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 휩쓴 ‘페미니즘 리부트’… 현상에서 문화로
한국소설 휩쓴 ‘페미니즘 리부트’… 현상에서 문화로
  • 강푸름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7.10.10 09:16
  • 수정 2017-10-14 0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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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기조 지속가능하려면

한국문학계 체질 개선해야

여성작가 목소리 낼 수 있는 기반 닦고

출판계 내 결정권자들 인식 바꿔야

 

한국사회를 강타한 ‘페미니즘 리부트’ 바람이 문학계에도 거세다. 최근 쏟아지는 소설들은 너도나도 페미니즘을 키워드 삼아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페미니즘 소설의 신호탄을 알린 작품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다.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30대 기혼여성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김지영’은 소설 분야에서 현재까지 1위(10월 1~7일 교보문고 집계기준)를 기록하며 여전히 가장 ‘핫한’ 작품이다. ‘김지영’을 필두로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페미니즘 도서는 한국 문학계의 한 장을 차지해가고 있다.

현재 페미니즘은 소위 ‘잘 팔리는’ 콘텐츠다. 그를 방증하듯 출판계에서도 페미니즘 도서가 쏟아지고 있고, 베스트셀러 상위권에도 페미니즘 소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인기가 지속가능하려면 한국문학이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짝’ 인기에 편승한 뒤 거품이 빠지면 손 털고 나가는 구조에서 벗어나 출판계 내 페미니즘 기조가 유지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8월 발간한 강화길 작가의 장편소설 『다른 사람』은 데이트폭력과 여성혐오, 뉴페미니즘, 여성이 겪는 부조리와 공포·불안 등을 다뤘다. 주인공 진아는 회사 상사이자 남자친구로부터 폭행을 당해 그를 고소하지만 가해자는 겨우 벌금 300만원 선고에 그친다. 이후 그의 협박이 계속되고 진아는 인터넷 게시판에 자신의 이야기를 올려 사건을 공론화하고자 하지만, 직장 동료의 반격글로 진아는 오히려 ‘맞아도 싼 X’이 된다. 자신에 대한 댓글을 살펴보다 ‘김진아는 거짓말쟁이. 진공청소기 같은 X’이라는 글을 발견한 진아는 12년 전 기억을 끄집어내며 죽은 친구 유리를 회상한다. 소설은 댓글을 쓴 당사자를 찾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 진아와 그의 친구인 수진, 유리, 현규, 동희 등 네 명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각자의 입장에서 풀어나간다.

한겨레문학상의 22번째 수상작인 이 작품은 ‘최근 급부상하는 영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구체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강 작가는 2012년 등단해 여성문제를 다룬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으며, 『괜찮은 사람』 등을 통해 여성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노골적이면서도 은밀한 폭력 등을 이야기해왔다. ‘문예중앙’ 봄호에서는 김승옥의 단편소설 ‘건’과 ‘염소는 힘이 세다’ 등에 나타나는 여성혐오를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박민정 작가의 『아내들의 학교』는 여성혐오 사례를 소설 속으로 가져와 여성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제7회 문지문학상 수상작인 「행복의 과학」을 포함해 7편의 중단편소설을 담았다. 살인사건을 비롯해 불법촬영 문제 등 여성을 향한 각종 폭력을 이야기하는 소설집이다.

동성 간의 결혼이 합법화된 가상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아내들의 학교』는 동성애를 향한 사회의 배타적인 시선을 넘어 더 깊은 문제를 다룬다. 『행복의 과학』은 아버지의 첩이 한국여자란 사실에 분노해 서울의 공단 여공을 죽인 이야기를 그려 여성혐오와 민족 문제가 결탁하는 양상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A코에게 보낸 유서』는 그 사건을 여공의 시선에서 그렸다.

지난해 글을 통해 한국문단의 여성혐오를 고발한 김현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이 소설은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무서운 소설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상황을 알려주는 소설이며, 어떤 이들에게는 생전 한 번도 보지 못한 시선으로 앞장서 싸우려는 소설”이라고 평했다. 

 

제목부터 강렬한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는 에이미 스튜어트의 장편소설이다. 20세기 초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보안관보들 중 한 명인 콘스턴스 콥을 주인공으로 했다. 콘스턴스 콥은 180cm가 넘는 건장한 체격에 남자를 완력으로 제압할 만큼 힘이 셌으며, 불의에 맞서는 영웅의 면모를 갖춘 인물이다. 8부작으로 예정돼있는 ‘콥 자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이 소설은 역사 속에 숨겨져 있던 여성 영웅을 발굴해내 그의 이야기를 담았다. 

1914년 7월 콘스턴스와 노마, 플러렛 콥 자매는 마차를 타고 가다 범법을 일삼는 비단염색 회사 소유주인 헨리 코프먼의 자동차와 충돌한다. 그 후 자매들이 코프먼으로부터 받는 각종 위협과 수사 및 재판 과정을 소설로 그렸다. 지역 유지인 코프먼의 편을 들며 검찰도 발을 빼는 상황에서 보안관 로버트 히스는 콘스턴스의 말에 유일하게 귀를 기울여준다. 그의 도움으로 자매들은 리볼버 쏘는 방법을 배우고, 콘스턴스와 히스는 수사 파트너를 이뤄 코프먼을 기소하고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끌어내기 위해 분투한다.

 

‘반짝’ 인기에 편승한 뒤 거품 빠지면 

손 털고 나가는 구조 벗어나 

페미니즘 지속가능한 환경 만들고

긴 호흡으로 여성 이야기 쓸 수 있는 필자 발굴해야

‘페미니즘 소설’의 약진은 충분히 가치를 논할만한 현상이다. 하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해선 한국문학계의 체질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권명아 문학평론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최근 출판사에서 페미니즘 소설을 강조해 홍보하다보니 여성 문학이나 작가가 힘이 세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출판계 내 여성 작가의 위치나 페미니즘 텍스트의 가치가 그만큼 올라갔는지 현실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페미니즘이 돈이 된다’는 트렌드가 형성되면서 출판계도 페미니즘 텍스트를 계속 내고 있다”면서 “하지만 페미니즘 문화생산물에 대한 대중의 욕구를 지속시키기 위한 노력은 기울이지 않고 있다. 붐이 형성됐을 때 재빨리 팔아버리려는 분위기가 여전히 강하다”고 진단했다. 

현재 한국에는 여성작가 개별 전집도 없는 실정이다. 1990년대에도 여성 작가가 대거 등장하면서 페미니즘 문학이 활기를 띄었지만 그 명맥을 잇지 못해 흐름이 끊긴 바 있다. 권 평론가는 “한국은 여성작가의 앤솔로지(선집·과거에 발표됐던 잡지나 책 등 명작 등을 모아 다시 수록한 작품집) 문학을 만들 생각을 안 한다”며 “지금처럼 다양한 세대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질 때 과거의 페미니즘 문학을 적극적으로 기획·소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좀 더 다양한 종류의 페미니즘 도서를 발굴해 소개하는 긴 호흡의 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의 한국 문학계를 위해 페미니즘 문학이 한국의 문화 자원이 될 수 있도록 기반을 닦아나가는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이어 그는 “현재 한국 출판계는 잘 팔릴만한 단행본을 파는 데 급급하다. 페미니즘 붐업 현상에 편승해 동어반복의 생산물들만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가다가는 수용자들도 이내 곧 시들해질 것”이라며 “한국의 문화시장은 뭐 하나 뜨면 단물 다 빼먹고 손 털고 나가는 식인데, 이제 이러한 구조를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존의 문화산업을 주도하는 주체들인 출판기획자, 문단 관료들, 잡지 발행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페미니즘 리부트 현상이 잠잠해질 경우 페미니즘 도서는 언제든 다시 쉽게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한민국 넷페미史』, 『페미니즘 리부트』 등 페미니즘 도서를 출간한 1인 출판사 나무연필의 임윤희 대표는 “페미니즘 소설이 강세를 보이는 건 고무적인 현상이다. 여성들이 자신의 삶에서 직접 겪는 문제들을 일상적인 언어로 이야기해주는 텍스트에 대한 관심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임 대표는 이러한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필자를 계속해서 개발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 세계적으로 보면 페미니즘 이슈는 30대 전후 세대에 포커싱이 맞춰져 있다. 한국에선 『82년생 김지영』이 대표적인 케이스가 될 것”이라며 “하지만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고,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필자를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2030 세대를 넘어) 40대 여성들이 살면서 부딪히는 것들, 가령 경력단절이나 건강 문제, 부모님 부양 등의 문제들을 다루는 책들이 많이 없다. 근데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젊은 친구들에게는 아직 ‘내 일’이 아니라 큰 반응을 기대하기 어렵고, 그 이야기를 누가 써야 할지 모르는 것도 문제”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그는 “단행본 한 권의 분량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을 계속해서 찾아내야 하고, 또 작가들이 여유를 갖고 그런 글을 쓸 수 있도록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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