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채용 요소에

‘성별’은 포함되지 않아

차별 대신 ‘우대’요소로

삼겠다는 고용노동부

여성들이 원하는 건

우대이전에 차별 시정 아닐까?

 

 

 블라인드 채용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필요성을 인정하는 입장이든 반대하는 입장이든 주장이 만만치 않다. 필자의 입장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기대는 이 제도가 ‘통계적 차별’, 특정 집단에 대한 선입견으로 집단 구성원들이 지닌 개별적 특징과 차이를 인지할 수 없는 상태가 낳는 차별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예컨대 지방대학 출신의 능력 있는 지원자가 학벌이라는 선입견에 밀려 입사 시험에서 탈락할 경우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우려는 이 제도가 여성에게 가져올 효과에 관한 것이다. ‘블라인드’라고 하지만 무엇을 블라인드할지, 무엇이 블라인드 될 수 있을지를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성별’은 과연 한국의 입사 시험에서 ‘블라인드’ 될 수 있을까? 내 생각은 회의적인 편이다. 사진을 넣지 않은 이력서까지는 가능하겠지만 당장 주민등록번호만 봐도 성별은 드러난다. 그것뿐인가? 요즘 취업에서 그 중요성이 더해 간다는 ‘자기소개서’만 해도 꼼꼼히 읽으면 성별 구분이 불가능하지 않다. 성장과정이나 학업과정, 이력에 대한 소개에서 군대나 학교생활, 선후배관계 등은 빠질 수 없는 요소이며 그런 스토리텔링 속에서 주인공의 성별을 판단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고용노동부가 블라인드 채용의 요소로 성별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지난 7월 고용노동부는 총 332개 공공기관 채용에서 학연, 지연, 혈연, 외모를 차별 요소로 지정하고 이에 관한 자료를 요구하지 않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별을 포함하지 않는 이유가 필자의 우려와는 다르다. 성별은 ‘학연이나 지연, 혈연, 외모 등’과 같은 차별 요소로 볼 수 없으며, 굳이 포함한다면 ‘등(等)’에 넣을 수 있으리라는 주장이다. ‘성별’이 ‘학연’이나 ‘지연’ 심지어 ‘외모’보다도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독자들께서는 얼마나 동의하실지 모르겠다. 필자의 생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성별처럼 설명이 필요 없는, 인간 집단을 구분하는 명확한 경계가 또 어디 있을까? (물론 신체적 차이가 성별의 궁극적인 판단 기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통속적인 수준에서 외양으로 쉽게 판단되는 범주가 성별이라는 것이다.)

지원자가 남성 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입사의 관문을 통과했거나 탈락했다는 의심을 할 만한 사례를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다. 때문에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의 청원게시판에는 입사 시험에서 번번이 나가떨어지는 20대 딸을 보고 취업시장의 성차별을 막아달라는 어머니의 호소가 지지를 얻기도 했다(“취준생 딸을 둔 엄마가 대통령님께 청년 취업 관련 청원 드립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서일까? 고용노동부는 성별을 차별보다는 ‘우대’요소로 처리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취업시 여성을 ‘우대’하는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바로 이것이 문제다. 그동안 정부는 여성정책을 ‘차별 시정’보다 ‘우대’라는 이름으로 불러왔다. 물론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도 의문이지만, 여성들이 원하는 건 우대이전에 차별 시정이 아닐까? 특별히 뭘 더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가족과 일터, 미디어와 지역사회에서, 정치와 경제, 문화의 영역에서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오랫동안 누적되어 왔고 지금도 일어나는,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철폐해가야 한다는 것이 여성들의 주장이다. 공정하고 평등하게 가자는, 당연하고 소박한 요구다. 남성들의 역차별 주장과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이 바로 이런 ‘우대’란 이름의 허울 좋은 정책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된 것은 아닌지?

취업의 계절이다. 고용정책에 관련한 모든 책임과 권한을 가진 고용노동부는 대체 언제쯤 젠더 문제를 제대로 보려고 할지? 성주류화 없이는 안 될 것이다. 성평등위원회의 조속한 구성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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