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디에도 없는 이화만의 엘텍공대·마곡병원 만들겠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이화만의 엘텍공대·마곡병원 만들겠다”
  • 박길자 기자
  • 승인 2017.06.06 12:18
  • 수정 2017-07-10 0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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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과 화합, 치유에 힘 쏟을 것”

‘청문회 눈물’… 학생들 압도적 지지

 

“익명청원제 곧바로 시행할 것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 중단

없도록 장학금, 국가보조 정비”

엘텍공대‧마곡병원, 새로운 실험

 

김혜숙 이대 신임 총장은 “혁명하듯 다 없애는 게 먹히지도 않고, 효과적이지도 않다”며 “구성원을 억지로 미는 게 아니라 난상토론을 벌여 여자대학으로 어떻게 살아남을지 이야기하고 비전을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혜숙 이대 신임 총장은 “혁명하듯 다 없애는 게 먹히지도 않고, 효과적이지도 않다”며 “구성원을 억지로 미는 게 아니라 난상토론을 벌여 여자대학으로 어떻게 살아남을지 이야기하고 비전을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대생들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 박근혜 정부의 민낯을 드러냈다. 하나의 폭탄과도 같았다. 이후 사태는 최-박 게이트와 탄핵, 조기대선으로 흘러갔고 문재인 정부 탄생으로 끝맺음을 했다. 지난해 여름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반대 시위 이후 이대는 활화산 속에 있었다. 학생들이 꽃피운 ‘달팽이 민주주의’는 최경희 총장의 사퇴와 구속, 김혜숙(63·철학과) 총장의 당선으로 또 다른 시작을 맞았다.

창립 131주년 기념식 겸 16대 총장 취임식을 마친 김 총장과 마주앉았다. 다소 긴장한 표정의 그는 “1년 가까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상황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더라. 인수위 없이 취임한 문재인 정부처럼 방패막 없이 서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사회의 최종 승인을 받고 5월 26일 오후 3시 인수인계를 받았다. 지금 인터뷰하는 시간이 2일 오후 3시니 딱 일주일 지났다. 기쁨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전임 총장이 안 좋은 상태에 있는데 마냥 좋아할 수만도 없고….”

-전 구성원 직선제 총장은 이대 131년 역사상 처음이다. 득표율이 57.3%다. 학생 유효투표수 9835표 중 무려 9384표(95.4%)를 얻었다.

“지난해 미래라이프대학 사태 후 학생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특별상담실에서 여전히 치료 받고 있다. 학생들이 자기네 이야기 들어주는데 약간 굶주려 있더라. 총장으로 제가 우선 해야 할 일이다. 교수·학생·직원·동문의 4자 협의체 구성은 아주 새로운 모습이다. 막연히 누가 학교 주인이냐고 하는데 이를 4자 개념으로 구체화시켰다. 상설화는 또 다른 부담이 되니 일이 있거나 한 학기에 한 번 편안히 만나는 형식이 좋다. 대학평의원회 중심으로 일을 제도적으로 처리하겠다.”

-취임사를 읽고 가슴 찡하다는 사람들이 많더라. 무엇을 담고 싶었나.

“우리가 쫓아가야 할 대학은 없다, 길을 내야 하는 대학이란 걸 강조하고 싶었다. 서울대, 연·고대 쫓아서 가고 외국 대학을 입에 올리면서 가는 방식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스카이대학에 밀리고 그 아래 머물 수밖에 없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여자대학이라는 이야기를 한 이유다.”

-스크랜튼대학 초대 학장의 경험치도 전했다.

“당시 새로운 실험을 많이 했다. 교육프로그램도 새롭게 창안했다. 이후 다른 대학들이 앞다퉈 스크랜튼대학을 벤치마킹했다. 이화의 힘은 남이 걷지 않은 길을 걷는 데서 나온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자니 불안이 따르지만 새로운 도전을 해야 살아남는다.”

김 총장은 “장기적 비전이나 발전계획을 고민하고 있다”며 “제가 내건 공약 가운데 일정 수의 청원이 들어가면 반드시 답변하는 익명청원제는 쉽게 사이트를 구성해서 할 수 있다. 국가로부터 받는 지원 사업을 총괄하는 기구도 만들어 전체를 조정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또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장학금, 국가보조 등 제도를 정비할 방침이다. 김 총장은 선거 당시 해법으로 생활비 장학금 다양화, 근로 장학금 확충, 대학원 조교장학금 증액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김혜숙 신임 이대 총장은 구성원과의 미래비전 공유에 강한 신념을 보였다. 또 익명청원제나 단과대학 자율성 확보 등으로 개혁의 키를 쥐고 가겠다고 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혜숙 신임 이대 총장은 구성원과의 미래비전 공유에 강한 신념을 보였다. 또 익명청원제나 단과대학 자율성 확보 등으로 개혁의 키를 쥐고 가겠다고 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 총장은 구성원과의 미래비전 공유에 강한 신념을 보였다. 또 익명청원제나 단과대학 자율성 확보 등으로 개혁의 키를 쥐고 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혁명하듯 다 없애는 게 우리 학교에선 먹히지도 않고, 효과적이지도 않다”며 “구성원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면서 억지로 미는 게 아니라 난상토론을 벌여 여자대학으로 어떻게 살아남을지 이야기하고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전의 여자대학 모습은 지금 시대에선 유효하지 않다. 지금 여학생들이 남녀공학의 50%가 넘는다. 하다못해 법대, 의대도 그렇다. 이대는 집단 지성의 커뮤니티로 기존의 지식 패러다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기반을 갖고 있다. 물리학을 여자들이 한다고 달라지냐고 이야기하겠지만 그런 물음조차도 힘 있게 제기할 수 있다. 이제 막 발을 내디딘 엘텍공대와 새로 문을 열 마곡병원은 이화의 미래를 향한 중요한 실험이다. 인문, 사회, 자연, 예술 분야에서 이화의 강점을 기반으로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이화만의 엘텍공대와 마곡병원을 만들어가겠다.”

이대는 올해 세계 첫 여성 공과대학인 공과대학을 확대 개편한 엘텍(ELTEC)공대를 출범시켰다. 내년 말이면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첨단 글로벌 새 병원이 완공된다.

김 총장은 “우리 사회와 직접 만나는 프런트라인에 공학, 의학이 있다. 직접적으로 자기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는 실천적인 학문”이라고 말했다. “미래사회는 기술과학이 아예 일상에 들어와서 인간 존재까지 변화시킨다. 인공지능이나 사이보그 출현이 그렇다. 이대가 새로운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들의 집단이라고 봤을 때 공학과 의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크다. 새로 출범하는 마곡병원이나 엘텍공대가 안착하는 게 성공의 가늠자다. 여타의 공과대학이나 병원과 똑같이 경쟁해선 길이 안 보인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야 한다.”

김 총장이 가야 할 길은 멀다. 꼬인 매듭을 풀려면 첫 단추가 어떻게 잘못 꿰어졌는지 짚어야 한다. 그는 미래라이프대학 사태의 원인을 어떻게 진단할까.

“이화를 이끌었던 동력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간결한 답변이다. 가모장제 이대문화나 이화학당의 봉건적 지배체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시대가 변하면 그 시대정신과 같이 가야 하는데 한쪽은 변화하는데 한쪽은 머물러 있으면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물론 절대적으로 악하고 절대적으로 선한 것은 없다. 다만 소셜네트워크(SNS) 세대인 학생들은 자기표현 욕구가 강하고 개인적인 표현에 주저함이 없는데 학교 시스템은 여전히 낡은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 거기서 온 소통 단절과 이해 부족이 불가피하게 문제를 낳았다고 본다.”

 

김혜숙 신임 이대 총장은 “이화를 이끌었던 동력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며 “남성중심사회에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가모장 덕이다. 하지만 폐쇄성과 배타성을 갖게 되면서 소통 단절이 불거졌다. 그게 미래라이프 사태를 최정점으로 터졌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혜숙 신임 이대 총장은 “이화를 이끌었던 동력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며 “남성중심사회에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가모장 덕이다. 하지만 폐쇄성과 배타성을 갖게 되면서 소통 단절이 불거졌다. 그게 미래라이프 사태를 최정점으로 터졌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동력이 부메랑이 됐다는 비유가 인상 깊다.

“엘리트적인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중심이 돼 유대감과 친밀감을 가지고 이대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가모장 덕이다. 누가 더 이화를 더 사랑하느냐 같은 경쟁이 됐다. 이화가 나와 분리가 안 되는 것이다. 가모장은 그럴 수 있다. 적절하게 합리성을 유지하고 객관화시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는 작은 규모였고…. 똘똘 뭉쳐서 왔지만 폐쇄성과 배타성을 갖게 되면서 소통 단절이 불거졌다. 그게 미래라이프 사태를 최정점으로 터졌다.”

그러면서 김 총장은 유신시대 이야기로 거슬러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며 ‘유신의 끝’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저는 유신 세대다. 어려서부터 대통령은 그냥 박정희가 동의어라고 생각하고 자란 세대다. 대학생이 돼서야 유신 체제의 부정적인 모습을 경험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우리가 역사를 이런 식으로 반복해도 되나 싶었는데 유신정권의 잔재가 탄핵과 구속으로 마무리되더라. 숙명이나 운명보다 시대상황이 그렇게 흘러갔다. 이대 역시 마찬가지다. 이화를 이끈 동력이 발전을 저해했다. 우리 커뮤니티 안에서 민주화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제는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시대다.”

-미래라이프대학 사태로 터졌듯 국가프로젝트 재정 지원 사업이 문제가 많다.

“대학들이 재정 문제 때문에 국가프로젝트 재정 지원 사업을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어 총장들이 압박감을 심하게 받는다. 최경희 전 총장이 의욕에 넘쳐 일을 추진하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나.”

-취임식 날 공교롭게도 이대 부정입학, 특혜 혐의로 정유라 체포영장이 집행됐고 최 전 총장은 징역 5년 구형을 받았다.

“학교 입학 부정에서 최순실 사태로 비화됐는데 단지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문화 전반의 문제다. 관행으로 해온 일이 공정성의 원칙을 위배했고 이제는 관행이 바뀌어야 하는 시대다. 대학들이 입학제도에서 공동의 정책을 취하는 방식으로 연대하고, 초중고 예‧체능 교육에 부정은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면 잘못된 문화를 바꿔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김 총장은 이대가 겪은 시련이 대학 역사에서 굳은 땅을 만드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제가 미력하나마 그 일을 하겠다”며 “시련을 겪는 만큼 깊이 반성하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원인을 점검하고 미래 이화의 발전 동력으로 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화정신은 곧 자유다. 초창기에 지적 계몽이 여성에게 자유를 준다는 기치로 출발했고, 1970년대 엄혹하던 시절 여학생들이 잔디밭에 누워 있을 수 있던 유일한 대학도 이대였다”며 모교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저도 다른 대학에 갔다면 여기까지 못 왔다. 대학 때 천방지축 이런저런 시도를 한 것도 여자대학이라 가능했다. 나를 키운 곳이 모교이고, 지금 학생들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도 내 청춘을 만나는 것 같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김혜숙 이대 신임 총장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이대 대학원 기독교학과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미국 시카고대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각각 받았다. 1987년부터 현재까지 모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총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한국철학회 첫 여성회장, 한국인문학총연합회 대표회장 등을 지냈다. 특히 이화여대교수협의회 공동회장을 맡아 개교 130년 사상 최초의 교수 시위를 주도했다.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대 학생들의 학내 시위와 경찰 진입 동영상을 보고 눈물을 흘려 화제를 낳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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