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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번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유명세만큼이나 바쁜 강의 일정으로 인해 자꾸 미루어지던 만남이, 눈부신 햇살과 바람의 하늘거림, 코끝을 간지럽히는 라일락 향기가 가득한 계절에 마침내 이루어졌다. 넉넉한 미소를 가진 경기도 부모교육 전문강사 홍민희(36. 동서의원 과장)씨를 병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홍 강사는 1997년부터 경기도가 개발한 ‘부모교육’ 프로그램 강사로 지역 여성들에게 활기찬 강의를 하고 있으며, 남편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일반인들과 상담도 하고 있다.

부모교육에서는 성교육 뿐만 아니라 여성의 역할과 위치, 가정과 사회 내에서의 여성문제도 함께 짚어준다. 특히 홍 강사는 여러 지역 부모교육 시간을 일반 어머니들과 여성들의 허심탄회한 대화 창구로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고 고민을 나누다 보니 도리어 많은 부분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누구나 좋은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좋은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가족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끊임없이 대화를 하세요. 여성들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감을 가지세요. 능력이 주어지면 사회에 나가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껏 일을 하십시오. 어렵지만 우리 자신의 의지에 달렸습니다”라고 홍 강사는 힘주어 말하다.

‘기지촌’ 편견에 시달리는 동두천 부모들

홍 강사는 간호학과 1학년 시절, 나환자를 돕는 서클에서 의대 본과 3학년생인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두 사람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과 봉사정신을 공통 분모로 4년 열애 후 결혼했다. 지금은 팔순의 시어머님과 슬하에 형제를 두었다.

원자력 병원에서의 3년간의 간호사 생활을 접은 홍 강사는 신학대학을 가려다 의사가 되어 세계의 무의촌을 다니며 의료봉사와 함께 복음을 펼치겠다는 신앙심을 가졌던 남편과 함께 일하고 있다.

홍 강사는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 친구가 일생을 같이 하는 반려자라면 그보다 더 힘이 되고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이라고 말했다. 아무런 연고도, 부모님의 도움도 없이 시작한 의정부 변두리의 작은 병원은 수익성을 기대하긴 힘든 곳이다.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이나 생활이 어려운 이들이 대부분이라 직접 왕진을 가야 하는 일도 많았다.

부모교육을 처음 시작하게 된 동기는 환자로 알게 된 전 의정부시청 여성복지과장의 권유로 의정부시 여성단체협의회에 가입하게 되면서부터이다. 5년간의 여성단체협의회 총무 및 운영위원 활동에 익숙해질 무렵, 환자들이나 여성단체 회원들로부터 남편의 폭력이나 자녀들의 성 문제 등 차마 꺼내기 힘든 고민을 듣게 되었다.

“경기북부 지역 특성상 미군 부대의 영향으로 인하여 상징적인 기지촌이 되어 버린 이 지역에서 딸을 둔 부모들의 고초는 여중고생이 되기 전에 서울로 학교를 보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하죠.”

홍 강사는 외부에서 바라보는 왜곡과 편견에 의해 이중고를 겪어가며 아픈 마음으로 자녀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 부모들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안타까웠다고 전한다. 그는 성교육과 부모역할 강의를 통해 기지촌으로 인식되는 부분을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특히 경기북부 여성들과의 만남을 통해 미군들에 의한 매춘이 상당 부분 허용되는 현실을 보면서 국가가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도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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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교육 수강생들의 수료식 모습.

‘뜨는 여성’ 뒤엔 가족이 든든한 후원자

“국내에서는 매매춘을 법으로 금지하고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고 있지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매매춘은 오히려 정책적으로 장려하는 이분화된 정책을 펴고 있는 모순된 상황이 더 문제입니다.”

따라서 홍 강사는 결국 매춘의 문제는 여성에게 있다는 왜곡된 시각을 가진 정책결정자들이 보다 적극적이고 여성중심적으로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5, 6년전 강의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그저 우리의 딸들이 순결을 지키는 데 필요한 교육이 강의 내용의 전부였다면, 남녀평등 교육과 정체성 교육의 필요성, 특히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하고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도록 하는 것이 시간이 갈수록 더 큰 과제라는 생각이 들어 부모교육에 더 초점을 두고 강의하고 있습니다.”

부모교육 강사로 활동하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보람도 많이 느꼈다.

“부모교육을 받기 전 시어머니와의 신앙 갈등과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집을 뛰쳐나와 자살을 기도했던 한 주부가 있었어요. 이 주부는 친구 권유로 경기도 부모교육 프로그램을 소개받고 대화법 수강과 성격검사 등을 통해 자녀와 남편, 시어머니와의 골 깊은 갈등을 극복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그런 때 강사가 된 보람을 진정으로 느끼죠.”

이때쯤 홍 강사는 성 역할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이 뿌리 박혀 있는 사회상황에서 자신의 여성의식이 빈약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털어 놓는다.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은 바로 그 이유에서였다. 신문광고를 오려 들고 온 남편의 권유에 힘을 얻기도 했다. 의식 있는 아내를 둔 것을 내심 자랑스러워하는 남편과 매일매일 신문사설을 스크랩해 주시는 시어머니, 리포트 작성을 도와주는 아들이 있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오히려 두 아이들의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홍 강사는 가족 자랑도 빠뜨리지 않는다.

남편과 함께 일하는 동서의원은 모자가정 무료상담 병원으로부터 시작하여 경기북부 가정폭력, 성폭력 상담 및 진단 병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은 사회적 이슈가 된 외국인 불법 체류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과 상해를 입은 외국인 근로자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서울대학교 보건의료 최고관리자 과정을 남편과 함께 마치기도 했다.

이때 함께 과정을 마친 원우들과 사단법인 한국의료정보연구원을 만들어 매월 함께 외국인 노동자 무료 진료(양·한방진료, 혈액 및 기타 검사, 치과)를 하고 있기도 하다.

모자가정 무료 상담부터 성폭력 진단까지

홍 강사는 또 미혼모 쉼터인 애란원을 후원하고 있다.

“한때 성교육 강사로서의 책임감과 심화 과정으로 우연히 방문하게 된 애란원에서 이들을 위해 할 일이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인데, 점심 나들이를 후원하고 있습니다”라며 애써 밝히기 부끄러워한다.

홍 강사는 성교육과 부모자녀 교육 등으로 받은 강사료의 일부를 떼어 매달 어린 미혼모들을 후원하고 있으며 심리적인 안정감도 주고 문화적인 혜택을 누리게 해주고 싶은 바램으로 애란원을 찾는다고 한다.

“미혼모들과 외출하여 외식도 하고 연극이나 영화를 함께 보기도 하죠. 때로는 태어날 2세를 위한 휴식을 취하면서 호수공원을 묵묵히 거닐기도 합니다. 이런 시간을 보낸 지 벌써 3년이 되어 가네요. 이런 문화적 혜택 덕분에 지난번 윤석화씨의 연극공연 관람에서 만난 윤석화씨도 공연비 일부를 미혼모들을 위해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조금만 이웃에 눈을 돌리더라도 그것이 곧 사랑과 관심이 된다. 홍 강사는 애란원 미혼모들이 아기를 떠나 보내면서 쓴 눈물 어린 편지글들을 모은 책 한 권을 내보였다.

홍 강사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이 책이 이 땅에선 출간하기 어려워 머나먼 이국 땅에서 영어로 번역되었다는 것이다. 홍 강사는 “미혼모들의 연령층이 14∼15세로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이제는 이 땅의 모든 여성들이 가정과 사회에 더욱더 관심을 갖고 동참해 여성문제가 좀더 빨리 해결되기를 기대합니다”라면서 “봉사는 결국 자신을 위한 삶입니다. 후에 자신에게 돌아오는 기쁨과 보람이 더 크니까요”라는 말로 인터뷰를 맺었다.

<동두천 이복형 지사장>

홍민희씨 약력

1993년 경기도내 초중고 학부모 및 학생 성교육 강의

1996년 성교육/가정 간호 주부 대학생 강의

1998∼99년 경기도 여성 정책실 부모교육 1기 강사, 한국심리검사연구소 (KPTI) 일반강사, 직장내 성희롱 예방 강의, 주부 및 청소년을 위한 부모교육/성교육 강연/성폭력 상담원 교육

2000년 여성지도자를 위한 자신감 향상 프로그램

2001년 여성지도자의 자질 향상을 위한 의사소통기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공중정책(여성정책) 정책과학대학원 석사과정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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