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김기덕 감독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2017.08.08.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김기덕 감독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2017.08.08. ⓒ뉴시스·여성신문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8일 기자회견

“영화 현장은 노동현장…예술 위한다며 인권침해 안돼” 

“피해자 탓하는 김 감독 태도, 영화계 내 만연한 폭력 증거” 

‘인권침해로 만든 영화는 예술이 아니다’ ‘폭력을 ‘연출’하는 것을 멈춰라’ ‘그 많던 여성영화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8일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연 기자회견엔 색색의 손팻말이 등장했다. 이날 모인 영화계, 여성계 인사들과 법조인들은 김기덕 감독의 여배우 폭행·강요 사건이 “피해자의 이름만 바뀔 뿐 끝없이 반복돼 온 영화업계의 뿌리 깊은 인권 침해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2015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레드카펫을 걷고 있는 김기덕 감독.
2015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레드카펫을 걷고 있는 김기덕 감독. ⓒ뉴시스·여성신문

공대위에 따르면 피해자는 2013년 영화 ‘뫼비우스’ 촬영 중 김 감독의 폭행, 강요, 인격적인 모욕과 명예훼손적 언행에 시달렸다. 김 감독은 스탭들이 보는 앞에서 피해자의 뺨을 수차례 강하게 내려쳤고, 시나리오 대본에 없는 ‘상대 배우의 성기를 직접 잡는 행위’를 강요했다. 피해자는 촬영의 70%를 마친 상황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호흡곤란을 겪었고, 제작사 김기덕 필름 측과 상의 하에 하차했다. 

이 사건은 지난 3일 언론 보도로 알려졌다. 배우가 스타 감독의 인권 유린 문제를 최초로 공개 고발한 사건이라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김 감독은 피해자에게 “사과한다”면서도 “연출자 입장에서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집중하다 생긴 상황”이라고 해명했고, “연기지도” “무단이탈” 등 표현을 이용해 피해자를 비난했다. 공동변호인단의 이명숙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는 이에 대해 “세계적인 유명 감독이나 그 측근의 처신으로는 매우 부적절하며, 또 다른 범죄를 구성할 수도 있다”며 “김 감독이 보여준 안일하고 실망스러운 태도는 영화계에 이런 폭력이 얼마나 만연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도 “영화는 사람이 일하는 노동현장이고,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끼고 즐거워하는 곳”이라며 “김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기본적인 태도를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피해자는 사건 발생 이후 4년간 여성단체와 상담소, 국가인권위원회 등을 찾아다니며 피해 사실을 진정하고 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피해자는 물론 그 주변인까지도 언론에 알려져 신상이 공개되고 업계에서 방출되며 여러 2차 피해를 당할 우려가 높다’, ‘무고죄로 역고소를 당할 수 있다’ 등 부정적인 반응에 용기를 내지 못하다가, 지난 1월 ‘영화인 신문고’ 제도를 통해 다시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해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김 감독을 형사고소했다. 이 대표는 “피해자는 ‘돈 때문에 소송한다’는 오해를 받기 싫어서 손해배상소송을 거부했다”며 “김 감독은 단순한 사과를 넘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영화계 내 인권침해를 비판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영화계 내 인권침해를 비판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김기덕 감독 사건’은 “감독과 배우라는 전형적인 권력관계에서 발생”했으며, “그동안 지속된 영화계의 관행임에 주목해야” 한다고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말했다. 그간 여성 연예인 지망생들이 당한 인권 침해 사례를 접수·상담해온 한국여성민우회의 김민문정 상임대표는 “폭력이 관행이라는 업계 내 인식, 근로계약서 없이 일하는 문화, ‘영화·연예 산업은 특수하다’는 재판부의 인식과 ‘솜방망이 처벌’도 피해자의 입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공대위는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태도도 비판했다. 이 대표는 “그간 유명 연예인이나 감독 관련 사건 대부분은 조사 전부터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가해자는 피해자로 둔갑하고, 피해자는 2차 피해 등 극심한 고통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언론은 자극적이거나 추측성 기사를 자제하고 수사 결과를 기다려 달라. 또 문화예술계 내 인권침해의 다양한 실태와 개선책, 해외 영화 촬영 현장의 법제도나 매뉴얼 등에 대한 폭 넓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또 “악성댓글이나 신상털이 등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주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강경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대위는 ▲‘김기덕 감독 사건’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 ▲영화계 내 인권침해 문제 해결 노력 촉구 ▲정부 차원의 영화계 내 인권 침해 실태조사 정례화와 예산 마련 ▲언론의 추측성 보도와 피해 여성 신상 파헤치기 중단을 촉구했다.

공대위는 이날부터 한 달간 여성인권아동센터를 통해 인권침해 신고전화(02-599-0222, kcwcr2017@gmail.com)를 운영한다. 필요에 따라 무료로 법률서비스를 지원한다. 공대위는 “공소시효에 대한 걱정 말고 연락 달라”고 전했다.

또 문화예술계 내 인권침해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설문조사도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500여 명이 참여했다. 민간에서만 진행하기엔 한계가 있으니, 정부 차원에서 정기적 실태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촉구할 계획이다. 다음 달 토론회를 열고 조사 결과 등을 기초로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다양한 단체·개인과 힘을 합쳐 영화계 내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사·행동도 기획할 예정이다. 안 위원장은 “지금은 4개 영화 관련 단체만 모였는데 앞으로 더 많은 영화계 단체들이 함께 영화현장의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대위는 ▷여성영화인모임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찍는페미 ▷한국독립영화협회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126개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 ▷한국여성의전화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공동변호인단(이명숙, 신현호, 강연재, 오지원, 김민아, 김보람, 박선영, 서혜진, 장경아, 황수철, 강두리 변호사)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홍승기 인하대 법전원 교수·영화진흥위원회 공정환경조성특별위원장 등 136개 기관·단체와 개인 13명으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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