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연예술진흥협회의 심의를 받지 않은 비디오를 판매,배포 및
상영 등을 금지한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이하 음비법)
은 외견상 ‘상식적인’ 규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심의필증을 첨부
하고 공연신고를 얻어야 하는 내용의 음비법은 독립영화제작자들에
게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일 뿐 아니라 이들이 제작한 영화상영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요소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독립영화 상영회’가 열린 12월 13일부터 16일까지 민예총 문예아
카데미 대강당에서 상영됐던 <변방에서 중심으로>(이하 변방, 감독
홍형숙 서울영상집단 대표)는 음비법의 대표적인 희생양이다. 아직
심의를 거치지 않은 이 작품은 지난 12월 11일 시사회를 하는 데만
도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변방> 속에 나오는 97인디포럼 영화제 저지, 김동원 감독(푸른영
상 대표)구속, 인권영화제 탄압 장면은 독립영화가 처한 현실을 그
대로 반영하고 있다. ‘영화-때로는 전사가 되어야 한다’, ‘희망-
충돌의 끝에서 다시 시작이다’ 등 5개 소주제로 구성된 <변방>은
시대상을 대표하는 작품들과 영화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80년대
초반 대학내 소규모 동아리활동에서 비롯된 한국독립영화가 9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탄압을 모면하지 못하는 상황을 솔직하게 토로하
고 있다.
<변방>은 흔히 딱딱하고 무겁게만 여겨지는 독립영화에 대한 편견
을 깨는 “의외로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평도 듣고 있다. 서울영상
집단은 1년 반에 걸쳐 무려 1백70여 시간분의 필름에 담긴 이 작품
을 기획, 제작하는 과정에서 수집한 자료와 경험을 모아 <변방에서
중심으로>(서울영상집단 엮음/시각과 언어 펴냄/1만5천원)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한편 <변방>에 출연한 송능한, 김홍준, 박광수 감독은 80년대 대학
영화패 출신으로 각각 <넘버3>,<장미빛 인생>,<아버지>등으로 대
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변방>과 함께 상영된 10여편의 한국독립영
화 대표작들은 ▲올림픽을 앞두고 강제철거된 상계동 주민들의 투쟁
을 다룬 <상계동올림픽>(감독 김동원), ▲전경출신 복학생의 의식의
흐름을 잘 나타낸 <그날이 오면>(감독 장동홍), ▲농촌문제를 다룬
<파랑새>(감독 홍기선) 등 대부분 제작과 상영에서 압수수색과 감
독 구속 등 탄압을 겪었던 작품들이다.
이밖에 <접속>의 장윤현 감독이 1987년 만든 <인재를 위하여>와
<그섬에 가고 싶다>의 박광수 감독이 1982년 제작한 <장님의 거리
>도 포함돼 충무로 진입에 성공한 감독들의 과거 모습도 일별할 수
있어 눈길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