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여성살해사건 후 1년

우리 사회는 변한 게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글 썼다고

떼로 몰려와 테러하고, 죽인다고

협박하는 건 입 막기 위한 것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50여 개의 여성단체들로 구성된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1주기 공동행동’이 5월 17일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주기를 맞아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을 상징하는 천을 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50여 개의 여성단체들로 구성된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1주기 공동행동’이 5월 17일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주기를 맞아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을 상징하는 천을 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작년 5월 한 남성이 강남역 화장실에서 여성을 살해했다. 다들 알다시피 여성들은 이 사건에 같이 울었고, 또 분노했다. 여기서 남성들이 해야 할 일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억울하게 죽은 여성을 추모해 주는 것 그리고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것, 이 정도가 같은 나라,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의 도리였으리라.

하지만 일부 남성들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그들은 이 범죄가 정신질환자의 소행일 뿐 여성혐오의 결과가 아니라고 우겼다. 정신질환자의 여혐도 엄연히 ‘여혐’일진데, 왜 남성들은 그게 여혐범죄가 아니라고 우기는 것일까. 여혐범죄임을 인정해 버리면 평소 여혐에 찌들었던 자신들도 그 죽음에 책임이 있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앞으로 여혐을 하는 데 지장이 생겨서일까.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은 강남역에 나갔다. 그들이 강남역에 나간 것은, 그리고 추모 포스트잇 위에 여성들을 공격하는 글귀가 적힌 포스트잇을 붙인 것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찍어 누르기 위해서였다. 남성들에게 여성은 욕을 해도 그저 들어야 하고, 때리면 맞아 줘야 하고, 성을 요구하면 몸을 대줘야 하는 그런 존재인데, 그들이 모여서 목소리를 낸다? 남성들은 이런 상황을 참을 수 없었고, 억울한 죽음을 추모하는 자리에 나가 훼방을 놓았다. 하지만 코미디의 절정은 다음이었다. 남성들이 강남역에 전시해 놓은 화환을 보면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남자라서 죽은 천안함 용사들을 잊지 맙시다.”

그들에게 천안함은 여성의 성난 목소리를 잠재우는 데 이용될 수 있는 무엇이었다. 이렇듯 남성들은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여성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있다.

인터넷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여성들만 이용할 수 있게 한 극소수의 공간을 제외하면, 인터넷은 남성들의 놀이터다. 실제로 네이버는 기사에 댓글을 단 사람을 성별, 연령별로 분류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거의 대부분의 기사에서 남성의 비율이 70% 이상이다.

특히 남녀문제를 다룬 기사에서 남성들은 굳건한 단결력을 보이는지라 여성이 감히 끼어들 수가 없다. 행여 반대하는 댓글을 달았다가는 엄청난 욕을 들어먹고 신상까지 털릴 수 있어서다. 인터넷이 여혐의 공간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덕분이다. 2016년 5월 H님은 자신의 블로그에 강남역 살인사건에 천안함 추모화환을 보낸 남성들을 비판했다. “천안함 용사들을 여자가 죽였습니까? 여자가 남자들이 싫어서 천안함 용사들을 죽였냐구요? (중략) 맨날 뭐만 하면 그놈의 군대. 여자도 군대 보내달라고 국방부한테 요청하세요.”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남성들은 이런 개인 블로그의 글조차 용납하지 못했다! 여기 달린 댓글을 몇 개만 소개하자.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되죠. 남자니깐 군대에서 죽으면 당연하나요? 나라지키다가 순직한 젊은 청년들처럼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나라가 안전하고 지금처럼 사는 겁니다.

-화환과 장소가 맞지 않아 비난받을 만하긴 한데 글쓴이분 생각이 엄청 위험한 분이네요~ 모르는 사이라 너무 다행이네요 ㅋ

이것도 충분히 뜬금없지만, 절정은 다음이다.

“남녀평등이니 그딴 개소리 짓거리지마 ㅅㅂ년아 주둥짝 찢어버리기전에ㅡㅡ 블로그에 이딴 엿같은 글 올리고 무섭지도 않아? 내가 니 찾아가면 어쩌려고? 니 가족들 전부 칼 맞아 죽어있으면 나인 줄 알아라.”

읽기만 해도 섬뜩한 이 댓글을 읽고 그 여성분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 그녀는 정말 무서웠을 것이다. 실제로 이분은 이 댓글들에 답을 하지 못했다. 언어의 폭력이 실제의 폭력이 될까봐, 저 인간이 진짜로 자신을 찾아와 해코지를 할까봐. 일부 남성들은 이렇게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글에 떼로 몰려와 테러를 하고, 죽인다고 협박까지 한다. 이유는 자명하다. 여성의 입을 닥치게 하려고. 강남역 사건 1년이 지난 뒤 가진 설문조사에서 여성들의 75%가 “그 후 사회가 변한 게 없다”라고 말한 건 너무도 당연하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