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김순자 지부장

“시급 몇 백원 더 달랬다가 압류까지”

3년2개월 넘게 길거리서 파업

정부·국회·지자체도 변화 움직임

노조원 평균 나이 66세

“못배운 우리 멸시하는 대학에 분노… 

힘 없다는 사람도 존중받는 사회 되길”

 

3년 넘게 파업 농성 중인 김순자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가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3년 넘게 파업 농성 중인 김순자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가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시급 몇 백원 더 달랬다가 벌금 1억에 집 압류당하고, 오죽하면 서울까지 왔겠습니까”

분 단위로 비가 내렸다 개었다를 반복했던 8월 23일 처서,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흰 상복을 입은 여성이 근조 모양의 팻말을 들고 섰다. 궃은 날씨에 관광객들이 별로 없던 터라 그는 더욱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니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얼굴엔 기미가 빼곡했다.

울산과학대학교의 하청업체 소속 청소노동자 김순자(63) 지부장이 3년간 길거리에서 파업 시위를 하다가 서울에 왔다. 몇 달전 농성장에서 넘어지면서 부러진 다리뼈엔 아직도 핀이 박혀있지만 가만히 앉아있을 형편이 되지 못했다.

파업 시작 1170일째. 최저임금 남짓 받는 청소노동자들이 시작한 파업은 만 3년2개월을 넘어 매일 매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2014년 당시 시급으로 최저임금 5210원을 받던 이들은 시급 6000원과 상여금 100%를 요구하면서 파업이 시작됐다.

김순자 씨는 8월 7일부터 서울에서 국회, 청와대, 주요 방송사 등을 찾아다니면서 1인 시위도 하고 기자회견도 하고 있다. 울산과학대의 명예총장인 정몽준 이사장의 아산재단도 찾아가볼 예정이다. 주변에서는 가봐야 소용없다지만 서올 온 김에 갈 수 있는 곳은 다 가볼 생각이라고 한다.

서울까지 KTX 기차를 타면 2시간 20분이 걸리지만 김씨에겐 몇 달이 걸렸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지난해 상경하기로 마음먹었지만 탄핵정국이 시작됐고, 끝나기를 기다렸더니 또 대통령선거 시작됐다. 이 상황에서 청소노동자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고. 2년이 넘게 투쟁했는데, 몇 개월 더 못 버티겠나 싶어서 학교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며 때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정말 때가 온 것 같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1월에 국회 청소노동자가 정규직이 되고, 새 정부가 일자리 문제에 관심 갖고 정규직화하겠다고 했고, 서울시도 그렇고. 경희대도 자회사가 직접 고용하지 않았나.”

3년간 또 변한 게 있다면 시민들의 태도다. 농성장 앞을 지나는 시민들 중엔 시끄럽고 천막이 흉물스럽다는 등 보란듯이 불쾌한 표정을 짓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다른 곳에 취업해서 청소하면 되지 왜 저러냐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천막에 커피도 사다주고 공감해준다. 대재벌 정몽준이 해도해도 너무한다고 함께 분개한다.

 

3년 넘게 파업 농성 중인 김순자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가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3년 넘게 파업 농성 중인 김순자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가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이같은 분위기가 형성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비닐천막 농성장을 4번 철거당할 때마다 젊은 장정들과 몸싸움을 벌여야 했다. 안되는 싸움이지만 농성장이 부서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불법 점거라는 이유로 8명의 파업 노조원이 1인당 1억 원에 가까운 벌금을 부과받았고, 가진 게 없으니 집을 압류당했다. 울산과학대의 파업은 청소노동자 파업 중에 가장 길고 강도 높은 탄압으로 꼽힌다. 김씨는 겨울에 크게 다치게 된 것도 학교 측이 ‘골탕 먹어봐라’고 농성장 주변을 어질러놓은 방해 작전 때문이라고 했다.

경희대학교가 최근 자회사를 설립해 청소노동자들 등의 직접고용을 결정한 데에는 서울시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던 반면 울산시는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울산 동구지역은 현대중공업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언제 울산으로 돌아갈 거냐는 질문에는 “실마리가 좀 풀려야 내려갈 생각”이라고 했다. 일정을 잡지 않았느냐고 묻자 “이번엔 어떻게든 진척되는걸 보고 갈거라고 각오를 가지고 욌다”고 했다.

8월 마지막주에는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 이명박 정부의 비서실장을 지낸 정정길 울산과학대 이사장과의 협상을 마련할 예정이다. 우 원내대표는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며 문제 해결에 앞장서왔다. 김 지부장은 “계속해서 중재와 협상을 위해 노력해온 더불어민주당이 이제 마지막 중재에 나서는 것이고 결렬되면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 함께 자리한 인근 프레스센터 건물 청소노동자 김희순(66) 씨는 최근 임금 협상을 했다며 응원했다. 그는 “원청사용자인 학교가 용역업체에 떠넘기지 말고, 노동자를 무시하지 말고, 함께 학교를 운영해 나가는 주체로 인정하고 대화에 나서라”고 말했다.

김순자씨의 희망사항은 하나다. “이제 노조원 평균 나이가 66세다. 3년 넘게 투쟁하게 된 건 무엇보다 우리를 멸시하는 대학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못 배운 사람이라 무시하는 거란 생각밖에 안 든다. 우리 얘기에 귀 기울여 달라. 우리 늙은이들의 싸움으로 못배운 사람, 힘없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존중 받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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