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래퍼 키썸(Kisum)

쇼미더머니3‧언프리티랩스타로 이름 알린 5년차 래퍼

‘외모 덕 본 래퍼’ 꼬리표, ‘여성혐오’ 가사 논란도

지난해 작곡 시작…새 앨범은 모두 자작곡으로 채워

“힙합 잘 안 들어…좋아하는 장르는 인디‧포크‧컨추리”

 

래퍼 키썸은 “여성과 남성 래퍼의 차이는 없다”며 래퍼 블랙넛이 키디비를 언급한 성희롱 가사 논란에 대해 “한 사람 자체를 특정해서 비난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래퍼 키썸은 “여성과 남성 래퍼의 차이는 없다”며 래퍼 블랙넛이 키디비를 언급한 성희롱 가사 논란에 대해 “한 사람 자체를 특정해서 비난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통통 튀는 목소리와 매력 있는 얼굴은 래퍼 키썸(23·본명 조혜령)의 트레이드마크다. 2013년 경기도 시내버스 TV를 통해 데뷔한 키썸은 당시 ‘경기도의 딸’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엠넷 ‘쇼미더머니3’에 출연했지만 본 경연 직전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셨다. 당시 심사위원이던 래퍼 스윙스가 그에게 “외모에 신경 좀 쓰지 마시고 래퍼면 랩부터 하세요”라고 독설을 날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실력보단 외모로, 랩보단 TV 프로그램으로 먼저 이름을 알린 키썸이 래퍼라는 수식어를 얻게 된 계기는 여성 래퍼들의 경연 프로그램인 엠넷 ‘언프리티 랩스타’를 통해서다. “외모 신경 끄고 랩이나 연습하라 했던 문스윙스 / 난 지금 풀스윙 날리지 않고도 두 수 위 / 따끔하게 해준댔지 내 랩 주사기” 그녀는 ‘슈퍼스타’라는 곡을 통해 스윙스의 독설을 시원하게 되받아쳤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경기도의 딸’ ‘얼짱 래퍼’ 등 수많은 수식어에서 벗어나 ‘래퍼’로 불리기까지 자그마치 5년의 세월이 걸렸다. 꾸준히 자작곡을 발표해온 키썸은 4월 발매한 두 번째 미니앨범 ‘더 선, 더 문’은 모두 자신의 곡으로 채웠다.

 

래퍼 키썸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래퍼 키썸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거칠고 센 ‘힙합’을 들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키썸은 의외로 “잔잔한 곡을 즐겨 듣는다”고 했다. “주로 잠잘 때 음악을 많이 듣거든요. 자기 전에는 시끄러운 곡보다 잔잔한 노래를 찾게 되더라고요. 오히려 힙합은 잘 안 듣게 되는 것 같아요. 포크, 인디, 컨추리를 주로 들어요. 국내 가수 중엔 우효, 어쿠루브, 디에이드(어쿠스틱콜라보)를 특히 좋아해요.“ 래퍼지만 힙합은 잘 안 듣는다는 얘기에 기자는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이번 앨범엔 그런 그의 평소 음악적 성향이 드러난다. 타이틀 곡 ‘잘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나쁜 꿈을 가져갈 테니 옆에서 편안하게 자면 된다는 가사를 담은 노래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이 했어 / 하루 종일 많이 피곤했죠 / 토닥토닥 코 넨네해요 / 잠들 때까지 옆에 있을게요’  비트가 아닌 기타 선율에 랩을 얹은 어쿠스틱 버전도 있다. 키썸이 직접 노래했다.

키썸은 한층 자신감에 찬 모습이었다. 언론보도나 주변 사람들의 피드백이 이전보다 “좋아졌다”고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했어요. 저는 ‘이렇게 해라’ 틀이 주어지면 잘 못 해요. 작년에 ‘옥타빵’이란 곡으로 처음 작곡을 시작했거든요. ‘시도’였고 ‘도전’이었죠. 그때 밝고 통통 튀는 노래를 많이 했다면, 그 뒤로는 약간 자전적이고 제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썼어요. 이번 앨범은 제 색깔을 찾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가수들에게 5월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하는 시기다. 바쁠 때는 하루에 5~6개의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지난주에는 부산에 있는 대학교 2곳의 축제를 연달아 가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새벽 4시에 들어와 다음 날 아침 또 스케줄을 가야 했다. 몰아치는 스케줄이 힘들지는 않을까. “가끔 지칠 때도 있을 것 같다”는 말에 “그래도 다 지나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EBS 라디오에서 이소영 작가의 ‘그림은 위로다’라는 책을 소개했어요. 거기에 이런 말이 나와요. ‘가끔은 쓰던 걸 멈추고 연필을 깎아야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이야. 당장은 아파도 심을 더 예리하게 쓸 수 있지. 너도 그렇게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는 법을 배워야 해.’” 키썸은 “창작의 고통이 있어야 앨범이 나오는 것처럼 무슨 일이든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다”며 “힘든 스케줄이 끝나면 하루 쉬는 날이 너무 소중하다”고 말했다.

 

래퍼 키썸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래퍼 키썸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키썸은 신인 시절 ‘외모 덕을 본 래퍼’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외모에 대한 칭찬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됐다고 했다. “옛날에는 ‘예쁘다’는 칭찬을 잘 못 받아들였어요. 부끄럽잖아요. 그런데 이젠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됐어요. 좋은 말을 해 주시는데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잖아요. 이것도 책 보고 깨달은 거예요.”

“여성과 남성 래퍼의 차이는 없다”는 키썸은 남성 래퍼 블랙넛이 래퍼 키디비를 언급한 성희롱 가사 논란에 대해 “한 사람 자체를 특정해서 비난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람이 자기 욕하는 것도 기분이 나쁜데 그렇게 성적인 내용을 쓰는 건 정말 잘못된 행동인 것 같아요. 사실 그런 음악을 안 들어요.”

지난 2015년 여성혐오 가사 논란이 있었던 피처링 곡 ‘성에 안 차’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했다”고만 간단히 답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 이후로 여러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가사를 쓸 때도 차별적인 내용은 절대 안 쓰려고 해요.”

쇼미더머니에 또 나갈 생각은 없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두 번은 못 나간다.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쇼미더머니에서 여성 래퍼들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는다는 말에는 바로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아니에요. ‘쇼미더머니1’에 치타 언니 나와서 본 경연까지 올라갔는데요? 지담(육지담)이도 있고. 남자 래퍼가 너무 많아서 그렇지, 잘하는 여자 래퍼가 얼마나 많은데요.”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