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대령, 직속 부하 성폭행 혐의로 구속...피해자는 자살한 채 발견

해군 관계자 “술 먹고 그런 걸 어떻게 막나”

여성계 긴급 성명 “특조위가 진상 밝혀라”

정부, 군 내 성폭력 공식 실태조사 지난해 첫 실시...“결과 비공개”  

 

현역 해군 장교가 부하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피해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성계는 긴급 성명을 내고 “국가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국회, 국방부, 민간 인권 단체가 이 사건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진상을 규명하라”라고 촉구했다. 또 “군 당국은 지금까지 일어난 군대 내 성폭력 사건과 대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라”고 요구했다. 

군 당국은 지난 25일 해군 A대령을 준강간 혐의로 긴급체포, 26일 구속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피해자는 A대령의 직속 부하(대위)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선 ‘빈손으로 이렇게 가나보다, 내일이면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등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의 메모가 발견됐다. 그는 최근 민간인 지인에게 ‘A대령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해군 관계자는 여성신문과의 통화에서 “그간 군 내 성폭력 예방 교육 강화, 음주 회식 시 참석자 1명이 동료들을 감시하게 하는 ‘회식 지킴이’ 도입 등 제도적 노력은 많이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어디에나 있다. 술 먹고 부대 밖에서 그러는 걸 어떻게 막나”라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126개소)는 26일 ‘해군 대령에 의한 성폭력 사건 진상조사 및 대책 마련 촉구 공개 요구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군대 내 성폭력의 원인은 군대 내 강력한 위계적, 권위적 조직문화와 젠더화된 위계질서”인데, “해군은 군 문화 쇄신 없이 ‘회식 지킴이’, ‘여성군인과의 회식 자제’, ‘1110(한 가지 술로 1차에서 10시까지)’ 등 미봉책만 제시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해군 자체적으로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주축으로 한 특조위가 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고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군 당국은 지금까지의 군사법원의 성폭력사건 수사·재판 과정에서 어떤 불합리가 작동되었는지, 판결 내려진 군대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대책을 마련하라”라고 요구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도 이날 ‘인권국가로 나아가려면 군대 내 성범죄부터 엄정히 처벌하라’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여협은 이번 사건을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로 규정하고, “성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우선되어야 한다. 가해자에 대한 봐주기식 처벌과 솜방망이 처벌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으며 모든 성폭력은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군 사법당국은 가해 상관을 엄벌에 처하고, 군 지도부는 성평등 의식과 인권 의식으로 무장해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라”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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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와 군 당국은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대책을 발표하고 개선 의지를 천명했다. 2013년에 성군기사고 예방대책을, 2015년엔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성폭력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종합대책엔 성폭력 범죄 가해 군인 중징계 등 엄중 처분, 군대 내 성폭력 사건처리 전 과정에 전문조력자 참여,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외부지원 연계 강화,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인사제도 개선, 군대 내 핵심계층에 대한 맞춤형 집중교육과 사례중심의 소규모 토의식 교육 운영, 신병 대상 성폭력 예방 대면교육 적극 실시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군대 내 인권은 날이 갈수록 악화일로다. 해군만 봐도 지난 3년간 군 내 성폭력 사건이 끊이질 않았다. 지난 2015년 4월 13일 한 해군 중령이 여군 부사관에게 술을 먹인 뒤 승용차 안에서 성폭행을 시도하고, 부사관이 저항하자 모텔로 데려가 다시 성폭행을 시도한 사실이 알려져 제적됐다. 2014년 7월에도 경기 평택 2함대 사령부에서 호위함 함장(중령)이 회식 도중 위관급 여군 장교 2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강제 전역됐다. 같은 해 12월엔 해군사관학교에 근무하는 여성 부사관이 남성 장교 2명을 성추행 혐의로 상부에 신고하기도 했다. 

여성들에게 성차별·성폭력은 일상의 문제다. 여군의 19%는 성희롱을 당한 적 있고, 28%는 성희롱 사건을 목격했으며 이 중 40%는 물리적 폭력을 동반했다는 설문조사 결과(2014년 군인권센터)가 있다. 2015년 백군기 국회의원이 국방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10년부터 2014년 6월까지 여성군인에게 발생한 범죄 191건 중 124건(64.9%)이 강간, 강제추행, ‘몰카’ 촬영 등 성범죄였다. 

그러나 군 내 성폭력 사건은 꾸준히 축소·은폐돼 왔다. 8건만이 실형 선고를 받았다. 사실상 죄를 묻지 않는 기소유예, 선고유예, 공소권 없음(기각), 무혐의 처분은 57건(46%)에 달했다. 특히 영관급 이상 피의자 17명 중 14명은 불기소 처분됐다(1명은 벌금형). 

성범죄 처리 과정에 대한 불신도 높다. ‘성범죄 처리과정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군검찰 85%, 군사재판 80%, 징계위원회 92%, 헌병대 92% 등 높게 나타났다. 군대 내 고충상담원 제도가 있지만, 상담원의 지위가 낮아 영관·장성급에 의한 성차별·성폭력 사건을 다루기란 현실적으로 힘들다. 피해자가 집단 따돌림(35.3%), 가해자 보복(23.5%), 부대원 보복(23.5%), 피해자 전출(17.7%) 등을 겪기도 한다. 90%는 “성범죄 피해 시 대응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군대 내 성폭력의 특성과 실태가 어떠한지를 파악할 통계 자료도 충분하지 않다. 외부 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2004, 2012), 군인권센터(2014) 등만이 관련 조사를 진행했지, 국방부, 여성가족부 등 관련 부처의 주관 하에 조사가 이뤄진 적은 없었다. 여가부는 2016년도 성폭력 실태조사의 부가조사 차원에서 ‘군 성폭력 실태조사’를 지난해 실시했으나, 외부에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최혜민 여가부 권익정책과 사무관은 “민감한 내용이기도 하고, 애초에 내부 조사·참조 목적으로 한 조사이므로 국가 승인을 받지 않아 공표할 수 없다. 국방부에서는 이를 토대로 내부 토론회, 정책 수립 등을 추진하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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