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논단] 내 배는 내 것이다!
[여성논단] 내 배는 내 것이다!
  •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
  • 승인 2017.07.18 10:47
  • 수정 2017-07-19 1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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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단체연합, 강남역10번출구, 불꽃페미액션 등 여성단체 및 페미니스트 그룹이 지난 10월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형법상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검은시위를 열었다. ⓒ이정실 사진기자
한국여성단체연합, 강남역10번출구, 불꽃페미액션 등 여성단체 및 페미니스트 그룹이 지난 10월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형법상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검은시위를 열었다. ⓒ이정실 사진기자

필자는 세쌍둥이 엄마다. 시험관시술로 세쌍둥이를 임신하는 바람에 임신 초기 여러 고민이 많았다. 세쌍둥이는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사히 출산할 수 있을지 염려되어 이런저런 의학 정보를 뒤져보고 인터넷으로 ‘세쌍둥이’에 대한 검색도 했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인터넷상에 세쌍둥이 임신 초기부터 출산 직후까지 임산부 배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지속촬영한 사진이 올라와 있었는데 충격적이었다. 세쌍둥이를 낳은 산모의 배가 백 세 할머니 주름 가득한 얼굴처럼 보였다.

선택유산을 하라는 의사의 권유가 있는 상태에서 그런 사진까지 본 필자는 남편에게 “세쌍둥이를 낳을 자신이 없다”고 말하며 인터넷으로 본 산모의 무너진 배 이야기를 했다. ‘내 배가 그렇게 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말도 했던 것 같다. 남편이 아무렇지 않게 “난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고 필자는 이렇게 대꾸했다. “내 배야, 당신이 괜찮고 안 괜찮고는 상관없어, 내가 안 괜찮다고”라고 말이다.

대학 시절 헌법 시간에 낙태권을 여성의 기본권으로 최초로 인정한 미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접했는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1970년대 초반 낙태권을 주장한 여성들이 ‘내 배는 내 것이다’라고 외쳤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너무 멋있게 기억되었기에 필자 또한 남편과 대화할 때 ‘내 배는 내 꺼야’라고 써먹을 수 있었다. 그렇다, 여성의 배는 여성의 것이다. 그런데도 임신한 여성의 배에 대해서는 국가가 시대에 뒤처진 법 규정을 들이대며 여전히 여성을 도구로 취급하고 있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매우 원시적인 법이고 위헌적 조항을 담고 있다.

모자보건법 제1조는 모성 및 영유아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건전한 자녀출산, 양육’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낙태 관련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임신한 여성의 배는 여성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현행 형법은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면서 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 정하는 낙태 허용 사유를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해당 조항을 보면 ‘강간, 준강간’으로 임신한 경우만 규정하고 있고 그 외의 성폭력범죄로 임신한 경우에 대한 규정이 없다.

청소년 성매매, 미성년 장애인에 대한 간음 등으로 인한 임신도 낙태허용 사유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현행법은 일정한 사유가 있어 낙태가 허용되는 경우에도 배우자 동의를 원칙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기혼자의 성폭력 임신에 대한 배우자 동의는 무의미하다. 이미 법에서 정한 제한적 사유가 있어 낙태 시술을 받는 것인데 거기에 배우자 동의를 추가로 요구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심각한 제약이다. 현행 조항에 충실할 경우 배우자의 동의 여부에 따라 여성의 낙태죄로 처벌받는지 여부가 좌우되게 된다. 임신, 출산에 있어서 여성에게 주도적인 결정권을 부여하지 않는 가부장적인 인식이 위 조항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원시적인 조항임은 재론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미국은 여성의 낙태권을 기본권으로 최초 인정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인 1992년경 가족계획연맹 대 케이시(Planned Parenthood v. Casey) 판결을 통해 여성이 낙태 시술계획을 남편에게 사전에 알리도록 한 주법의 조항조차 위헌임을 선언했다. 25년 전 미국에서는 동의가 아닌 배우자에게 알리는 것조차 위헌임을 선언했는데 현행 모자보건법은 성폭력의 경우조차 배우자 동의를 원칙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입법자들의 게으름도 이 원시적인 법의 지속에 한몫하고 있다고 본다.

모자보건법이라는 법명 또한 해당 법이 규율하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 ‘낙태제한법’ 혹은 ‘낙태규제법’ 정도의 가치 중립적 법명으로 개정해야 한다. 낙태 가능 사유에 대해 성폭력범죄의 유형을 현실에 맞게 확대하여야 한다. 배우자 동의 요건은 과감하게 삭제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활동하는 여성 국회의원이 50명이 넘는다. 입법자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위헌적인 현행법을 바로잡아 개선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20대 여성 국회의원들이 목전에 해야 할 일이 바로 모자보건법의 전면 개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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