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들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를 상대로 2차 가해를 벌인 르노삼성자동차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여성신문
여성단체들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를 상대로 2차 가해를 벌인 르노삼성자동차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여성신문

르노삼성, 성희롱 피해직원

상대 상고심서 패소

대법, 남녀고용평등법

불리한 조치 금지’ 위반 인정

직장 내 성희롱 조사 직원

비밀누설도 사용자 책임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를 도운 동료(조력자)에 대한 회사측의 보복적 징계가 남녀고용평등법이 명시하고 있는 피해근로자 등에 대한 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최초의 판결이 나왔다. 이와 함께 직장 내 성희롱 사건 조사업무를 맡은 담당자의 비밀누설 행위에 대해서도 사용자의 책임이 성립한다는 원심의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22일 르노삼성자동차 직원 A씨가 르노삼성자동차 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직장내 성희롱 불리한 조치 등에 관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일부를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하고 피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대기발령과 징계 건을 항소심 판결과 달리 각각 '남녀 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고평법)’ 제14조 2항 불리한 조치 금지 위반으로 인정했다. 14조2항은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이다.

대법원이 남녀고용평등법의 불리한 조치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추가로 판결한 것은 2건이다. △피해자가 회사동료에게 진술서를 작성케 한 행위를 회사 측이 징계한 한 것이 성희롱과 무관하게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과 △피해자가 서류 반출 행위로 대기발령한 것 역시 정당한 인사재량권의 범위 내에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특히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의미 있는 것은 회사 측이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를 도와준 조력자에게 보복적 징계처분을 한 것이 불법행위라고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업주가 피해근로자 등을 가까이에서 도와준 동료 근로자에게 불리한 조치를 한 경우에 그 조치의 내용이 부당하고 그로 말미암아 피해근로자등에게 정신적 고통을 입혔다면, 피해근로자등은 불리한 조치의 직접 상대방이 아니더라도 사업주에게 민법 제750조에 따라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시 남녀고용평등법령에 따라 신속하고 적절한 근로환경 개선책을 실시하고, 피해근로자등이 후속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적정한 근로여건을 조성하여 근로자의 인격을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가 있다”면서 “그런데도 사업주가 피해근로자 등을 도와준 동료 근로자에게 부당한 징계처분 등을 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업주가 피해근로자등에 대한 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결정했다.

또 대법원은 직장 내 성희롱을 조사했던 인사팀 직원의 의무 위반에 대해 사용자 책임을 인정한 원심도 확정했다.

판결문은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조사하면서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거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침해할 수 있는 언동을 공공연하게 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보아야 한다”면서 이는 “피해근로자등에게 추가적인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이는 결국 피해근로자등으로 하여금 직장 내 성희롱을 신고하는 것조차 단념하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와 함께 “피용자(직원)의 위법행위가 사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거나 가해행위의 동기가 업무처리에 관련된 것이라면 사용자책임이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이번 손해배상 청구 민사소송은 2013년 6월 시작돼 대법원 판결까지 4년 6개월에 걸쳐 소요됐다. 1심 재판부는 사측의 불리한 조치 금지 위반을 인정하지 않고 성희롱 가해자에 대해서만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오면서 판결이 완전히 뒤집혔다. 

한국여성민우회 등이 참여하는 피해자측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기존의 협소한 법적 인정의 범위를 넓혀, 한국사회를 성희롱을 문제제기하고 시정할 수 있는 사회 쪽으로 한걸음 더 가까이 가게 했다”면서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어 “지금도 많은 기업들은 직장내 성희롱 문제제기자를 오히려 고립시키고 배제하는 불이익한 조치들을 행하고 있다”면서 ”이번 판결은 더 이상 한국사회에서 이 같은 불이익조치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선언적인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현재 정부와 검찰이 진행중인 수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공대위는 진행 중인 손배소와 별개로 지난 2014년 2월 고용노동부에 남녀고용평등법 14호 2항 불합리한 조치 금지 위반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했다. 그러나 정부와 검찰은 이렇다할 이유없이 4년째 수사를 미뤄오다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불거지자 재수사에 착수했다. 불리한 조치 금지를 위반한 기업에 대해 형사처벌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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