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Flower Wishes to Fade’, 파울 클레
‘This Flower Wishes to Fade’, 파울 클레

거위를 따라갔던 밤 / 이원

(…)

손을 감싼 손은 참 컸지요

계절을 깜빡 잊어버리기 좋았지요

 

점점 밤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

유일한 기분

하나둘 벗어 던지는 기분

 

키 따위가 무슨 상관이야

손과 손은 어떻게든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 신기했지요

 

생각만 해도 가슴 뛰고 따스해지는 이들이 있는가. 지금은 무얼 할까 궁금해지는 사람이. 저마다 찬바람이 불고,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면 가슴 찡해져오는 이들이 있겠지. 이 가을에 은행잎만큼 환한 인사를 보내보면 어떨까. 나는 전시 초대장과 시집보내며 서먹해지고, 멀어진 지인들 몇 되찾았다. 전쟁과 경쟁 위협, 서러워지는 계절로부터 벗어난 큰 기쁨이었다.

나부터 먼저 미소 짓고, 친절하기. 먼저 정성을 다하기. 나 자신의 고독감을 잘 어루만지기. 그래야 거위를 만나고, 너구리를 만나면 천천히 친해지겠지. 이원 시인의 심플하고 조용히 매력적인 시를 읊으며 밤의 깊이 속으로 들어가면 좋겠지. 이 모든 힘든 일 따위쯤이야. 다 던져버리고 쉬어갈 수 있겠지.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틀거나, 이문세와 한동준의 노래를 틀면서 울어도 좋겠지. 김광석과 딸 서연이를 애도할 때 누가 안아줄 이 없으면 쿠션이라도 껴안으면 좀 따스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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