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발생 후 해당 직장에서

퇴사한 피해자 80% 달해

재직 중인 피해자는 28%

회사에 성희롱 문제 제기로

“불이익 조치 당했다” 57%

성희롱은 인권·노동권 침해

피해자 보호·2차 불이익 막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필요

 

회장이 수시로 데이트를 요구했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라 거절하기 어려웠다. “스폰서가 되어 주겠다”고 하면서 애인이 되어 주기를 강요했다. 수시로 이런 일이 발생해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그리고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했다. 그런데 회장이 고용노동부에 출석했더니 근로감독관이 “어차피 과태료를 받아도 200만 원 정도 나올 것이다”라고 했다면서 합의를 해도 그 이상 줄 수 없다고 했다.

직장 내에서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들의 상당수가 퇴사로 내몰리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 특히 20~30대의 젊은 노동자나 근속연수가 짧은 비정규직 등 사회 약자들인 경우가 많아 일을 잃으면서 생계가 어려워지는 악순환도 발생한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30년을 맞이해 전국 15개 지역에서 고용평등상담실을 운영하는 여성단체들과 이용득 의원이 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보호 및 실효성 강화를 위한 법 개정 토론회에서 이같은 피해 실태가 발표됐다.

서울여성노동자회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 내담자들을 대상으로 불이익 조치 경험을 설문조사를 실시해 응답한 결과에 따르면 성희롱 발생 후 해당 직장에 재직 중인 피해자는 103명 중 28%에 불과했다. 즉 피해자의 72%가 퇴사를 했으며 퇴사한 피해자 중 80%가 6개월 이내에 그만 뒀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직장 내에서 성희롱 문제를 제기해 회사로부터 불이익 조치를 당했다는 응답은 57%에 이른다. 이중 파면이나 해고 등 신분상의 불이익 조치를 당하는 경우가 53.4%, 징계나 정직· 감봉·강등·승진 제한 등 부당한 인사조치를 당한 경우가 19%, 전보·전근·직무 미부여·직무 재배치 등 인사조치가 29.3%, 성과평가 또는 동료평가 등에서 차별과 임금차별 20.7%, 집단 따돌림, 폭행 또는 폭언, 정신적 신체적 손상이 53.4%에 이르렀다. 피해자는 이러한 문제를 겪는 과정에서 퇴사를 하게 된다.

직장 내 성희롱 행위자는 61%가 상사, 23%가 사장, 14%가 동료의 순으로 나타났다. 상사와 사장에 의한 성희롱이 전체의 84%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다. 이는 직장 내에서의 우월한 지위가 성희롱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신상아 서울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 실장은 “직장 내 성희롱은 여성노동자들의 인권침해임과 동시에 안전하게,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노동권에 대한 침해”라면서 처벌 강화를 촉구했다. 그는 “현행법상 사장에 의한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처벌조항은 미비한 수준이다. 사업주에 의한 성희롱은 내부 징계도 불가능하고, 고용노동부에 진정 시 사업주에게 부과되는 과태료 수준 또한 높지 않아 사업주에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여러 피해자를 실제로 상담하고 변론을 해온 배수진 변호사는 “성희롱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가해자와 분리되고 안전한 근로 환경에서 계속 근무하는 것이기에 피해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그러다 보니 장기간 성희롱 피해에 노출되고 직장을 잃게 되는 건 둘째치고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오랜 시간 감내하도록 강요받는다”면서 “이같은 특수성으로 인해 성희롱 피해자를 보호하는 조치는 매우 절실하고 실효성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참석자들은 남녀고용평등법을 개정해 피해를 예방하고 피해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윤진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고용평등상담실장은 법 개정에 포함돼야 할 내용으로 △직장 내 성희롱 예방을 위한 의무 조치를 신설해 최소한의 기준 마련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시 조치 규정을 개정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2차 불이익을 차단 △고객과 거래처 관계자 등 제3자에 의한 성희롱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게 강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뿐만 아니라 조력자 등에 대한 불리한 조치 금지 조항 신설하고 보호조처를 강화 △벌칙·벌과태료를 상향 조정해 사업주의 책임성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엘림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국제적으로 남녀고용평등을 실현하는 방법에는 성차별과 성희롱의 방지, 적극적 조치의 실현, 모성보호와 돌봄노동 지원(일과 가정의 양립 지원)이 있다”면서 “법 개정시 현행법의 제1조 목적 조항에 성차별과 성희롱을 방지해야 함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또 성희롱을 한 사업주에 대한 과태료 금액을 상향시키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성희롱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말하는 성폭력 범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 행위자는 성폭력범죄자로 처리된다는 조항을 넣어 성희롱을 성폭력범죄로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수현 국가인권위원회 여성인권팀장은 “군형법은 일반 형법보다 성폭력 범죄를 더 강하게 처벌하게 돼있다”면서 “직장 내 성희롱도 피해자가 저항하기 힘든 특수성 등을 고려할 때 사업주가 가해하면 과태료 처분보다 더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김 교수는 성희롱 사업장 명단을 공표하자는 의견을 보탰다. 성평등기본법에 성희롱 발생 사업장을 언론에 공표할 수 있는 근거가 있으므로, 남녀평등고용법에도 추가하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다.

이에 김종철 고용노동부는 여성고용정책과 과장은 “1998년에 남녀고용평등법이 마련되고 2008년도에 적극적고용개선조치(AA)가 도입됐으니 2018년도에 발의된다면 의미있는 흐름으로 본다”고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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