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원고에는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중 ‘은희’(김설현 분) ⓒ쇼박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중 ‘은희’(김설현 분) ⓒ쇼박스

유명한 소설을 영화화하는 데에는 당연히 여러 가지 고려 사항이 필요하다. 원신연 감독의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이 김영하 작가의 동명 소설보다 더 ‘상업적’이고 ‘안전’하며 ‘무난한’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에 비판의 초점을 맞출 생각은 없다. 상업영화에는 상업영화의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며, 김영하 작가의 소설을 그대로 옮겨왔다면 아마도 관객들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게 느껴졌을 공산이 크다. 다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김설현이 연기한 은희라는 캐릭터에 신경이 쓰였다. 

원작 소설에서 은희는 자신이 병수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어릴 때 사망한 친부모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주지 않는 병수에 대해 원망 비슷한 감정을 품고 있다. 병수가 자신의 부모를 죽였다는 사실까지는 모르는 채로, 은희는 ‘자신을 키워준 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며 늙은 아버지와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젊은 여성이다. 은희와의 거리감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병수는, 그러나 은희가 주태와 가까워지자 돌연 자신이 은희를 지켜야 한다는 결심을 한다. 주태가 연쇄살인범이라고 확신하는 병수는, 은희 역시 그의 희생자가 되기 전에 주태를 자기 손으로 처단하고자 한다. 연쇄살인범(이었던) 병수가 연쇄살인범(일지 모르는) 주태를 좇는다. 살인범과 탐정이 같은 사람이다. 

독자는 소설 속 병수의 장광설을 의심하면서도 그의 일인칭 시점으로만 강제된 조건 때문에 별수 없이 알츠하이머가 악화되어가는 병수의 혼잣말에 압도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이 영화화될 때는, 각색에서 또 다른 선택이 요구된다. 관객들이 병수에게 감정 이입하기 위하여(소설에서는 계속 거리 두기가 시도되지만), 그는 ‘나쁜 놈’이지만 어느 정도는 동정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 병수는 아내의 외도에 따른 고백을 통해, 은희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한 부성애를 보인다. 은희 역시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를 요양원에 맡기지 않겠노라며 아버지를 어린아이처럼 돌본다. 여기에 태주(소설 속 인물의 이름이 영화에서 달라졌다)가 등장하여 은희와 사랑에 빠지고, 병수는 딸에게 아무 말하지 않은 채 매우 의심스러운 태주를 추적한다. 은희는 태주가 좋은 사람이라고 두둔하지만, 아버지는 “넌 아무것도 몰라!”라며 딸에게 철저히 정보를 차단한다. 태주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을 밝히려면 그 근거로는 자신의 ‘직감’을 들 수밖에 없는데, 그 직감이 과거 연쇄살인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은희는 이런 상황에서 영문도 모르고 “아빠!”라는 외침만 다양한 톤으로 되풀이할 뿐이다. 영화 속 그녀에게 주어지는 정보도, 대사도 그리 많지 않다. 

여기서 만약 은희의 입장에 감정 이입한다면 이보다 더 끔찍한 악몽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와 애인 모두가 연쇄살인범인 상황,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고 좋아하던 두 사람이 모두 끔찍한 범죄자라는 상황. 은희는 둘 중 누구를 선택한들 죽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혹시, 영화에서 은희에게 정보를 좀 더 제공하고, 그녀 역시 남몰래 아버지와 애인을 뒤쫓는 탐정 역할을 수행했다면 어땠을까? 살인범도 두 명, 탐정도 두 명인 상황 말이다. 병수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태주를 믿지 못하는 것처럼, 은희 역시 아버지와 애인을 믿지 못하면서 동시에 믿고 싶어 하는 상황. 

이 영화가 스릴러라는 장르를 취했을 때 진범이 과연 누구인지, 병수는 제시간에 은희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지, 병수와 태주의 최후는 어떻게 끝날 것인지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관객들 역시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숨을 멈추고 지켜볼 수 있어야 했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그 부분에서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고, 주된 희생자들인 여성에 대한 태도 역시 공정하지 못하다(태주의 대사 “여자들이 문제야”가 등장할 땐 약간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고, 병수가 잠자는 은희를 침대에서 끌어내기 위해 이불을 확 들치자 속옷에 가까운 잠옷을 입은 은희의 모습이 등장하는 순간 굉장한 불안감을 느꼈다). 만일 그 와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성인 은희가 두 연쇄 살인범을 나름대로 뒤쫓을 수 있는-곧 희생당하고 말 것이라는 불안만을 관객에게 심어주는 역할이 아니라-역할을 수행했더라면, 좀 더 두근거리는 스릴을 안겨줄 수 있지 않았을까.

원작에서의 병수의 1인칭 내레이션을 많은 부분 덜어냈다 하더라도, 여전히 영화는 피 냄새에 굶주린 남자(들)의 강박에만 집중한다. 원작에서의 다소 냉랭하고 건조한 은희는 영화에서 가장 많이 바뀐 캐릭터지만, 울고 안타까워하고 겁에 질리는 것 말고는 그 어떤 고뇌도 보여주지 않는다. ‘살인자의 기억’ 속에는 ‘은희는 내 (착한) 딸’이라는 사실 말고는, 은희에 대해 어떤 정보도 남겨져 있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은희는 정말 누구였을까. 병수의 딸, 태주의 애인, 그리고 ‘잠재적인’ 희생자, 지켜주어야만 하는 착한 여자라는 것 말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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