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시청료 내는 것이 아깝다

몇 달 전 저녁 뉴스를 보던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뉴스 진행자는 한 개그우먼이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내용을 전했고 그녀가 힘겹게 운동하는 장면들이 화면 가득 이어졌다. 한 여성의 살빼기 작전(!)이 저녁 뉴스의 기사 감이란 생각을 미처 못했던 나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그녀의 몸무게가 몇 킬로그램이었고 허리둘레는 몇 인치였는데 현재는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줄였는지를 그 후로도 계속해서 각종 프로그램에서 보고 듣고 해야 했다.

이영자의 다이어트는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초특급! 일요일 만세’의 MC로 이영자를 전격 캐스팅한 SBS는 ‘영자! 시집간다’라는 공개 구혼 코너를 통해 살이 ‘쏙’ 빠진 이영자를 위한 결혼작전에 돌입했다.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직접 맞선을 주선하는 등 한 여성을 시집 보내기 위해 보여준 제작진의 노력은, ‘몸매 만들기=결혼의 예비조건, 결혼=행복의 보증수표’라는 낡은 공식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던 차에 지방흡입수술 의혹이 불거지고 그것이 법적 공방으로 비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시청자 의견란에는 연일 실망과 동정, 분노와 위로의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시청자들의 관심이 증폭되는 가운데 KBS에서는 실로 충격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또 다른 개그우먼을 동원해 지방흡입술의 효과 등을 실제로 ‘실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수술 과정을 보여주고 체중감량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등을 밝혀보려던 이들의 기획은 결국 무산되었다. 그러나 공영방송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와 믿음은 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의 의견이나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을 굳이 실험하겠다고 나선 <시사터치 코미디파일> 제작진들의 행태를 누가 쉽게 납득할 수 있을까? 흥미거리, 구경거리로 삼기 위해 전신마취 상태의 수술을 행하는 상식 이하의 행동을, 일반 시청자들은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다. “매달 TV 시청료 내는 것이 아깝다”는 한 시청자의 의견은 공영방송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이영자 신드롬’, ‘이영자 신화’가 불을 당긴 다이어트 열풍은 지금도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달리기 열풍에 조깅화 매출이 크게 늘고 다이어트 비디오가 날개돋힌 듯 팔려나가고 그녀가 둘렀다는 얼굴밴드 ‘땡김이’를 없어서 못 팔 지경이 된 데에는 언론의 호들갑이 단단히 한몫 했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언론매체의 보도는 아름다움에 대한 여성들의 욕구를 부채질했다. 무책임한 그들의 취재경쟁에 힘입어 더 많은 여성들이 비만치료제를 원하고 있고 다이어트 상품광고가 난무하고 있으며 다이어트 사이트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영자 파문은 PC통신에서도 핫이슈이다. 네티즌들의 투표가 이어지고 있고,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가 속속 보도되고 있다. 연예오락 프로그램뿐 아니라 시사교양 프로그램(MBC )에서도 이영자 파문을 다루고 있다. 심지어 한 대학의 심층 면접에서 시사문제 중의 하나로 이영자의 체중감량이 다루어졌다.

그러고 보면 이영자 파문은 사회적 문제임에 틀림없다. 무책임한 상업주의, 파렴치한 이권다툼, 꼴사나운 취재경쟁 등의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진짜 문제는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이를 부추기는 언론이다. 여성의 가치를 외적인 아름다움으로 평가하려는 정신적 사시, 이성의 증발, 강박과 집착이 치유되지 않는 한, 또한 언론이 변화하지 않고 여성들을 그러한 시선으로 다루는 한 여성들은 점점 더 다이어트에 중독될 것이며, 몸매 때문에 불행한 여성들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김정란/ 21세기여성미디어네트워크 매체비평팀

cialis coupon cialis coupon cialis coupon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