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이 필요한 만큼 이야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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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 나이트의 화자인 세헤라자데를 용감하고 지혜로운 여성으로 기억한다. 결혼 첫날밤에 신부를 죽이는 무서운 왕과의 결혼을 자청하여, 재미난 이야기로 하루를 일주일로, 한 달로 연장해가며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니까. 그러나 이것도 세헤라자데가 예뻤으니까 가능한 이야기 아닐까. 뚱뚱하고 우둔한 여자였다면 왕이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릴 적 읽은 동화 <아라비안 나이트>가 내게 준 교훈은 똑똑하고 예뻐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티브 배런의 <자파 Arabian Nights>(15세, 새롬)는 TV용 영화다. 문예나 역사 특집극이 대개 그러하듯 화려한 출연진과 세트 속에 방대한 이야기를 구겨넣고 있다. 그리고 이를 다시 국내 비디오 제작사가 한 개의 비디오에 담으려고 군데군데 자르다보니 이야기 비약이 심해 온전한 영화 감상이 어렵다. <걸리버 여행기> <오딧세이> <아나스타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그랬고 <자파>도 마찬가지여서 다이제스트쯤으로 여기면 좋겠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세헤라자데 역을 맡은 여배우가 늘씬하고 예쁘다는 것. 헌데 <아라비안 나이트>나 세헤라자데가 아닌, 세헤라자데의 아버지 이름을 우리말 제목으로 삼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피노키오의 모험> <콘헤드 대소동> <난자 거북이> 등의 오락물을 만들었던 배런 감독은 화려한 시각 장치들로 아라비아 왕국의 궁전으로부터 진기한 이야기들을 전한다. 중국, 예멘, 콘스탄티노플, 시리아, 바그다드, 카이로를 배경으로 한 모험과 사랑, 전쟁, 용기, 배신의 이야기들은 이국 정취로 가득하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에는 지혜로운 여성이 등장해 사건을 해결하기도 한다.

쌍둥이 동생과 사랑에 빠져 자신을 배신했던 아내를 죽인 후, “여자들이 나를 속일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결혼 첫날밤에 신부를 죽이는 일을 반복하며 악몽에 시달리는 술탄 사리아(더그레이 스캇).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아버지 자파의 모습을 본 세헤라자데(밀리 아비텔)는 어릴 적부터 연모해온 사리아를 바로잡기 위해 신부되기를 작정한다.

저자거리의 재담꾼으로부터 “사람에게 빵이 필요한 것만큼이나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세헤자라자데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알라딘’등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술탄으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어 국사에 임하도록 이끈다.

옥선희/ 비디오 칼럼니스트 oksunhee@n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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