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재향 세계은행 트러스트펀드 담당 국장

“성평등은 조직의 경쟁력 척도...특정 성별 넘어 모두에게 매혹적인 목표”

 

지난 7일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소재향 세계은행 트러스트펀드 담당 국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7일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소재향 세계은행 트러스트펀드 담당 국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성평등은 똑똑한 경제학이다(Gender equality is smart economics).” 10년 전 세계은행(World Bank)이 내놓은 진단이다. 2015년 마리 키비니에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차장도, 지난해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같은 화두로 장문의 연설을 했다. 

왜 세계 경제 전문가들이 성평등에 주목할까. 소재향(55) 세계은행 트러스트펀드(양허성자금) 국제협력부(CFP) 국장은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여성은 물론, 누구나 동등한 기회와 대우를 받아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은 그 자체로 높은 경쟁력을 갖게 되죠. 성평등은 남녀 모두에게 아주 매혹적인 목표입니다.” 

 

세계은행이 2007년 발표한 금융경제분야 내 성평등을 위한 행동계획 ⓒ세계은행
세계은행이 2007년 발표한 금융경제분야 내 성평등을 위한 행동계획 ⓒ세계은행

소 국장은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확충에 필요한 개발자금 지원 업무와 국제협력 업무의 총 책임자다. 2014년 여성·한국인 최초로 세계은행 국장급 관리직에 올랐다. 세계은행 3대 기금 중 하나인 290억달러(약 30조원) 규모의 펀드도 그가 감독한다. 2012년 세계은행 직원협의회에서 ‘좋은 매니저상’을 받았다. 이달 초부터 UN과 함께 추진하는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2030 어젠다’ 본부에서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성평등 문화 확산에 기여한 공으로 지난 7일 성평등 진흥 유공자로 선정, 국무총리 표창도 받았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 학사와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고, 컨설턴트로 4년간 일하다 1992년 공채 프로그램(Young Professional)을 통해 세계은행에 들어갔다. 사무총장 보좌관, 아시아지역 선임 인프라 전문가로 활동하며 아시아·아프리카 내 민영화, 국영기업의 구조조정, 주요기반시설 운영 등을 담당했다. 국장 승진 전에는 물·위생프로그램(WSP) 담당 과장으로서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 개도국의 상하수도 개발과 위생지원 업무를 맡았다. “(사무직보다) 현장에 뛰어들어 일하는 게 좋다(I like to get my hands dirty)”고 했다.

소 국장을 포함해 170개국 출신의 다양한 문화·인종·젠더를 지닌 이들로 구성된 세계은행은 성평등과 다양성의 경제적 가치에 일찍부터 주목해 왔다. 2001년 금융경제 부문 성주류화 전략을, 2007년 구체적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국제금융기구 최초로 유엔 여성의 HeForShe 캠페인에 참여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현 CEO와 조이스 음수야 한국사무소 초대 소장 등 세계은행 고위 관리직의 42%가 여성이다. 2020년까지 고위 관리직의 절반, 2022년까지 핵심 실무직의 절반을 여성으로 채울 계획이다. 

세계은행은 조직 내 성평등 국제평가기준 ‘EDGE(Economic Dividends for Gender Equality)’ 1단계 인증을 받은 첫 국제금융기구이기도 하다. △동일임금 동일노동 △채용·승진 △리더십 개발훈련·멘토링 △유연근무제 △조직문화 부문에서 일정 수준의 성평등을 달성한 조직만이 이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IKEA), 미국 공영방송 PBS, 독일 IT기업 SAP 등이 같은 인증을 획득했다. 

숫자의 평등이 다는 아니다. 고질적인 젠더 불평등을 해소하고 “실력 있는 여성을 끌어들일 경쟁력을 갖추려면 할 일이 많다”. 세계은행이 다양한 보육 지원과 성평등 확산 정책을 꾸준히 추진·구상하는 이유다. 현재는 임직원 대상 출산·육아휴직 제도를 확대하고, 남녀의 휴가일수를 같게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아빠 육아휴직을 확대하고 장려하는 게 중요하다. 육아는 여성의 일이 아닌 남녀의 공동책임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고, 여성 경력단절 해소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소 국장은 말했다. 국제금융기구 최초로 직원의 입양이나 대리모 출산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점도 눈에 띈다. 

 

소재향 세계은행 트러스트펀드 담당 국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소재향 세계은행 트러스트펀드 담당 국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남녀 임금격차도 중요한 선결 과제다. 세계은행은 지난 30년간 직원들의 보수와 성과를 비교해 구체적인 임금 차별 실태를 분석하는 중이다. 올해 조사를 시작했으며, 차별이 있다면 시정할 방침이다. 성별에 따른 업무격차도 중요한 문제다. “중요한 일은 남성이 맡고, 꼭 필요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일들은 여성에게 돌아가는 경향이 있죠. 여성이 아무리 일을 열심히 잘 해내도 승진하지 못하고, 연차가 쌓여도 계속해서 인정받지 못하는 업무만 맡게 되죠. 세계은행의 관리자들은 여성 직원도 주목받는 업무를 맡을 수 있도록 (안배)해야 한다고 훈련받습니다.”

여성들의 커리어 개발을 위한 멘토링도 장려한다. “직무 평가 시 남성들은 ‘난 사실 그보다는 잘했다’며 자신을 변호하는 반면, 여성들은 ‘감사합니다’하고 끝내는 경향이 있어요. 여성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좀 더 협상하는 태도를 갖는다면 승진에 도움이 되겠죠. 매주 인사부에서 여성들을 위한 자리를 열고 이런 조언을 나눕니다.”

내부에선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여성은 되는데) 왜 나는 그 자리에 못 가느냐’며 불평하는 남성 직원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바로 과거부터 여성들이 처한 입장이거든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출발선에 설 수 있게 하는 조치일 뿐이죠.”

성평등 조직 문화가 뿌리를 내리려면 결국 관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소 국장도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저는 일이 아무리 많아도 정시에 퇴근하고 휴가를 챙겨 쉬는 모습을 직원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일을 집에 가져와서 하는 한이 있더라도요. 관리자는 롤 모델이 돼야 하니까요. 업무 시간 이외엔 이메일을 보내지 않아요. 드물게 보내더라도 제목에 ‘월요일까지 안 읽어도 됩니다’라고 씁니다. 직원들이 휴가원을 제출하면 꼬치꼬치 따져 묻지 않고 5초 내에 승인하죠. 다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휴가를 내는 거라고, 직원들을 믿고 존중하는 게 중요합니다.” 

직장 내 성평등과 다양성을 확립하기 위한 관리자급 대상 훈련도 꾸준히 받는다. 내용은 동일하지만 성별, 국적, 인종 등만 다르게 표기한 이력서를 받아 평가해 본 후, 결과를 스스로 점검하며 편견을 인식하고 시정하는 훈련 등이다. 

 

이렇듯 성평등 문화를 강조하는 조직에서도, 여성이 관리자로 일한다는 것은 또 다른 편견과 싸우는 일이다. “신입 직원들은 제가 상사인 걸 알면 걱정스러워하더라고요. 제가 일에 미쳐 결혼도 안 한 여성, 아이가 없어서 워킹맘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여성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대하는 이들이 있어요. 그래서 더욱더 직원들을 믿고 존중하며 모두를 공정하게 대하려고 노력합니다. 단지 훌륭한 상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 같은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지 않기 위해서죠.” 

직원수 1만2000명 규모의 세계은행이 성평등·다양성 정책을 시행해 성과를 거두기까지 10년 이상 걸렸다. 소 국장은 문재인 정부가 ‘초대 내각 여성 30%’를 공언한 점을 언급하며 “한국 정부가 (성평등 이슈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쉽지 않겠지만 목표를 달성해 나가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글로벌 여성 지원사업 예산 대폭 삭감, 유럽 내 극우파 득세 등은 글로벌 성평등 증진·협력이라는 청사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럼에도 “성평등은 과거엔 볼 수 없던 초국적이고 거대한 흐름이며,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고 소 국장은 말했다. “이건 단순히 특정 성별의 문제가 아닙니다. 함께 더 잘 살 수 있는 미래를 위한, 모두의 과제죠.”

소재향 국장 주요 경력

UN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2030 어젠다’ 본부 임원 (2017년 7월 – 현재)

세계은행 트러스트펀드 담당 국장 (2014년 2월 – 현재)

물·위생프로그램(WSP) 과장 (2008년 – 2014년 2월)

South Asia Urban & Water Sector Unit 선임 전문가 (2005년 – 2007년)

사무총장 (Managing Director) 보좌관 (1999년 – 2004년)

세계은행 입행 (Young Professional Program, 1992년)

미국 스탠포드대 경제학 학사·경영학 석사(MBA)

수상 경력 

‘성평등 진흥 유공자’ 선정돼 국무총리 표창 (2017년)

세계은행 직원협의회에서 ‘좋은 매니저상’ 수상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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