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 긴 호흡으로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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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기다리던 단비가 내리던 날 대학원 교정에서 고3 학생처럼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는 강문순(45)씨를 만났다.

강문순씨는 진주여성민우회 가족과 성 성담소를 창립하고 소장과 상임대표를 맡아 활동했다. 지금은 가족과 성 상담소에서 상담원으로 활동하며,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여성운동을 위해 다시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며 공부를 계속할 생각을 하던 중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백일도 채 안된 아이와 남편의 직장을 따라 진주에 정착하게 된 것이 1980년대 중반이었다.

“처음 몇 년간은 낯설고 물선 땅 진주에서 남편만 보고 살아가는 해바라기였어요. 아이와 지내는 시간이 전부였죠.”

그가 1999년까지 여성민우회 대표와 가족과 성 상담소 소장을 맡아 활동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여성 문제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작업과 성폭력 예방 및 추방운동이었다. 여성에 대한 관념이 특히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진주지역에서 이러한 작업이 무엇보다 필요했고, 특히 원로 여성들의 정체된 사고가 답답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여성들 스스로가 당하는 폭력을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치부해 버릴 정도로 여성들 자신이 남성중심적 시각을 내면에 가지고 있었어요. 그 의식을 바꿔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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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중생을 대상으로 민우회 성교육 캠프를 열면서(서 있는 사람이 강문순 전 회장)

그는 당장에 해야 할 일이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얘기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진주여성민우회가 진주여성의 친정 같은 곳, 누구나 와서 자신의 고민을 얘기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댈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일했어요.”

그러나 지역에서 여성운동은 힘든 일이었다. “지역에서 여성운동이 친숙하지 않은 운동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회원 확보가 힘들어요. 또 회원 대부분의 직업이 주부이다 보니 단체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부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주부들이 맡고 있는 많은 역할과 상황들이 인력부족 사태를 낳고 재정적인 문제를 낳지요.”

“우리가 싸우는 만큼 좋아지는 세상”

그러나 그는 “열악한 상황에서 열정을 다 바쳐 일하는 회원들을 보며 희망을 갖고 일해 왔어요. 조급하지 않게 활동해 나가다 보면 어려움은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온거죠. 요즘 들어 지역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는 게 보여요.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특히 젊은 여성들이 여성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라며 “희망과 믿음의 세월에 대한 보답이 아니겠느냐”라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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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기 민우학교를 열고 회원들과 함께 한 강문순 전 회장

그는 지금 한 걸음 물러서 공부를 통해 전체적인 운동방향을 모색하며 민우회 회원을 확대하는 작업을 한다. 소모임을 통해 일상적인 삶 속에서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키우고 그것을 확산해 나가는 작업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또 강 전회장은 여성노동과 미디어 관련 활동도 시작했다. “노동부분에서의 여성문제는 차별, 폭력 등 다중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며 “영세사업장과 서비스업이 많은 진주지역에서는 반드시 다루어야 할 문제”라고 강조한다.

“우리 단체의 역량과 인력이 부족해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는 면이 있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라고 다짐하며 “지역여성단체로 지역 여성의 문제점을 찾아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 한다.

“좀 더 많은 여성의 동참을 바래요. 지금까지 성상담소를 통해 참다운 인간관계를 경험해 왔어요. 좀 더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관계를 경험하고 그 속에서 다른 여성을 생각하고 다른 여성과 연대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강 전회장은 여성운동을 긴 호흡으로 본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짧은 시간에 바로 잡히지도 않을테고 바로 잡을 수도 없다고 봐요. 여성들이 움직이면 그에 비례한 반동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노력조차 않는다면 세상의 변화는 결코 없을 겁니다. 우리의 선배, 동시대의 많은 여성들이 노력하여 이만한 세상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었듯이 우리도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경북지사 권은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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