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창간29주년 기념 좌담 - 페미니스트들 간 ‘접속과 연대’를 말하다

 

(왼쪽부터) 여성신문이 지난 18일 연 창간 29주년 기념 좌담회에 참석한 김지영 전국디바협회 대표, 조박선영 ‘이프북스’ 편집장, 이지원 페미몬스터즈 활동가, 심미섭 페미당당 활동가, 서랑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 전현경 아름다운재단 변화사업국 연구교육팀 간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왼쪽부터) 여성신문이 지난 18일 연 창간 29주년 기념 좌담회에 참석한 김지영 전국디바협회 대표, 조박선영 ‘이프북스’ 편집장, 이지원 페미몬스터즈 활동가, 심미섭 페미당당 활동가, 서랑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 전현경 아름다운재단 변화사업국 연구교육팀 간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 2000년대 중반부터 약 10년간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했던 페미니즘이 다시 돌아왔다. 2015년을 전후로 새로운 여성 주체들이 ‘페미니즘 붐’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여러분은 이 흐름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하다. 페미니즘 운동에 뛰어든 계기부터 이야기해보자. 

전현경(이하 전) : 영페미니스트 세대부터 얘기해 볼까. 1990년대부터 여성, 환경 문제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대두되면서 정치의 개념이 확대됐고, 운동의 개념도 달라졌다. 서태지가 등장했고, 사람들은 돌을 던지는 것만이 싸움이 아니며, 문화적인 선언도 운동이 될 수 있음을 배웠다. 

가장 강렬한 기억은 1996년 ‘고대생들의 이대 축제 난입 폭행 사건’이다. 행사 기획자로서 무대 뒤에서 상황을 지켜봤다. 피눈물이 났다. 다친 학생들을 옮기는데 뒤에선 애들이 밟히고 있고, (남성들이) 무대에 올라가 부수고.... 여자들이 구박받는다고는 생각했지만, 한 대학의 전통 있는 줄다리기 행사에 단체로 몰려와서 술 먹고 난동을 부릴 수 있다니, 배웠다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는 게 너무 놀랍고 무서웠다. PC통신 게시판에선 익명을 빌어 “있을 수 있는 일” “장난이다” “(이대생들이) 연대생들과는 자면서 고대생들에겐 다리를 벌리지 않았다” 등 적나라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지금 페미니즘 이슈가 사회랑 부딪히며 겪는 모든 문제가 두어 달 사이 압축적으로 터져 나왔다.

 

1996년 5월29일 저녁, 500여 명의 고려대 학생들이 이화여대 대동제 폐막제 행사장에 난입해 기차놀이를 했다. 이들을 제지하는 와중에 한 이대생이 오른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MBC뉴스데스크 화면 캡처
1996년 5월29일 저녁, 500여 명의 고려대 학생들이 이화여대 대동제 폐막제 행사장에 난입해 기차놀이를 했다. 이들을 제지하는 와중에 한 이대생이 오른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MBC뉴스데스크 화면 캡처

이 사건은 여성주의 활동을 하던 친구들이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됐다. ‘피어라 들꽃’이라는 클럽에서 얘기를 나누던 신촌 소재 대학 영 페미니스트들이 ‘들꽃모임’을 결성했다. 우리의 운동 방식은 기존 남성들의 방식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대생 이대 집단 성폭력 대책 여성위원회’ 같은 이름을 버렸다. 자발적이고 느슨한 개인들의 연대로서 운동하자는데 모두가 동의했다. 

김지영(이하 김) : 전국디바협회(전디협)이 바로 그런 조직이다. 저희 세대는 온라인을 통해 ‘동인문화’ 등 서브 컬처를 많이 즐기며 자라온 ‘덕후’ 세대다. ‘전국OO협회’라는 인터넷 유행어를 차용해 모임 이름을 지었고, ‘디바’라는 캐릭터와 트위터라는 매체를 적극 활용했다. 그런 게 같은 세대 ‘덕후’들의 마음을 자극했기에 여러 사람들이 온라인을 타고 모이게 됐다. 

조박선영(이하 조박) : 전디협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가수들인가 했다(웃음). 게임계에 페미니즘이 꼭 필요하다. 여성 관점으로 게임을 바라보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등은 ‘프린세스 메이커’에서 딸을 장군으로 키우기가 얼마나 힘들며, 막 등장하던 여성 프로게이머들이 ‘꽃’ 취급 받는 게 왜 문제인지 등을 꾸준히 논했다. 여성 게이머는 ‘실력보다 외모’였지만, 실력이 나쁘면 바로 잘렸다. 여자들에겐 남자들처럼 기회가 많지 않았다. 

고대생들 이대 난입사건부터 강남역 시위까지

한국 사회 여성혐오·강간문화 드러내는 사건 반복

이에 맞선 자발적이고 느슨한 개인들의 연대

 

 

2004년 제1회 이프 안티미스코리아 시상식 모습. ⓒ‘이프’ 사무국
2004년 제1회 이프 안티미스코리아 시상식 모습. ⓒ‘이프’ 사무국

저는 2000년 이프에 합류했다. 여성들이 힘을 합쳐 ‘안티 미스코리아대회’라는 큰 행사를 치르고, 결국 미스코리아대회 생중계 폐지를 이끈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을 다루면서 ‘여성에게 밤거리를 허하라’ 행사, 여성혐오 사례 특집도 만들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여성혐오’가 사회적으로 부각되지 않았지만, 연쇄살인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이었고 유영철도 ‘여자들 조심하라’는 식으로 말했으니까. 그런데 곧이어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터졌다. 부들부들 떨며 기사를 썼다. 상황이 점점 나빠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도 그런 흐름이 반복되는 듯하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소식을 접하면서 눈물이 났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직후인 지난해 5월 20일, 서울 강남역 10번출구 앞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수많은 포스트잇을 바라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직후인 지난해 5월 20일, 서울 강남역 10번출구 앞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수많은 포스트잇을 바라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지원(이하 이) : 저는 강남역 사건 후 페미니즘을 공부하던 친구들과 함께 ‘강남역 10번출구’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다. ‘함께 피해자를 추모하자’는 글을 계기로 실제 추모 자리가 마련됐다. 그날 사회를 봐 달라길래 갔는데, 참가자들의 자유발언을 듣고 나니 그냥 갈 수가 없더라. 매일 자유발언대를 열었다. 여성들이 처음엔 피해자를 추모하며 울다가 여성혐오에 대한 분노를 말하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여러 시위와 발언대를 열게 됐고, 활동 멤버가 고정되며 페미니스트 단체 ‘강남역 10번출구’가 탄생했다. ‘이제 끝내자’고 얘기할 수 없더라. 이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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