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미의 다시 만난 세상] 현대물리학자 반다나 시바는 왜 에코페미니스트가 되었을까?
[최형미의 다시 만난 세상] 현대물리학자 반다나 시바는 왜 에코페미니스트가 되었을까?
  • 최형미 여성학자
  • 승인 2017.09.06 10:00
  • 수정 2017-09-10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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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나 시바·마리아 미즈 『에코페미니즘』

‘따라잡기 페미니즘’

많은 여성들 소외시켜

‘싸워서 이겨라’ 그리고

이제 ‘돌보고 나눠라’

“페미니즘은 더 입체적이고

다양한 전략을 만들며 진화”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의 마지막 장면에서 학대와 폭력 속에 살아온 한매(공효진 분)는 중산층 이혼녀 지선(엄지원 분)의 손을 뿌리치며 죽음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 장면은 필자에게 질문하였다. ‘페미니즘은 우리 시대의 ’한매‘와 손을 잡을 수 있을까?’

60~70년대 서구를 휩쓴 제2세대 페미니즘은 ‘따라잡기 페미니즘(catching up feminism)’이라 종종 불린다. 평등과 자유라는 평범한 상식을 구현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에게 남성들과 경쟁해서 따라잡으라는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적지 않은 여성들이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며 남성들과 동등하거나 혹은 그들보다 우수함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평등전략은 ‘싸우기’ 즉, 경쟁이었다.

경쟁이 평등의 전략이 될 때, 재력 학력 그리고 재능을 갖춘 강한 여성들은 남성들과 경쟁해서 여성이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줬다. ‘싸워서 이겨라’는 전략은 옳았다. 그러나 가부장제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더 많은 여성들은 낙오되고 착취되며 주변화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캄보디아 의류공장 여성 노동자는 10만 원이 채 안 되는 월급을 받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옷 한 벌을 살수가 없다. 생계를 위해 이주노동을 시작한 필리핀 여성은 본국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낯선 땅에서 외로운 가정부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 고아로 자라 미혼모가 되어 성매매로 생계를 유지하던 통영의 젊은 엄마는 경찰의 함정수사에 목숨을 잃어버렸다.

이러한 현상들은 페미니즘이 누구를 위한 운동이며 학문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페미니즘은 인류사에 평등을 구현하는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또다시 그것이 우리사회의 취약한 여성들을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적절한 전략이었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따라잡기 페미니즘’은 생존을 버텨내는 여성들에겐 불가능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쟁은 어렵게 사는 여성들을 더 깊은 착취의 나락으로 떨어뜨려 버렸고 그것을 그들의 탓으로 돌려버렸다. ‘싸워서 이겨라‘라는 페미니스트들의 선포는 많은 여성에게 용기를 주었지만 동시에 많은 여성들에게 무력감을 각인시키기도 했다. 평등을 획득하기 위해 ‘싸움’과 ‘경쟁’이 아닌 전략이 있기나 한 것일까?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한매를 위한 페미니즘은 가능한 것일까? 생존을 위해 아슬아슬한 삶을 살았던 통영의 젊은 엄마를 위한 페미니즘은 무엇일까?

반다나 시바와 마리아 미즈와 함께 쓴 『에코페미니즘』(1993, 손덕수 외 역)은 이러한 따라잡기 페미니즘이 그릇된 전략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에코페미니즘을 통해 새로운 해방 전략을 제안하고 있다. 현대물리학자이며 환경운동가인 반다나 시바는 세상이 힘의 원리로 작동한다는 근대 기계론적 세계관을 균열 내 버린다. 양자의 세계 속의 원리는 경쟁이 아니라 상호성이다. 각각의 물질들은 연결되어 있어서 나 혼자 살아남을 수 없으며 너를 살려내야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메커니즘 가운데 있다. 이러한 현대과학의 원리는 생태계의 원리와도 같다. 각각의 다양한 종들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이들은 공존의 원리로 살아간다. 만약 하나의 종이 사라져 버리면 연결고리가 끊어져 버리고 결국 생태계 훼손과 공멸이라는 재앙의 도미노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현대물리학과 생태계는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준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주변과 타인을 살려내라’

에코페미니즘의 전략은 ‘돌봄과 나눔’이다. 약자를 도태시켜 강자가 생존하는 전략이 아니라 약자를 살려낼 때 비로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원리를 여성운동에 적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를 여성들의 ‘모성’을 통해 또다시 호소하고 있다. ‘너를 살려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여성들의 모성은 차별과 착취 속에 여성들이 발견한 생존의 원리였다. 역사를 지배했던 남성들은 경쟁, 지배, 자립의 전략을 사용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들의 생존전략은 돌봄과 나눔, 연결이었다.

반다나 시바가 설명하는 카오스이론의 나비효과는 흥미롭다. 북경에서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은 남태평양에 거대한 태풍을 일으킨다. 북경에서 남태평양으로 바람이 움직여 나아갈 때 바람이 바람을 돌보며 더 큰 바람을 몰고 오기 때문이다. 약자들의 연결이 결국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는 대한 그의 철학은 확고하다.

에코페미니즘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로 비판돼온 모성의 특성인 ‘돌봄과 나눔’을 또다시 소환했을 때, 보수적인 여성들의 타협이라고 비판 받았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인 모성은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모성은 새로운 판위에 다른 정치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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