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마켓서 ‘몰카’ ‘몰래카메라’

키워드 검색 막았지만

안경, 손목시계, 볼펜 모양 등

변형 카메라 제품 수두룩 

원하면 맞춤형 몰카 제작도

 

지난달 28일 찾은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유명 브랜드 제품 취급점 가운데에도 몰래카메라를 파는 곳들이 적지 않았다. ⓒ여성신문
지난달 28일 찾은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유명 브랜드 제품 취급점 가운데에도 몰래카메라를 파는 곳들이 적지 않았다. ⓒ여성신문

“사장님, 혹시 ‘몰카’도 파시나요?” 조심스레 묻자, 점원은 곧바로 “들어오세요”라며 매장 안쪽 테이블로 기자를 안내했다. 20~30만원대 HD급 초소형 카메라와 볼펜, 카드지갑, USB 등 다양한 위장 카메라를 꺼내 보여주더니 직접 시연해 보였다. “중국산이랑은 질이 달라요. HD급 화질에 화각도 넓고, 보조배터리로 충전하면서 동시에 촬영할 수 있어요. A/S도 물론 가능합니다. 원하는 기능이 있다면 맞춤형 제작도 해 드려요.” 

 

 

점원이 직접 시연까지 해 보인 카드지갑형 몰카와 볼펜형 몰카 제품. ⓒ여성신문
점원이 직접 시연까지 해 보인 카드지갑형 몰카와 볼펜형 몰카 제품. ⓒ여성신문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3층 디지털전문점. 고가의 유명 카메라·레코더 브랜드를 취급하는 가게들 중에는 공공연히 몰래카메라를 파는 곳들이 적지 않았다. 이날 기자가 방문한 상점 5곳 모두 “몰래카메라 있느냐”라는 말에 구체적인 용도나 구매자의 나이도 묻지 않고 제품을 꺼내 보였다. 사장이 직접 운영하는 몰카 쇼핑몰 웹사이트를 보여주며 “ㅈ방송, ㅋ방송 등 유명 방송사들이 다 우리 고객이다”라며 자랑스레 홍보하는 곳도 있었다. 가격 흥정도 자유로운 편이었다. “현금으로 구매하면 최대 10만원을 깎아 주겠다”거나 “예산이 얼마인지 말해보라. 되도록 맞춰 주겠다”는 곳도 있었다. 

정부·경찰이 몰카 범죄 근절을 외치지만, 여전히 마음만 먹는다면 쇼핑몰을 통해 최첨단 변형 몰카(카메라 형태를 갖추지 않은 초소형 카메라)를 구입할 수 있다. 용산 전자상가·을지로4가역 인근 세운대림상가뿐만 아니라,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복합쇼핑몰에서도 변형 몰카 유통이 횡행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규제와 단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라인에서도 변형 몰카를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본지는 온라인 내 몰카 판매와 구매가 얼마나 자유로운지 알아보기 위해 11번가, G마켓, SSG몰, 인터파크, 옥션 등 온라인 주요 오픈마켓의 판매 현황과 구입 여부를 알아봤다. 11번가는 ‘몰카’, ‘몰래카메라’를 검색할 경우 ‘몰카/몰래카메라에 대한 검색결과는 현재 제공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떴다. G마켓, SSG몰, 인터파크도 ‘몰래카메라’, ‘몰카’를 검색하면 몰카 탐지기 정보만 제공될 뿐이었다. 특히 11번가는 본지가 몰래카메라 관련 제재 조항을 문의한 지난달 31일, 안전거래센터에 ‘초소형 (몰래) 카메라 판매금지 정책’을 공지했다.

그러나 문제는 ‘몰카’, ‘몰래카메라’ 등 직접적인 키워드만이 제재 대상이라는 것이었다. ‘초소형 카메라’, ‘위장 카메라’ 등을 검색할 경우 고글캠, 자동차 키 캠코더, 볼펜 카메라, USB 캠코더, 안경 캠코더, 손목시계 캠코더 등 변형 카메라 정보가 수두룩하게 나왔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미니 카메라, 360도 스파이 카메라 등도 발견됐다. ‘완벽하게 위장할 수 있는 초소형 디자인’, ‘렌즈가 보이지 않는 완벽 위장 캠코더’ 등 몰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광고문구도 눈에 띄었다. 미성년자가 몰카를 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로 제기된다. 11번가와 옥션의 경우 휴대폰 인증 절차를 거치고 생년월일만 입력하면 결제가 가능했다.

다만 SSG몰은 몰카, 몰래카메라뿐만 아니라 초소형 카메라, 위장 카메라를 검색했을 때에도 변형 카메라 관련 정보가 뜨지 않았다. 현재 SSG닷컴은 내부규정 업체를 입점할 시 표준 계약을 작성하고, 상품 요건에 따라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상품은 취급할 수 없도록 검열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계약 이전에 업체를 검수할 때 업체 신용평가를 진행하고, 불법 상품은 원천 봉쇄한다고 설명했다. SSG 닷컴 측은 “악용될 요지가 있는 ‘초소형카메라’, ‘위장용 카메라’에 대해서 사전 검열을 진행하고 있다”며 “혹시라도 검수과정에서 그런 상품을 놓쳤다면 발견 시 업체에 패널티를 부과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베이코리아 PR팀 오혜진 대리(G마켓·옥션 마케팅커뮤니케이션팀 소속)는 문의 결과 “사측에서 놓친 제품이 있다면 즉각 판매 중지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오 대리는 “G마켓과 옥션에서는 초소형 카메라에 대한 판매금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며 본지가 문의한 제품에 대해 “해당 제품은 상대방이 촬영 여부를 알 수 없는 정도로 초소형이고, 그 형태가 카메라임을 알지 못하도록 다른 형태의 사물로 위장돼 불법적인 용도로 이용될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제품이다. 사측은 (몰카) 관련 키워드 등록 및 광고를 금지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정책에 위반되는 상품과 광고 행위가 확인되는 경우 즉각 상품 판매중단, ID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11번가도 초소형 (몰래)카메라 판매금지를 위해 관련 상품 등록과 키워드 사용을 제재하고 있다. 11번가는 모니터링을 통해 문제 소지가 있는 제품의 경우 즉각 판매중지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혀왔다. 또 본지가 문의한 초소형 카메라 제품의 경우 “상품 상세설명에 ‘위장’이라는 키워드가 있어 11번가 제재기준에 따라 상품판매 중단 조치를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몰카 제품을 사고 파는 일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몰카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배경에는 관련 기술의 급격한 발달과 몰카 기기 거래 빈도 증가가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문제는 변형된 카메라의 생산·유통을 규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예전엔 저렴한 불법 중국산 몰카가 대부분이었지만, 요샌 전파 인증(해외에서 구매한 무선기기를 국내에서 사용할 때 미리 전파를 등록해야 하는 절차로, 위반 시 처벌을 받게 됨)을 받아 단속에 걸리지 않는 제품이 늘었다”고 한 카메라 유통업자는 말했다. 

2년 전 큰 파문을 일으킨 ‘워터파크 몰카 사건’ 이후,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이 직접 “카메라의 모습을 띠지 않은 카메라와 변형된 카메라의 생산과 소지를 근본적으로 제한하는 법안을 관계부처와 협의해 마련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후속 조치는 없었다. 2015년 10월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초소형 카메라 판매자와 소지자 모두 관할 지방경찰청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 개정안도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전문가들은 “몰카 판매를 규제할 경우 오히려 시장 자체가 음지로 파고들 우려가 있다”며 “몰카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높이고 캠페인 등을 통해 몰카의 위험성과 경각심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영미 법률사무소 세원 변호사는 지난해 9월 26일 한국여성변호사회 주최 ‘온라인 성폭력 실태 및 피해자 지원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몰카 범죄로 처벌된 이들 중 53.83%가 2번 이상 범행하는 등 재범 위험이 큰데도, 10명 중 7명꼴(1심 80.63%, 항소심 64.62%)로 벌금형과 집행유예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형사 처벌 전력, 촬영 횟수와 피해자 수, 유포 여부 등 양형인자에 따라 선고형량에 편차를 두는 구체적인 양형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범행수법이 계획적이고 치밀해 죄질이 나쁘다면 가중요소로 삼아야 한다하며, 성폭력치료강의 수강명령, 보호관찰, 사회봉사 등 다른 부수적 처분도 함께 선고해 재범 방지를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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