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직장 성희롱 처벌 강화됐으나

노동부 관리 소홀하면 실효 없어

지난해 직장 내 성희롱 진정

552건 중 기소는 단 1건

근로감독관 전문성 강화하고

5% 미만 노조 조직률 높여야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에 ‘직장 내 성희롱’을 포함을 하고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등 법 개정과 대책이 발표됐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법이 있었음에도 정부와 사법기관이 법 집행에 소홀했다는 문제와, 이번 대책 역시 허점을 포함하고 있다는 한계, 무엇보다 법 이전에 근본적인 변화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성계는 오랫동안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을 요구해온 만큼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한 이번 법 개정에 일단 환영하고 있다. 1999년 직장 내성희롱 조항이 신설된 이후 여러 문제점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개정안 통과는 뒤늦은 감이 있지만, 직장 내 성희롱이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회사의 공식적인 책임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의무를 강화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다”고 밝혔다. 주부무처인 고용노동부의 역할도 강조했다. 단체는 “법 개정으로 사업주의 의무가 강화된다 하더라도 고용노동부의 처리가 소홀하다면, 그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법을 제대로 집행할 수 있도록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성희롱 진정 건수 552건 중 실제 기소된 건수는 단 1건에 불과했고, 불기소 26건, 과태료 66건, 행정종결이 453건이었다. 직장 내 관계라는 특성으로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협소한 판단으로 인해, 어렵게 용기내어 진정을 해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호소도 다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고용노동부가 그동안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채 피해자를 방치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건이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사건이다. 르노삼성자동차 사건은 2013년 당시 성희롱 피해자에게 임원의 조직적 따돌림, 인사팀 직원에 의한 악성소문 유포, 낮은 인사고과 부여, 업무배제, 징계, 직무정지·대기발령, 정당한 법적 구제 행위의 방해 등 사측이 고용 상 불리한 조치를 종합적으로 가하면서 시작됐다.

피해자와 공동대책위원회가 사측이 남녀고용평등법의 불리한 조치 금지 조항을 위반했기 때문에 수사 권한이 있는 고용노동부에 고소했지만 사건은 4년째 처리되지 않고 있다. 최종 기소결정권을 갖고 있는 검찰과 수사 책임이 있는 고용노동부가 함께 시간을 끌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고용노동부와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문제를 지적했으며 문무일 검찰총장은 사실 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답변했다. 내년 상반기에 공소시효도 만료되기 때문에 해결이 시급하다.

공동대책위원회를 맡고 있는 이종희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법 개정을 통해 비밀을 피해근로자 등의 의사에 반하여 다른 사람에게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신설한 규정과 불이익 조치 구체화도 의미있지만, 그동안 처리가 잘 안되는 게 법률의 미비 문제 보다 적극적 처리 의사가 노동부와 검찰에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하며 “법이 실효성있게 작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의 기소율을 높이고, 르노삼성자동차 사건 처리 과정에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만 전문성이 부족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문제도 있다.

이용득 의원이 발의한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 작성에 참여했던 서울여성노동자회 황현숙 부회장에 따르면 근로감독관이 직장 내 성폭력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노동자회의 상담 사례 중 한 피해자의 경우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진정서를 제출한 후 다시 방문했더니, 근로감독관이 회사측에서 가해자를 대기발령하겠다는 말을 듣고는 사건 조사는 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취하서를 쓰라고 권유한 일도 있었다.

황 부회장은 “근로감독관이 성폭력 문제에 대한 이해와 성인지적 관점이 없기 때문에 피해자에 대한 고려 없이 회사의 입장에서 일을 처리했다”면서 “고용노동부는 연간 2만여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모든 근로감독에 직장 내 성희롱 분야를 포함시키겠다고 했지만 정작 일을 하는 근로감독관이 성폭력 문제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성인지적 관점에서 모성권과 성희롱을 담당할 수 있는 전문적인 감독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법 개정 이전에 성희롱 대응과 예방을 위해 노동조합 구성을 대안으로 검토할 만하다. 이번에 한샘 사건은 피해자 개인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용기를 내 문제를 알렸다. 반면 최근 문제가 된 전북대병원의 경우 의사가 인턴에게는 폭력을 가했지만, 간호사는 대학병원 노조에 가입돼 있어 욕설조차 함부로 듣지 않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한샘은 노조가 없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비교가 되는 대목이다.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은 “여성단체에 상담 오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내담자들 대부분 노조가 없는 사업장이거나 비조합원들이고, 그나마 노조가 있거나 노조가 관련 대응력을 키운 곳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라면서 “한샘에도 노조가 있었다면 피해자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노조 효과가 정규직 보다는 비정규직, 남성 보다는 여성에게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여성의 노조 조직률은 5%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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