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유일 여성 군사전문기자 활약

천안함 특종 ‘최은희 여기자상’도

“아직 현장 지키니 큰 행운이죠”

 

해군 성폭력, 여군 자살 “안타까워”

“국방부, 양성평등의식 더 요구돼”

 

최근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만난 최현수 군사전문기자는 “‘역시 여기자는 안돼’ 말이 나올까봐 스스로 엄청 닦달하며 지냈다”며 웃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최근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만난 최현수 군사전문기자는 “‘역시 여기자는 안돼’ 말이 나올까봐 스스로 엄청 닦달하며 지냈다”며 웃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국방 분야는 같은 사건이 터진 것 같지만 매번 새롭죠.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갈수록 높아져서 그런지 여전히 공부할 것도, 가봐야 할 곳도 많아요.”

국내 첫 여성 군사전문기자인 최현수(57) 국민일보 군사전문기자는 역시 현장 기자다웠다. 기자 경력 30년에 군사전문기자만도 9년차인 그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주변에서 때때로 그를 한국의 헬렌 토머스에 빗대는 이유가 살짝 짐작이 갔다.

헬렌 토머스. 50년간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한 미국의 최장수 백악관 출입기자다. 언제나 백악관 맨 앞줄에 앉아 있는 여성 기자였던 토머스처럼 아직 ‘남초’인 국방부 브리핑룸 맨 앞줄에 최 기자가 앉은 지도 벌써 15년 전이다.

1988년 창간 멤버로 입사해 국제부와 사회부, 생활과학부, 정치부를 두루 거친 후 2002년 여성기자로는 처음으로 국방부 상주 출입기자가 됐다. 당시 김동신 국방부장관이 “창군 이래 처음으로 오는 여기자인데 국방부에 플래카드라도 걸어드릴까요?”라고 물었을 정도다. 스포트라이트든 사시의 시선이든 그렇게 주목을 받고 진입장벽을 넘었다. 국방대 안보과정을 수료한 뒤 1년간 국방부 출입을 지속하다 경제부와 탐사기획팀장 등을 지낸 후 2009년 국내 첫 여성 군사전문기자로 국방부 출입을 다시 하고 있다. 지금도 여성 군사전문기자는 그가 유일하다.

현재 60여명의 국방부 등록기자 중 가장 나이가 많다. 최근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만난 최 기자는 “이 나이 기자로 현장을 지킨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하드보일드한 영역인 국방·군사 기자는 외모도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건 역시 편견이었다. 동안에 웃는 얼굴이 편안했다. 첫인상을 전했더니 “기자로도 사실 잘 안 본다. 취재원들 사이에선 ‘부드럽게 다가온다고 만만히 보지 마라, 다 털어놓지 마라’는 평이 돈다더라”며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2002년만 해도 군대 경험이 없는 여성기자가 국방을 취재한다는 것은 금기였어요. 직접 해보니 독특한 군사 용어나 작전 개념, 복잡한 무기체계 등은 낯설어서 따로 공부했지만 유독 어려운 취재처는 아니었죠. 보안에 우선순위를 둔 국방부와 군 특유의 폐쇄적인 취재 환경은 여기자든 남기자든 똑같거든요.”

최 기자는 “때로 희소성 덕에 배려 받는 이점이 있더라”면서도 “한 명 있는 여기자가 기사를 틀리게 쓰거나 물을 많이 먹으면(낙종) ‘역시 여기자는 안돼’ 말이 나올까봐 스스로 엄청 닦달하며 지냈다”고 했다.

그가 국방부를 출입한지 서너해 후 타사에서 여성기자가 출입했고 한때는 9명까지 늘었다. 그는 “여기자를 10배 늘렸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국방부 출입은 국방부뿐 아니라 합동참모본부, 육‧해‧공, 해병대 등 각 군을 취재하고 병사들의 급식과 피복 병영생활부터 무기체계 획득까지 ‘작은 정부’라고 할 만큼 취재 범위가 넓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요. 북한의 도발과 사건사고가 빈발해 한시도 긴장감을 내려놓지 못하는 곳이죠. 적성에 맞으면 매력적인 출입처라 후배들에게 힘들어도 꼭 한번 해보라고 권하죠.”

 

최현수 기자가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취재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최현수 기자가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취재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최 기자는 7월경 『한반도에 사드를 불러들인 북한 미사일』(공저)을 출간할 예정이다. 북한 미사일을 중심으로 세계 미사일 현황과 미사일의 역사, 미사일 구동 원리 등을 다룬 ‘미사일 백과사전’이다. 펜기자면서 방송 진행도 꽤 오래 했다. 지금은 국방TV 시사토론프로그램 ‘국방포커스’를 5년째 진행하면서 복잡한 국방 사안을 명쾌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2002년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던 러포트 사령관을 단독 인터뷰했다. 한국 언론이 주한미군사령관을 인터뷰한 것은 수십년 만에 처음이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이 터졌을 때 ‘김태영 국방부 장관 속초함 발표 지시’ ‘천안함 연돌에서 RDX 발견’ ‘한글 새겨진 어뢰 추진체 발견’ 등 단독‧특종기사를 썼다. 당시 발굴한 특종 덕에 2011년 최은희 여기자상과 ‘올해의 여기자’상도 받았다. 그의 칼럼은 각 군 사관학교 수업시간에 활용되곤 한다.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가 가야 할 길을 물었다. 최 기자는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끊임없이 강대국의 간섭을 받아왔다. 지금은 동아시아의 지형 변화가 진행되는 상황이라 정확한 분석과 세련되고 정교한 외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아시아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의 길항 작용은 격화되고 전쟁을 수행할 보통국가로 나가려는 일본의 야심은 노골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 기자는 “러시아 역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위해 부심하고 있다”며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방정식을 풀려면 냉철한 분석과 잘 계산된 행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얼마 전 해군 대령이 직속 부하 성폭행 혐의로 구속됐다. 피해자인 여군 대위가 자살한 ‘제2 오혜란 대위’ 사건이었다. 최 기자는 “군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절실하다. 우선 지휘관들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군은 극한 상황에서 일체화된 전투 의식이 필요해 양성평등의식이 어느 곳보다 요구된다. 특히 성폭력이 한 사람의 인생을 처절하게 파괴한다는 점을 철저하게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 생활을 하는 내내 여군이 1만명을 넘고, 활동 영역도 넓혀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최 기자는 “전쟁 양상의 변화와 병력자원절벽 현상으로 여군 활동 범위가 더 넓어질 것”이라며 “국방부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여군 스스로 치열하게 전문성을 기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군 진출이 제한된 분야는 이제 거의 없다. 열려진 공간에서 확실히 능력을 보여주고, 군 발전을 위해 더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는 최근 벌어진 해군 성폭력 자살 사건과 관련, “군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절실하다. 우선 지휘관들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최현수 군사전문기자는 최근 벌어진 해군 성폭력 자살 사건과 관련, “군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절실하다. 우선 지휘관들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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