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옥 경북안동여성농업인센터 대표

농촌과 농업, 농민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들판에 엎드려 일하는 농민들의 구릿빛 얼굴에서 무엇을 보려 한 적이 있었던가. 다만 시골 풍경을 바라보며 감상주의적 발상으로 마음의 고향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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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길안면에서 농사를 지으며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가치가 똑같이 존중받는 평등한 사회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박인옥 경북여성농업인센터 대표(37)를 만났다.

“근육노동은 두뇌노동에 비해 과연 가치가 낮은 것인가. 배우기 위해 시간과 노력과 돈을 투자했으므로 두뇌노동이 그만큼 더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20:80의 법칙에서 80을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노동자와 농민은 왜 배우기 위해 투자하지 않았을까. 청소년기에 배우기 위한 투자가 청소년 개인의 의지로 가능한 것인가. 부모가 가난해서 배움을 포기하는 경우와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아 선택하지 않은 경우 등 다양한데 두뇌노동을 위한 투자, 즉 배운다는 것은 꼭 근육노동을 하지 않기 위한 것일까. 세상은 두뇌노동만으로 움직여 왔고 또 발전하는 것인가.”

박 대표가 대학시절 농촌활동을 다니면서 늘 갖던 생각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박 대표는 “두뇌노동과 근육노동은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결코 차별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농촌에서 농민과 함께 열심히 일하고 그만큼의 대가를 받겠다”는 생각을 하며 농민운동을 결심하게 되었다.

배움 실천 위해 서울 떠나 농촌으로

대학 졸업 후 전국여성농민회에 근무하면서 훌륭한 선배 여성농민운동가들을 만났다는 그는 “그분들께 세상사는 도리와 방법은 물론 일하는 사람의 자세와 업무능력도 함께 배웠습니다. 배운 만큼 다 실천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 가르침은 언제나 잊지 않고 제 인생의 지침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라고 전한다.

1992년 결혼 후 출산으로 박 대표는 전국여성농민회의 일을 접었다. 둘째 아이를 낳아 기르는 3년 동안 육아와 가사에 전념할 때 아파트 단지에서의 저녁 풍경은 박 대표로 하여금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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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옥 대표는 지난 5월 15일 여성농민포럼을 열었다.

“전국농민회에서 일하던 남편은 매우 바빴어요. 1994년을 정점으로 WTO가 출범하며 농산물 완전개방이 이루어지던 시기였거든요. 8개월 된 둘째 아이가 낯을 가릴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실천 없이는 한낱 배운 자의 가식과 관념적 유희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박 대표 가족은 서울을 떠나 길안으로 내려오게 된다. 1995년 겨울, 다음 해 농사 준비를 위해 남편이 먼저 길안으로 내려왔고 박 대표는 이듬해 이사를 했다. 농촌생활이라고는 농활 이외에 한번도 해 보지 않은 그로선 자연을 상대로 농사라는 직업을 택하는 것과 농촌 정서를 익히는 과정은 큰 숙제였다.

다중고 시달리는 여성농민 위한 프로그램 개발

길안은 농민회와 여성농민회가 조직되어 있는 곳으로 박 대표도 당연히 농민회의 일원으로 참여하며 안동시 여성농민회 총무와 선전부장으로 일했다.

“길안에 정착하게 되면서 안동시 여성농민회의 김희숙 회장을 비롯해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된 것이 큰 행복이자 행운이었다”고 전하는 박 대표의 30대는 이들을 배제하고는 얘기할 수가 없다고 한다.

박 대표는 여성농민에게는 농사뿐 아니라 가사, 육아문제를 비롯하여 마을 전체를 돌봐야 하는 의무도 부과된다고 말한다. 여름철 피서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치우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길안천 하천 청소에서부터 대민봉사사업, 겨울철에는 장애인시설에 김장 해주고 마을교육까지 해왔지만, 정작 아이들에게 소홀한 점을 감안해 4년 전부터는 어린이날 행사를 꼭 챙긴단다.

“어린이날은 고추모 이식 할 때라 무척 바쁠 때예요. 어린이날이라고 놀아주기는커녕 아이들을 데리고 들로 나가야 할 형편이지요. 궁리 끝에 견학과 여행을 통해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 것을 보여 주는 프로그램을 마련했죠.”

박 대표가 농촌문제 중 가장 안타까워하는 점은 농촌의 노령화 현상이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사회적으로 천시 받고 젊은이들이 다 떠나 피폐해져 가는 모습이 요즈음 농촌의 현실입니다. 지금 영농활동의 연령이 50~60대예요. 젊은 여성농민들을 정착시켜 고령화 되어가는 농촌을 젊고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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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시 여성농민회 간부수련회에서. 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박인옥 대표.

“길안여성농민회 회원들과 함께 경북안동여성농업인센터를 개소하게 된 것을 무엇보다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박 대표는 여성농민이 생산한 농수산물에 대한 부가가치를 높이는 한편 여성농민도 당당한 직업인이라는 의식을 갖게 하는 것,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의 과제를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가려 한다.

“이젠 농정 믿지말고 스스로 일어나야”

“변화하는 시대에 조용하게 농사일, 집안 일만하던 여성농민의 역할이 여러 가지 지위를 요구받고 있어요. 부부의 농업노동 참여를 맞벌이 개념으로 이해하면서 여성농업인을 전문직업인으로 인정하는 추세이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여성농업인센터를 주축으로 여성농업인을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가령 농번기에는 보육사업과 아동·청소년을 위한 사업은 물론, 마을을 순회하며 농업교육과 관련한 전문강좌를 개설하여 영농활동, 건강·가정·교육·복지문제 등 여성농업인의 애로사항을 상담하고 있습니다. 또 문화활동을 비롯하여 정보화 사회에 발맞춰 갈 수 있도록 컴퓨터교육 등을 실시하여 전문 여성농업인을 육성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라고 전한다.

이와 함께 박 대표는 여성농업인센터를 통해 도시지역과 농산물을 교류할 수 있는 활로를 개척하고 여성농민의 전문성 고취를 위한 여성농업인 포럼을 마련하고 있다. 여성농업인이 주축이 된 정책개발도 여성농업인센터의 중점사업이다.

“이젠 정부의 농정을 바라보지 말고 스스로가 일어나야 합니다. 사실 농업정책은 10년을 넘게 보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길안은 10여년 전부터 사과농사를 주로 하고 있는데 현재는 수확기에도 일 할 사람이 없습니다. 정부는 대안으로 키 작은 사과나무를 심으라고 해서 몇 가구가 키 작은 사과나무를 심었죠. 그런데 정작 키작은 사과나무 수확시기에 칠레에서 사과를 수입한다고 하니 농민들은 막막하기만 하죠. 이런 일련의 정책을 보면서 농사를 짓고 있는 우리들이 스스로 합리적인 계획을 세우고 지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 대표는 “씨 뿌린 만큼, 땀 흘린 만큼의 대가가 돌아오지 않는 우리 농촌이 평등하게 대접받고 행복한 사회가 될 때까지 온 힘을 기울일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경북 권은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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