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역사의 ‘비구니 사찰’

‘달을 품은 집’에서 108배하고

오바마 요리사도 반한 절밥 통해

청정·유연·여법 등 ‘삼덕’ 배워

새벽 4시 참선하며 번뇌 벗어나

“도심에서 벗어나 찾은 고요”

 

15일 진관사 선우 스님이 다도 예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15일 진관사 선우 스님이 다도 예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1분 1초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 살다 보면 가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 밀어닥치는 일과 감정노동에 시달린 현대인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힐링’이다. 하루라도 잠시 복잡한 생각을 멈추고 휴식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직 여름휴가를 결정하지 못했거나 멀리 떠나기가 부담스럽다면 한 박자 쉬어갈 수 있는 ‘템플스테이’가 제격이다. 굳이 먼 곳을 가지 않더라도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도 얼마든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지난 15일 오후 2시 은평구 진관동 354번지. 템플스테이 참가를 위해 찾은 진관사는 서울 은평구 끝자락에 있었다. 북한산이 담벼락처럼 둘러싸고 있어 마치 자연 속에 안긴 듯한 사찰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음의 정원’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북한산 등산로 진입로를 지나쳐 가면 낮은 높이의 나무들이 잘 가꿔진 정원이 펼쳐진다.

1000년 역사의 고찰, 진관사 입구에는 20여명의 참가자들이 모였다. 중장년층 참가자부터 중국 유학생과 엄마 손을 잡고 온 초등학교 아이들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사찰해설을 맡은 이순영 템플팀장이 나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 팀장은 “최근 진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개인과 단체 참가자까지 연령대가 다양해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참가자 수는 매년 1만명을 넘고 있다.

 

진관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합장하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진관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합장하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사찰 안에서는 ‘합장’으로 인사를 대신 합니다.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존경의 마음을 담아 허리를 굽혀 인사합니다. 스님을 마주칠 때 합장으로 인사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이 템플팀장이 사뭇 엄숙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혔다. 다른 참가자들도 합장으로 답했다.

참가자들은 모두 ‘함월당’에 모였다. ‘달을 품은 집’으로도 유명한 이곳은 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은 공간이다. 이곳에서 이 팀장은 108배를 설명했다. 그는 “인간에게는 108배의 번뇌가 있다. 108배는 겸허와 겸손을 뜻한다”며 “현재 상황이 불만족스러운 것도 모두 번뇌다. 108배는 참된 나를 찾기 위해 세상과 스스로 몸을 낮추는 수행”이라고 말했다.

‘사찰음식 체험’은 진관사 템플스테이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전속 요리사도 이곳에서 요리법을 배워갔다. 갖가지 산나물로 정갈하게 차려진 사찰음식 앞에서 참가자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묵, 김치, 두부, 콩나물, 산나물 등 10가지가 넘는 각종 반찬을 차례대로 담으니 ‘밥을 남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우려와 달리 접시 위 음식이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진관사 주지인 계호 스님은 “사찰음식의 위엄은 삼덕에서 나온다”며 “농약과 항생제 등을 쓰지 않은 청정한 재료를 사용하는 청정(淸淨)과 지나치게 자극적인 맛이 나지 않아야 하는 유연(柔軟), 먹는 사람에게 알맞은 요리를 하는 여법(如法)이 그것”이라고 설명했다.

진관사는 세계 각국의 유명인사들이 찾은 절로도 유명하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의 부인인 질 바이든 여사도 2015년 7월 한국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진관사를 찾았다. 당시 ‘여성 역량 강화’라는 순방 주제와 맞물렸기 때문이다. 진관사는 ‘비구니 사찰’이다. 50년 전 젊은 비구니 스님 한 명이 진관사로 와 예불도 올리고 밭도 일구면서 2년 만에 대웅전을 지었다.

 

참가자들이 차를 마시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참가자들이 차를 마시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오후 8시부터 진행된 다도는 4명씩 한 조로 나뉘어 배웠다. 선우 스님이 차 내리는 법을 직접 시연했다. “받침은 왼손에 올리고 찻잔은 오른손으로 드세요. 먼저 색을 보고 그다음 향기를 맡으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맛을 음미하세요.”

다담은 불가에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내어놓는 다과를 가리키는 말이다. 차를 끓여서 대접하는 사람인 ‘팽주’와 손님인 ‘팽객’ 역할을 분담해 평소 배울 수 없었던 차 예절을 배웠다. 팽주가 따라준 따뜻한 차를 마시자 입안 가득 매실차 향이 번졌다. 이어 선우 스님의 ‘행복 찾기’ 강연도 진행됐다. 선우 스님은 “돈, 음식, 애욕, 수면욕, 칭찬 등에 대한 욕심이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는다”며 “남과의 비교는 자기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남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하영 학생이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이하영 학생이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진관사 템플스테이 1박 일정은 오후 9시면 모두 종료된다. 다음날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과 108배 그리고 참선 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체험 일정은 모두 선택사항으로 다른 종교일 경우 뒤에서 명상만 해도 상관없다.

새벽 4시. 어둠 속에서 참가자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한차례 폭우가 내리고 천둥·번개 때문에 잠을 설쳤을 법한데도 참가자 모두 약속 시각을 정확히 지켰다. 참선은 덕원스님과 함께했다. “참선은 집중과 알아차림입니다.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돌봐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덕원 스님은 두 눈을 감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례대로 집중해보라고 했다. 두 손을 가볍게 모아 단전 앞에 내려놓고 들숨과 날숨을 쉰다. 눈은 감지 않고 살짝 시선을 아래로 하는 것이 포인트다. 스님의 말대로 마음을 모으려고 애써봤지만 헛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스님은 다른 생각이 들 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5초 간격으로 10분간 마음을 다스렸다. 스님의 죽비소리에 맞춰 오랜만에 내면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다.

 

덕원스님이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에게 타종 설명을 하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덕원스님이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에게 타종 설명을 하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참선이 끝나자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온 민경준(30·남)씨는 “매번 분주하고 들떠 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은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일상 속 고민과 걱정을 잠시나마 버리고 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진관사에서의 하루는 어땠을까. 오전 10시 절을 떠나는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맛있는 절밥 때문이라도 꼭 한 번 다시 오고 싶다”며 “잠깐이지만 고요 속에서 행복을 느꼈다”고 말했다.

진관사는 오는 9월까지 개인별 맞춤 템플스테이를 실시한다. 9월 1일까지 체험형과 휴식형 등의 템플스테이를 신청할 수 있다. 진관사는 고려 8대 현종이 진관대사를 위해 창건했다. 2009년 진관사에서는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시기의 항일 지하신문과 백초월 스님의 태극기를 비롯한 희귀 독립운동 사료 등이 대량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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