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은형 한국여성경제학회장

경제부 기자 출신 여성 리더십 연구자

성별임금격차,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문제와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로 발생

민간기업 여성임원 30% 의무화 10년 목표 제시해야

“여성에게 임원 자리 시혜 베풀 듯…경영학적 오류”

 

한국여성경제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은형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여성경제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은형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경제학자 또는 젠더관점의 연구교류 네트워크인 ‘한국여성경제학회’가 올해로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성년의 나이가 된 학회는 오는 6월 29일부터 전세계 여성주의 경제학자 200여명이 참석하는 세계여성경제학회(IAFFE·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Feminist Economists)를 개최한다. 페미니즘 경제학 도서 ‘보이지 않는 가슴’을 집필한 낸시 폴브레 매사추세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도 IAFFE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지난 3월 제13대 한국여성경제학회장으로 취임한 이은형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4월 여성경제정책포럼을 열어 새 정부의 저출산정책을 제시한 후 세계여성경제학회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에게 여성주의 경제·경영학적 관점의 저출산 문제를 비롯해 성별임금격차 해소방안, 기업의 유리천장 문제 등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이 학회장은 2001년 교수로 부임하기 전까지 다소 독특한 길을 걸어왔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 후 1991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경제부 기자로 일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시작되면서 KDI(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영문으로 경제·경영학 공부를 시작했다. “경제부 기자로서 자괴감이 컸다”고 했다. 그때 산업자원부는 국내 경제 상황을 취재를 위해 대폭 늘어난 한국 주재 외국 언론사 기자를 상대하기 위해 외신대변인을 채용했고 그가 낙점됐다. 한국의 정책을 설명하고 한국 특유의 경제구조를 외신 기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IMF관리 체계가 끝난 후 공직을 떠나 공부를 더 한 후 교수로 자리잡게 됐다.

저출산정책은 성인지적 관점에서 출발해야

여성주의 경제학의 역사는 길지 않다. 세계여성경제학회는 1991년, 한국여성경제학회는 6년 뒤 설립됐다.

“불과 20년 전인데 여성 경제학자도, 여성주의 경제학자도 많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30명으로 시작했어요. 당시 여성이 경제학·경영학을 공부하고 나서 대학에 자리 잡는 건 거의 불가능했죠. 그래서 기업체 연구소 등에 흩어져 있었는데 저의 은사인 정옥자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님이 전국여교수협의회장을 하면서 국립대 교수 여성 할당제를 도입시켰고 점차 확산되면서 여성 교수가 늘어나는 계기가 됐어요.”

학회에는 현재 200명이 넘는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여성경제정책포럼을 연 4회 열고 있고 정책결정자들 ‘여성경제활동연구’ 학술등재지를 발간하고 있다. 젠더 관점에서 보는 경제학, 일·가정양립, 여성 경제 활동을 연구하고 있다.

회원들이 중점적으로 연구해온 분야 중 하나가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사회 시스템이다. 이를 위해 여성의 경제활동의 가치가 경제학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규명하고, 이를 근거로 국가 제도적으로 일과 가정 양립이 가능한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의미하는 경제적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가슴’도 경제학적 가치를 인정하고 경제학 이론에서 함께 고려해 균형잡힌 시각에서 교육해야 한다는 거죠. 여성이 주로 해온 가사노동과 돌봄이 사회·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오늘날 와서는 기피하는 대상이 돼버렸어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나타난 사회 현상이 저출산입니다. 결혼으로 이어진 거죠. 결혼을 해서 치러야 할 비용과 혜택을 계산하게 되는데 타당하지가 않은 거죠.”

여성이 가방끈이 길어지면서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책임자의 발언도 비판했다.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한 거라 하지만 잘못된 접근입니다. 애를 낳는 것도 여성이고 기피하는 것도 여성이라는 식은 전형적인 남성중심적인 시각이죠. 그런 사고방식으로 접근해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여성이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를 가정-사회-국가로 확장해서 봐야 해요. 유기적이고 입체적으로 원인을 파악해야죠. 여성이 아이를 낳는다 해도 자기 일을 포기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양자택일을 하게 되면 출산율이 떨어지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나타나요. 확실한 것은 일을 선택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는 거예요. 합계출산율 2.0명을 넘긴 북유럽이 성공 사례죠. 경력단절 없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하려면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는 것을 자괴감, 상실감이 들지 않게 하는 국가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아빠의 출산휴가, 육아휴직은 물론이고요. 출산과 육아를 지원하면 여성이 경력단절을 피할 수 있게 되고 임원으로 올라갈 기회도 커지니 유리천장도 해소될 수 있습니다. 대신 육아 지원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을 국가가 지원해야죠.”

 

이은형 한국여성경제학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은형 한국여성경제학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성별임금격차 뿌리는 경력단절…국가가 기업 지원해야”

여성계가 강력하게 제기하는 문제 중 하나가 성별임금격차다. 한국이 유독 격차가 큰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반대로 생각해본다면, 한국 여성이 유독 남성에 비해, 세계적으로 열등해서 그런가”라고 반문하며 “제도적, 문화적으로 막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남녀임금격차 논쟁은 굉장히 복합적이고 통계학적으로도 정밀하게 측정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지표를 기준으로 설명했다.

“한국은 여성이 36.3% 덜 번다고 해요. 먼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즉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차별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 후 봐야 할 게 우리나라 임금격차 발생 구조예요. 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발생합니다. 그 다음 문제가 정규직과 비정규 종사자의 임금 차이고요.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에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이 분포하죠.”

이 같은 결과가 드러나는 것이 여성경제 활동의 ‘M자 곡선’이라고 강조했다. 출산과 육아로 여성의 취업률이 떨어졌다가 다시 취업을 할 때 중소업체나 비정규직으로 저임금에 취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별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유연근무제, 육아휴직제를 적극 사용해서 노동시장 밖으로 이탈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새 정부 경제·일자리 정책은 신설보다 실행에 방점을

새 정부가 성 불평등한 경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해야 할 정책으로는 또 무엇이 있을까. 이 학회장은 출산·육아휴직, 가족친화경영인증 등 이미 많은 정책이 도입된 상황이기 때문에 중요한 건 실행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이번 정부가 여성임원 할당제를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했다.

“우리와 늘 꼴찌를 다투던 일본이 아베 총리가 민간기업 할당제를 법으로 만들어 성공했어요. 지난 5월 발표된 ‘세계여성지도자회의(Global Summit of Women)’ 자료에 이사회의 여성 비율이 일본 6.9%, 한국 2.4%로 나타났습니다.”

국내 민간 기업은 할당제 의무화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CEO스코어가 기업 CEO를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찬성한다는 비율은 31.8%에 그쳤다.

“할당제를 밀어붙이면 기업도 거부감이 크고 부작용도 있을 거예요. 저는 10년 내 30% 달성 목표를 제시하면 실현가능하다고 봅니다. 모든 기업에 대해 무조건 적용하긴 어렵지만 강력한 권고 규정을 만들고 벌보다 상을 주는 방식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이 학회장은 할당제 시행에 앞서 중요한 것은 관점의 변화라고 강조했다.

“기업이 여성에게 임원 자리를 주는 것이 비용이나 손해라 생각하고 마치 시혜나 베푸는 듯이 하죠.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3가지 관점에서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여성이 있어야 해요.”

먼저, 여성이 인구의 절반이고 소비의 대다수를 여성이 결정하고 있는데 여성을 배제한 의사결정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 두 번째로 창의적 해결 능력이 중요한 시대에 다양성이 중요한데 비슷한 배경·학력끼리 모이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 여성 임원이 없으면 하위직 20~30% 정도를 차지하는 여성 직원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적자원의 낭비요소라고 했다.

 

이은형 한국여성경제학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은형 한국여성경제학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일간지 기자, 외신 대변인, 교수…배수의 진 치고 도전

이 회장은 유리천장이 한번 뚫리면 확장성이 상당히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것을 스스로도 경험했다.

“저는 국민대 경영대학의 첫 여자 교수였어요. 외로운 섬 같은 존재죠. 후에 한 명이 더 늘었는데 삶의 질이 크게 바뀌더라구요. 어디가 됐든 여성이 한명만 있으면 구색 맞추기 같고, 불편한 존재일 뿐이죠. 그러나 조금 더 늘어나면 힘을 갖는 오피니언이 되고 그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해요. 스탠포드 의대 신경외과 의사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고 하죠.”

섬 같은 존재를 각오하고 대학에 들어오기까지 그는 주요 일간지 기자, 정부 부처의 공무원 등 떨쳐내기 힘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수차례 맞딱드린 선택의 기로에서 아쉬움이나 두려움은 없었을까. 진로를 고민하는 제자들에게 그는 어떤 말을 들려줄지 내심 궁금했다.

“안주하기보다 도전하고 성장시키는 욕구가 강한 것 같아요. 직장을 그만둘 때마다 주변에서는 파워풀하고 프라이드 높은 직업인데 아깝다고 다들 말렸어요. 선배 기자는 퇴직 대신 휴직을 권하고 공부할 것을 권하기도 했고, 시어머니는 ‘애가 공부해야지, 왜 네가 공부하느냐’고 하셨어요. 공무원 생활도 생각보다 체질에 맞았고요. 그렇지만 뒤를 두지 않는 성격이에요. 뭐가 될지 모르지만 열심히 하다보면 새 길이 보일 것이라고 믿었어요. 다행히 배수의 진을 친 것에 보상이 따랐고 주변의 도움도, 운도 좋았어요.”

제자나 후배들의 멘토로 종종 활동하는 이 학회장이 어떤 말을 해주는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좌고우면하고 여지를 남기고, 미적미적하다보면 기회가 열렸을 때 낚아챌 수 있는 준비가 잘 되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요. 무조건 배수의 진을 치고 덤비라고 말하진 못하지만, 무언가를 바꾸려 한다면 치열하게 준비했으면 합니다.”

 

이은형 교수 약력 

1963년생 △1987년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1999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석사·2005년 박사 △1991년 경향신문 기자 △1998년 산업통산자원부 외신대변인 △2005년~ 국민대 교수 △2017년~ 한국여성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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