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묵인해 온 영화계 관행에 경종” 

여배우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남배우 A씨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가운데 여성단체들이 일제히 항소심 유죄 판결을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13일 서울고법 형사8부는 영화 촬영 도중 상대방을 강제 추행한 남배우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의 유죄로 판결했다. 또한 집행유예 2년,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주문했다.

여성영화인모임 등 6개 단체는 이날 논평을 내고 “이번 판결은 지난 1심의 무죄선고를 뒤집는 결과로서 성행위 또는 성폭력과 관련한 연기에 있어 사전합의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판결이라 할 수 있다”며 “특히 이번 판결은 해당 연기가 극중 피해자 역할의 여배우와 합의되지 않았다면 이는 가상의 연기가 아니라 실제 성폭력이 될 수 있음을 명확히 하는 첫 번째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그동안 연기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성폭력은 그 경계의 모호함과 현장의 특수성이라는 미명 아래 묵인되거나 방조됐다. 이 과정에서 여성배우의 인권과 배우로서의 자부심은 짓밟혔다”며 “이번 항소심 유죄 판결은 ‘연기에 몰입한 것’과 ‘연기를 빙자한 성폭력’은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는 그동안 예술분야나 영화계에서 발생해왔던 성폭력, 성폭력을 묵인해 온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A씨는 지난 2015년 4월 영화 촬영 도중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배우의 속옷을 찢고 바지에 손을 넣어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성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이 사건으로 여배우는 전치 2주의 찰과상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 여배우는 A씨를 강제추행치사 혐의로 신고했고 검찰은 A씨를 기소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성추행 삭너 1심 재판에서 검찰은 A씨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피의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재판부는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A씨에게 양형을 내렸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촬영 후 피해자 바지의 버클이 풀려있었고, 현장에서 피고인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피고인 역시 피해자의 사과 요구에 대해 적극 부인하지 않았다”며 “이러한 반응에 비추어보면 피해자의 진술이 거짓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의 바지에 손을 넣는 것은 감독의 지시 사항에도 없던 일이고 촬영도 얼굴 위주로 이뤄져 정당한 촬영으로 이뤄진 행위라 보기 어렵다. 피해자는 감독의 지시사항을 몰랐기에 합의된 사항도 아니다”며 “여러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계획적, 의도적으로 촬영에 임했다기보다 순간적, 우발적으로 흥분해서 사건이 일어났다고 보인다. 그러나 추행의 고의가 부정되진 않는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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