약자’라는 점이다. 제천 참사 희생자 29명 중 여성이 23명, 약 80%였다. 여성 사우나가 있는 2층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도,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때도,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여성의 피해율이 남성보다 높았다.

안전 책임자들의 부적절한 대응이 참사를 키웠다. 여성 사우나 내부엔 화재경보기가 없었다. 비상계단 입구는 평소에도 막혀 있었다. 소방업체가 사고 한 달 전 해당 건물 소방점검을 했지만, 여성 사우나는 점검하지 않았다. ‘남성’ 건물주는 남성 사우나와 달리 ‘여성 사우나’에선 적극적으로 대피 유도를 하지 못했다. 

 

지난 21일 오후 4시께 충북 제천시 하소동
 노블휘트니스앤스파에서 불이 나 건물 전체가 연기에 휩싸여 있다. 꼭대기층에서 발코니로 피신한 3명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21일 오후 4시께 충북 제천시 하소동 노블휘트니스앤스파에서 불이 나 건물 전체가 연기에 휩싸여 있다. 꼭대기층에서 발코니로 피신한 3명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왜 여성 사우나가 있는 2층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을까. 2층은 1층 발화지점과 가장 가까웠다. 불길과 연기도 가장 강했다. 당시 2층에 있었던 30여 명 중 대다수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사망한 채 발견된 20명 중 여성이 18명, 남성이 2명이다. 대부분은 여자 사우나 출입문 앞에서 발견됐다. 당시 사우나 입구의 유리 자동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창문이 있었지만 강화유리라서 깨고 탈출하기 어려웠다. 2층에 유입된 유독가스가 건물 내부를 메웠고, 희생자들은 대부분 질식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2층 여성 사우나에서 바깥으로 바로 연결되는 비상계단이 있었다. 그러나 비상계단 입구는 평소에도 목욕 바구니와 각종 자재가 쌓인 철제 선반으로 가로막혀 이용할 수 없었다. 이용객의 대피를 도울 직원도 없었다. 남성 사우나에는 매점, 이발소 상주 직원들이 있었지만 여성 사우나 내 직원은 세신사 한 명 정도였다. 그나마도 사우나 안에서 일하느라 화재 사실을 늦게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 

부실한 안전 점검도 문제였다. 춘천시 A 소방업체가 사고 한 달 전 이 건물 소방점검을 했지만, 여성 사우나는 점검하지 않았다. A업체가 스프링클러 오작동, 화재경보기 불량 등을 방치한 의혹도 제기됐다. 27일 경찰은 A업체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건물주이자 사우나 주인인 이모(53) 씨의 대응도 부적절했다. 이 씨는 화재 당일 한 층씩 올라가며 대피하라고 외쳤고, 3층 남성 사우나 안까지 직접 들어가 대부분을 대피시켰다. 남성 사우나 이용객은 비상계단 등으로 대피해 전원 살아남았다. 4층과 5층에 있던 이들도 모두 생존했다. 그러나 이 씨는 2층 여자 사우나엔 들어가지 않고 문밖에서만 대피하라고 외쳤다. 이후 8층 옥상으로 대피해 구조된 이 씨가 경찰에 진술한 내용이다. 지난 26일 충북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으로 이 씨와 관리인 김모(50)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일개 업체나 관리인의 문제로만 보긴 어렵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방본부 관계자는 “소방 점검은 대부분 남성 소방관이 맡는다. 여성 사우나는 여성들이 나체로 있는 공간이고, 서로 불편하니까 아마 대충 했을 가능성이 높다. 제대로 점검하려면 여성 소방관을 보내거나 잠시 영업을 중단하고 점검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업체나 주인이나 그렇게까지 점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귀찮으니까...”라고 말했다.  

6층~8층에서 발견된 9명의 시신 중 5명이 여성이다. 소방 당국은 6층∼8층 내부에 가연성 물질이 많아 연기와 유독가스가 다량 발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5일 충북 제천체육관에 마련된 화재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조문객이 희생자 유가족이 붙여 놓은 사진을 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25일 충북 제천체육관에 마련된 화재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조문객이 희생자 유가족이 붙여 놓은 사진을 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여성들 “남 일 아니다”

“재난 시 대응할 수 있다” 여성 14%뿐

재난 교육·훈련 참여율도 평소 실천율도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낮아

이번 참사 소식을 들은 여성들은 ‘남의 일 같지 않다’며 두려워하고 있다. SNS에선 “사우나, 찜질방은 여성들의 휴식 공간이자 친숙한 생활공간이라 더 무섭다” “여성들은 보통 목욕 바구니를 두고 다니는데 하필 비상구 앞에 쌓아뒀단다. 관리인이 알고도 방치했다니 안전 불감증이 심각하다” “소방 교육도 대피 훈련도 받아본 적 없어서 저런 일이 닥치면 꼼짝없이 죽을 것 같다” 등 의견이 빗발치고 있다. 

여성은 재난에 남성보다 더 취약하다. 다수의 연구·분석이 이를 증명한다. 여성의 재난 교육이나 훈련 참여율부터가 남성보다 몹시 낮다. ‘교육 내용 등 관련 정보를 몰라서(80.6%)’, ‘관련 교육기관이 어디인지 몰라서(78.5%)’, ‘받을 만한 교육과정을 몰라서(63.2%)’가 주된 이유였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재난 교육·훈련에 참가하질 못했다는 여성(6.7%)도 남성(2.7%)보다 많았다. 특히 임산부, 65세 이상 고령자, 장애인 등 여성 사회약자의 재난 교육·훈련 경험률은 압도적으로 낮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젠더리뷰』 2016년 겨울호에 기고한 내용이다. 

 

여성의 재난 교육이나 훈련 참여율은 남성보다 퍽 낮다. ‘교육 내용 등 관련 정보를 몰라서’, ‘관련 교육기관이 어디인지 몰라서’, ‘받을 만한 교육과정을 몰라서’가 주 이유였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젠더리뷰』 2016년 겨울호
여성의 재난 교육이나 훈련 참여율은 남성보다 퍽 낮다. ‘교육 내용 등 관련 정보를 몰라서’, ‘관련 교육기관이 어디인지 몰라서’, ‘받을 만한 교육과정을 몰라서’가 주 이유였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젠더리뷰』 2016년 겨울호

평소 재난대응 실천율의 성별 격차도 두드러진다. 여정연 연구 결과, 다중이용시설을 사용할 때 비상구를 확인한다는 남성은 48.2%, 여성은 37.1%였다. 민방위 훈련에 참여한다는 남성은 64.5%, 여성은 51.7%였다. 재난 상황에서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고 답한 여성은 14.1% 뿐이었다(남성 35.9%). 또 제천 참사에서도 드러났듯, ‘여성 공간’이라는 이유로 ‘남성’ 관리자가 적극적인 안전 점검이나 대피 안내를 회피하는 경우가 실제로 잦다고 한다. 결국 젠더 불평등이 재난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모든 상황에서 대피 방법 인지율은 남성이 여성 보다 약 2배 정도 높았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젠더리뷰』 2016년 겨울호
모든 상황에서 대피 방법 인지율은 남성이 여성 보다 약 2배 정도 높았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젠더리뷰』 2016년 겨울호

권수애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는 “젠더 관점을 반영해 제대로 된 안전 점검을 해야 한다. 다중이용시설의 여성 전용 공간에는 여자 관리인을 최소한 한 명 이상 두도록 해 위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설 안전과 유해물질 관리는 기본이다. 기존 재난 대처 교육·훈련이 직장인 위주고, 민간인들이 참여할 기회가 너무 없다. 여러 연령·배경의 여성들도 편리하게 재난 대처 교육·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 특히 미혼 여성, 여성 1인가구, 장애 여성, 노인 여성, 임산부와 소녀가 재난에 더 취약하다는 사실은 전 세계적으로도 알려진 사실이다(UN 여성, 2015). 각국은 이를 고려해 젠더 관점을 재난 대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명시한 국제 강령도 있다. 2005년 일본 고베시 효고현에서 열린 재난감축국제회의에서 수립된 ‘효고행동강령’(HFA, Hyogo Framework for Action, 2005~2015)은 재난 위험 관리를 위한 모든 국가정책·계획과 그 의사결정 과정, 재난 피해 조사, 조기 경보, 정보 관리와 교육·훈련에 성평등 관점이 통합돼야 한다고 권고한다. 그러나 2017년 말 현재까지도 국내에선 이런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장미혜 여정연 연구위원은 『젠더리뷰』 2015년 봄호 기고에서 “이제까지 재난관리 정책이 젠더 중립적인 관점에서 시행돼 재난관리 교육, 훈련, 연습 등이 모두 정상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지고, 복구·구호의 경우에도 여성이 필요로 하는 생활용품이나 구호품이 준비되지 않거나,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젠더 관점을 도입해 관련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제라도 국가의 재난관리 정책 전반에 젠더 관점이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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