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성 작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오랜 기간 지속돼온 남성 서사에 염증을 느낀 독자들이 여성 이야기에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도래한 페미니즘 리부트도 한 몫 했다.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 여성의 삶을 그려낸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을 필두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속속 조명 받고 있다. 김숨, 김금희, 김애란, 정세랑, 정이현, 최은영 등 이들의 다채로운 작품세계로 떠나보자.

 

김숨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숨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숨 작가(1974년생)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느림에 대하여」가,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에 「중세의 시간」이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김숨 작가의 문체는 무뚝뚝하고 거칠지만 깊이 있다. 어딘가 무채색을 닮았다. 여성 이야기를 자신만의 호흡으로 써내려가는 그는 “새가 창가로 날아들 듯이 소재가 나에게 찾아온다”며 “새가 날아들었을 때 그 새를 놓치지 않고 포착해서 그리듯이 글을 쓴다”고 말한 바 있다. 담담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그의 문체는 많은 이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김 작가는 장편소설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물』, 『철』,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바느질하는 여자』, 『L의 운동화』, 『한 명』 등을 집필했다. 특히 소설 『한 명』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임을 숨긴 채 살아온 주인공이 과거 경험과 싸우며 현재의 ‘나’를 찾는 과정을 담았다. 일제통치 식민지 시대의 피해자 삶을 “작가만의 독특한 문체, 냉정한 어휘, 범접할 수 없는 깊이와 내밀함”(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으로 그려냈다. 300여개에 달하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실제 증언을 재구성해 역사의 잔혹성과 내상을 담았다.

 

김금희 작가 ⓒ출판사 문학동네 제공
김금희 작가 ⓒ출판사 문학동네 제공

김금희 작가(1979년생)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돼 등단했다. 등단 이후 5년 간 가다듬은 10편의 소설을 엮어 첫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2014)을 냈다. 막막한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공간을 찾아나가는 젊은 세대의 초상을 속 깊고 섬세한 시선으로 담았다. 재수에 실패한데다 임신까지 해버린 스물한 살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표제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부산과 인천 목재공장에서 평생을 일해 온 아버지의 생애와 변두리 아파트에 집을 마련해 이사하던 날 정육점에서 구한 황소 코뚜레에 중산층의 소망을 의탁한 어머니의 삶을 담은 ‘아이들’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는 다채로운 인간 군상을 묘사한다. 작가의 따뜻하고 세밀한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사소하다고 생각해서, 내심 잊고 싶어서,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미세해진 파장들을 현재로 끌어와 감추고 모른 체했던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김애란 작가 ⓒ뉴시스‧여성신문
김애란 작가 ⓒ뉴시스‧여성신문

김애란 작가(1980년생)

2002년 단편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고, 같은 작품을 2003년 ‘창작과비평’ 봄호에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가 특징이다. 김 작가의 첫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청춘의 가슴 벅찬 사랑을 그렸다.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청춘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슬픈 운명에 맞서는 아이와 아이를 통해 세상을 경험하며 성숙해지는 부모의 이야기. 담백한 문장으로 벅찬 생의 순간과 사랑에 대한 통찰을 풀어냈다. 지난 6월 펴낸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서 작가는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서버린 누군가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무언가를 잃은 뒤 어찌할 바 모른 채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묻는 인물들의 막막한 상황들을 써내려갔다. ‘입동’, ‘노찬성과 에반’, ‘건너편’ 등 모두 7편을 담았다.

 

정세랑 작가 ⓒ출판사 창비 제공
정세랑 작가 ⓒ출판사 창비 제공

정세랑 작가(1984년생)

2010년 장르 문학 계간지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이만큼 가까이』, 『보건교사 안은영』, 『피프티 피플』 등을 펴냈다. 장르소설로 작가의 삶을 시작했지만 순수문학도 두루 작업했다. 정 작가는 특유의 엉뚱하고 발랄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주체적이고 독창적인 인물을 창작해낸다. 『이만큼 가까이』는 30대들이 학창시절에 겪었음직한 꿈, 좌절, 불안, 우울, 호기심을 담은 작품이다. 신도시 외곽 작은 도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들의 성장통을 담담하면서도 경쾌하게 그려냈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는 발랄하고 용감한 여전사이자 다정하고 유쾌한 주인공 안은영을 만들어냈다. 작가는 주체적이고 매력적인 은영을 내세워 학교 곳곳에서 나타나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그려나간다.

 

정이현 작가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정이현 작가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정이현 작가(1972년생)

2002년 단편소설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등단했다. 당시 “도발적이고 감각적이며 치밀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문단에 등장했다. 정 작가는 솔직담백하게 표출된 21세기 도시 남녀의 삶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 속도감 있는 전개, 젊은 도시인들의 생활코드와 감성을 적재적소에 포진시키는 능력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첫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는 20~30대 여성들의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도시적 삶이라는 코드를 내세워 인생의 터닝 포인트 앞에 선 이들의 풍경을 경쾌하면서도 날카롭게 그려냈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쿨’한 여자들에 관한 8편의 단편을 담아낸 소설집이다. 냉소적이고 실리적이며 확고한 여자 주인공들은 남성중심적인 연애방정식의 오류 속으로 침입해 부조리를 제거한다. 정 작가의 날렵한 구성과 매력적인 글쓰기 방식이 돋보이는 작품. ‘도시기록자’라 불리는 작가가 9년 만에 선보인 단편소설집 『상냥한 폭력의 시대』는 미소 없이 상냥하고 서늘하게 예의 바른 위선의 세계를 포착했다.

 

최은영 작가 ⓒ출판사 문학동네 제공
최은영 작가 ⓒ출판사 문학동네 제공

최은영 작가(1984년생)

2013년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로 ‘작가세계’ 신인상에 당선돼 등단했다. 다음해 같은 작품으로 제5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쇼코의 미소」는 언어와 국적이 다른 두 소녀가 만나 성장의 문턱을 통과해가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주인공과 쇼코가 겪는 인생의 굴곡을 각기 다른 빛깔로 그려냈다. 최 작가는 화려한 기교 대신 담담한 문체와 수수한 이야기로 잔잔하지만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쇼코의 미소’와 함께 ‘씬짜오, 씬짜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등 6편의 작품을 엮어 소설집 『쇼코의 미소』(2016)를 냈다. 최 작가는 등단 초기부터 타인의 고통 앞에 겸손히 귀 열고 싶다고 밝혀왔다. 그는 지난해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존재만으로도 인간 취급을 못 받는 사람들, 소수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문제를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권명아 문학평론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최근에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나 여성 입장에서 한국사회를 다룬 작품들이 관심을 받는 건 아마도 페미니즘이 엄청난 사회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라며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여성의 입장에서 한국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페미니즘에 눈 뜬) 여성들이 문학작품에 더 눈을 돌리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권 평론가는 “한국문학은 오랫동안 여성 작가들이 지켜왔었다. 그런데 오히려 상을 받거나 미디어에서 주목받는 것은 오히려 남성 작가들이었다”며 “(한국사회에서) 여성 작가들은 그 역량에 비해 조명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90년대 이후 공지영, 신경숙 작가 등 대중·제도적으로 인정받은 여성작가들이 대거 등장했고, 그 흐름을 이어가는 여성 작가들이 계속해서 축적돼왔다. (‘여성 작가의 약진’ 등을) 사회현상으로 인지하게 된 것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오랫동안 목소리 내고 분주히 활동해왔던 여성 작가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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