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 고전 ‘성 정치학’의 저자

케이트 밀레트 별세

사회 각 분야 속 가부장제와

성의 지배 분석 ‘여성 운동의 바이블’

미국 여성운동 ‘제2의 물결’ 열어

여성운동 이론적 토대 제공

 

케이트 밀레트의 젊은 시절(왼쪽)과 노년의 모습. ⓒkatemillett.com
케이트 밀레트의 젊은 시절(왼쪽)과 노년의 모습. ⓒkatemillett.com

‘성 정치학(Sexual Politics)’의 저자로 유명한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여성운동가 케이트 밀레트가 7일(현지시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2세.

밀레트가 1970년 발표한 ‘성 정치학’은 미국 여성운동의 ‘제2의 물결’을 연 작품으로 여겨진다. 원래 컬럼비아대 박사학위 논문으로 썼던 이 책에서 그는 철학과 종교, 의학, 과학, 가족의 개념에 이르기까지 사회 각 분야와 제도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가부장제를 파헤쳤다. 그는 “강압적인 정치권력을 포함한 모든 사회의 권력은 남성들의 손 안에 있다”며 ‘내부적 식민지화’라는 용어를 통해 여성들이 가부장제 가치와 규범을 받아들이면서 사회화되는 방식을 분석했다.

그는 또한 이 책에서 유명한 문학의 고전들 속에 담긴 가부장제를 비판하며 최초로 페미니즘 이론을 문학 연구에 적용했다. 헨리 밀러, 노먼 메일러, D.H. 로렌스, 장 주네 등 4명의 남성작가 작품을 대상으로 여성들이 정치적, 문화적으로 지배당하는 방식을 서술했다. 그는 “성의 지배는 우리 문화 구석구석에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고 있으며 권력의 근본적 관념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케이트 밀레트의 ‘성 정치학’ 최신판 표지. ⓒColumbia University Press
케이트 밀레트의 ‘성 정치학’ 최신판 표지. ⓒColumbia University Press

이처럼 급진적인 주장을 담은 ‘성 정치학’은 출간되자마자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으며 엄청난 반응을 얻었다. 출간 첫 해에만 8만 권리 팔렸고 이후에도 수없이 재판되는 등 역대 페미니즘 저서 중 가장 많이 읽힌 책으로 꼽히고 있다. 페미니즘 작가이자 비평가인 안드레아 드워킨은 “세계가 잠자고 있었는데 케이트 밀레트가 깨웠다”고 표현했고 뉴욕 타임스는 이 책을 ‘여성 운동의 바이블’이라 칭했으며 타임지는 밀레트를 ‘여성 운동의 마오쩌둥’이라 표현했다.

1934년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태어난 밀레트는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가 14세 때 가족을 버리고 떠난 후 교사와 보험판매원으로 일하며 세 딸을 뒷바라지 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친척의 도움으로 미네소타주립대 영문학과에 진학한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 세인트 힐다스 컬리지에 유학한 후 최우등으로 석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학업 성적을 보였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쳤으며 잠시 조각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1970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으며 학위 논문으로 발표한 첫 저서가 ‘성 정치학’이다.

밀레트는 일본인 조각가 요시무라 후미오와 결혼했지만 곧 이혼하고 자신이 양성애자이자 레즈비언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동성 연인인 사진기자 소피 키어와 말년까지 함께 했다. 1979년에는 키어와 함께 이란의 첫 번째 여성의 날 축하를 위해 방문했다가 체포되어 추방당하기도 했으며 이 때의 경험을 담은 ‘이란에 가다’(Going to Iran, 1981)를 발표했다. 이 외에도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불편했던 자신의 경험을 담은 ‘비행’(Flying, 1974), 조울증에 시달리며 정신 병원에 수 차례 입원하기도 했던 고통을 그려낸 ‘정신병원 여행’(The Loony-Bin Trip , 1990), 고문 사용에 반대하는 ‘잔혹한 정치’(The Politics of Cruelty, 1994),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인 ‘마더 밀렛’(Mother Millett, 2001) 등 꾸준히 저서를 출간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정신 병동 입원치료 반대 투쟁에 참여해 고향 미네소타주의 관련 법규 개정을 이끌어내기도 했으며 말년에는 뉴욕주 포킵시에 한 농장에 거주하며 여성 예술 공동체를 조직하고 여성만으로 구성된 팀과 다큐멘터리를 찍기도 했다. 2012년 예술가를 위한 오노 요코 어워드를 수상했고 2013년엔 전미 여성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케이트 밀레트를 추모하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인스타그램 메시지. ⓒinstagram.com/gloriasteinem
케이트 밀레트를 추모하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인스타그램 메시지. ⓒinstagram.com/gloriasteinem

밀레트의 죽음에 많은 여성들이 슬픔을 표현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소식을 접하자마자 자신의 SNS에 “‘세계가 잠자고 있었는데 케이트 밀레트가 깨웠다’는 안드레아 드워킨의 말처럼 성 정치학을 비롯한 케이트의 모든 업적은 우리를 계속 깨어있게 할 것이다”라며 추모의 글을 올렸다. 레나 던햄도 “케이트 밀레트의 타게 소식을 듣고 매우 슬프다”면서 “그는 페미니스트 사상을 개척했고 정신병의 오명을 벗겼으며 커다란 패션 안경을 썼다”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문화평론가 일레인 쇼월터는 “혁명은 리더를 필요로 하며 케이트 밀레트의 ‘성 정치학’은 여성운동에 목소리와 강한 유대감을 부여했다. 그는 지적이고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였으며 청중에게 효과적으로 연설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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